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한 이야기를 품은-식빵
요약 문장:
여름 한낮의 뜨거운 태양 아래, 무릎이 꺾인 나무들이 너무나 싱그럽고 푸르른 나머지 나는 숙연해졌다. 이제 우리는 어디서 이 더운 열기를 피할 수 있을까. 나는 무엇으로 이 소멸의 냄새와 죄책감을 씻어낼 수 있을까.
인류 역사를 돌아보면, 우리는 언제나 우연을 두려워하며 그것에 의미를 덧씌웠다. 고대인은 천둥을 신의 분노로 해석했고, 역병은 죄의 대가라 여겼다. 이해할 수 없는 사건을 ‘운명’으로 받아들임으로 인간은 세계의 불확실성을 견디고 겨우 마음의 균형을 지켜냈다.
미지의 세계를 설명할 이 믿음은 집단에는 질서를, 개인에게는 위안을 주었다. 하지만 동시에 그것은 보이지 않는 굴레가 되기도 했다. 우연한 사고나 사소한 불행조차 개인의 드센 운명과 연결 지을 때, 인간은 더 이상 자유로울 수 없었다.
연일 이어진 폭염에 외출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며칠째 햇빛을 보지 못한 채 실내에서 운동을 이어갔지만, 그날은 외출을 미룰 수 없었다. 나는 여름 외출의 필수품이 된 챙 넓은 모자와 선글라스를 챙겨 대문을 나섰다. 신발을 신고 걷는 감각조차 낯설었으나, 오랜만의 외출은 가라앉았던 마음을 조심스레 일으켰다. 그러나 골목을 돌자 낯선 소음과 함께 비릿한 냄새가 진동했다.
아, 마침내 인근 아파트 재건축 공사가 시작된 모양이었다. 공사 가림막 너머에서 본 단지 내 모습은 처참했다. 수령이 40년 이상된 나무들이 무참히 잘린채 넘어져 있었다. 그동안, 수수하고 단정했던 정원의 모습은 마치 전쟁이 휩쓸고 간 폐허로 변해 버렸다. 그리고 나는 그곳에서 그 냄새를 맡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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