2화. 독립 계약서

초보 독립자가 살고 있어요!

by 은수
부모가 자식을 위해 할 수 있는 가장 큰 일은, 그들이 떠날 수 있도록 준비시키는 것이다.

그동안 나는 아들의 어질러진 방을 치워주기 싫을 때마다 마음속으로 외쳤다.

‘그렇게 네 맘대로 할 거면 성인이 되거들랑 냉큼 독립해 살아볼지어다!’

이 말은 한 번씩 치밀어 오르는 화를 달래는 일종의 주문이었다. 그러나 독립도 본인이 동의해야 성사될 일이고, 무엇보다 경제적 자립이 돼야 가능한 일이 아닌가. 그러니 독립이란 당장 실현 불가능한 일이었고, 그저 잔뜩 약 오른 양육자가 혼자 꺼내보는 일종의 희망 사항에 불과했다.


그런 나의 예상을 깨고 아들의 독립은 고등학교 졸업식과 동시에 빠르게 진행됐다. 수시 전형으로 대학에 진학한 아들은 고3 마지막 시험을 치른 뒤, 아르바이트를 하고 싶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너무 이른 사회생활에 대해 다소 부정적인 입장이었다. 아들이 내성적이기도 했지만, 행여 상처라도 받게 되면 정작 제대로 된 사회생활을 시작도 하기 전에 두려움부터 갖게 될까, 즉답을 피해왔다.


아들의 전화를 받은 날이었다.

"엄마, 오늘 저녁 먹고 갈 거예요. 성현이 아르바이트하는 양고기 집에 친구들이랑 가기로 했어요. 매상 올려주고 성현이 체면도 좀 세워줘야 줘! 암튼 저녁 먹고 늦지 않게 갈게요~!"


아들은 저녁으로 일본식 양고기를 맛있게 먹고 왔다고 했다. 그런데 그곳 사장님에게 아르바이트 제안을 받았다며 자기도 친구들과 아르바이트를 하고 싶으니 허락해 달라고 했다. 그때 나는 이미 독립적 존재로 성장한 아들을 나만 발견하지 못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랬다.

아들에게는 고정 수입이 있었다. 그것은 물리적 독립의 가장 중요한 요소가 아닌가!

하루 4시간 X 주 5회+ 주휴 수당+4대 보험 가입+1년 근무 시 퇴직금 지급

하지만, 요즘 같은 고물가 시대에 세후, 110만 원 남짓의 수입으로 한 달 생활비와 월세, 공과금까지 내고 살기에 턱없이 부족한 액수였다.


보증금도 문제였다. 아들의 독립에 보증금 정도는 마련해 줄 수 있지만, 그러자니 그것을 온전한 독립이라 할 수 있을까? 의문이 들었다. 나는 독립을 찬성하지만, 무리하면서까지 서둘러 세대 분리를 할 이유는 없었다. 계산기를 두드려 본 아들도 선뜻 독립할 엄두를 못 내는 눈치였다.


두드려라 열릴 것이니! 나는 정보를 모으기 시작했다. 요즘 청년 1인 가구에 대한 정부 지원은 생각보다 많았다. 나는 우선, 주민센터에 전화해 수입이 이 정도 되는 청년 1인 가구에 지원되는 정책이 있는지 문의했다. 혹시 도움이 될까 싶어 주 양육자인 엄마가 집은 물론, 자동차도 없는 한부모 가정임을 알렸다.

아들의 세전 수입 120만 원으로 계산기를 두드려 본 직원은 받을 수 있는 청년 지원금이 두 가지 있다고 알려줬다. 그 지원금이면 오피스텔 월세와 공과금을 해결할 수 있다. 아들의 독립이 한 발 더 가까이 다가왔다.


이제 보증금만 남았구나! 일단 지원금이 나오면 아들 수입으로 1인 가구 생활은 가능할 것 같으니, 보증금은 해줘도 될까? 보증금은 사라지는 돈도 아닌데? 궁리가 깊어질 즈음이었다.

지원금 정보에 솔깃해진 아들이 보증금 낼 돈이 있다며, 쌈짓돈 커밍아웃을 했다. 아들에게는 서 너 달 남짓 아르바이트하며 꿍쳐둔 비상금 200만 원이 있었다.

'그렇다면! 이것은 확실한 독립이지 않은가? '

독립을 망설일 중요한 사유가 사라진 셈이었다. 그렇게 아들은 자신이 모아뒀던 200만 원으로 당당히 월세 보증금을 내고 계약서에 사인했다. '얘가 언제 이렇게 컸지?' 그때 나는 자식을 가장 모르는 사람이 부모라던 말이 실감 나던 순간이었다.


흐뭇하게 계약을 마치고 집에 돌아온 잠시 뒤였다. 아들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엄마! 내 지갑 못 봤어요?"

"지갑? 아까 부동산에서 신분증 꺼낼 때도 있었잖아!"

"근데 없어... 부동산에 두고 왔나? 아님, 택시? 하.. 돈이랑 카드도 다 있는데.."

당황해 허둥대는 아들을 지켜보던 나는,

'과연 지금 독립이란 걸 해도 괜찮은 걸까?'

뭔가 서늘한 공포가 엄습해 오는 걸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