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향
헤프게 마음 쓰던 것들이 제자리를 찾아가는 계절이다.
은이 진이와의 이별이 그랬고, 아침저녁으로 마음을 쓰던 길냥이들이 그랬다.
부쩍 자란 새끼 길 냥이도 이젠 겨울 집에 매일 오지 않는다. 녀석이 나타나지 않던 처음 며칠 동안은 사고라도 난 게 아닌지, 나는 내내 마음을 졸였다. 그렇지 않고선 넓지도 않은 단지 안에서 며칠째 나타나지 못하는 이유를 납득할 수 없었다. 막막해진 나는 녀석을 찾아 단지를 몇 바퀴씩 돌았었다.
그때까지도 나는 스스로 제자리를 찾아가는
존재들의 성장을 알지 못했다.
'이젠 정말 못 보려나 보다.' 라며 크게 상심하던 즈음이었다. 녀석은 얼굴이며 하얀 발이 꼬질꼬질해진 채 어디선가 나타났다. 못 본 사이에 부쩍 어린 냥이 티를 벗은 모습이었다. 하지만 먼 곳에서도 나를 알아보고 냥~소리를 내며 한달음에 달려왔다. 나는 녀석을 다시 놓치기라도 할 세라 밥과 물부터 챙겼다. 허겁지겁 먹는 모습을 보자 그제야 내 마음에도 평화가 찾아왔다. 하지만 그것은 내가 통제해 유지하고 싶던 상황이 데려와 준 얇디얇은 평화에 불과했다.
이제 녀석은 며칠에 한 번씩만 돌아왔다. 녀석은 더 이상 허기를 달래기 위해 무한정 인간의 도움 속에 살려는 어린 냥이가 아니었다. 야생의 동물답게 그에게도 본능을 따르며 영역 확장을 할 때가 온 것이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심정은 마치, 사춘기 아들을 봤을 때 느꼈던 감정과도 닮았다.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아들이 독립을 해 분가한 지도 어느새 일 년이 넘었다. 이젠 서류상으로도 분명한 성인이 됐다.
분가 초기엔 아들 방에 일주일 혹은 열흘에 한 번쯤은 방문해서 이것저것 도울 일을 찾아 해결해주곤 했다. 하지만 아들의 생일이 지나고, 해가 바뀌면서 미성년 신분을 벗어난 뒤론 아들 방 방문을 자제하고 있다.
얼마 전, 한 달 반 만에 아들 방에 들렸을 때였다. 나는, 자기만의 루틴이 완벽히 자리 잡은 아들의 공간을 낯설게 바라봤었다.
내가 도착했을 때 아들은 막 식사를 하려던 참이었다. 식탁엔 호밀 베이글과 달걀 프라이, 블루베리가 가득 담긴 요거트가 정갈이 차려 있었다. 운동과 식단 관리를 철저히 하는 아들에겐 엄마표 반찬을 해 나를 명분도 없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나는 그가 '나의 아들'이란 틀을 깨고, 명확히 자신의 영역을 넓혀가는 존재로 성장 중임을 인정했다.
설 자리를 잃은 내 헤픈 마음은 그 모습을 대견해하면서도 아쉽고 복잡했다. 하지만, 그들은 떠나는 게 아니라 모두 제자리를 찾아가는 중이었다. 나는 남겨진 것도 아니었고, 관계가 흩어진 실패는 더욱 아니었다.
마음 주던 것들이 각자의 퍼즐을 쥐고 돌아오는 계절.
이쯤에서 나는 헤픈 마음이 가야 할 방향을 돌아보았다.
나는 20여 년 운영한 교실을 1년 뒤엔 정리하고 싶었다. 나름의 정년퇴직을 하고, 그 뒤엔 조금 다른 일을 해보고 싶기 때문이다. 하지만 크게 준비해 둔 것도 없이 퇴직을 해도 될까? 현실적인 고민을 안 할 수 없었다.
돌아보니, 내가 나를 알고 살아온 시간은 불과 몇 년? 어쩌면 몇 달도 되지 않았다.
지난 대부분의 시간, 나는 나를 잘 몰랐다. 상황 때문에 하고 싶지 않은 일을 참던 시간이거나 헤프게 짊어진 의무를 강요받아 버텨낸 시간이었다. 다행인 것은 다시 되돌아가는 시간이란 없다는 사실이었다.
나는 지금보다 더 최소한의 삶을 살더라도 내가 온전히 깨어서 누리는 지금, 이 헤픈 삶의 평화를 포기하진 않겠다고 다짐했다.
대신, 앞으로는 내 삶에도 헤픈 마음을 나눠주며 살겠다는 의지를 새겼다. 비로소 헤픈 마음의 마지막 퍼즐 조각은 다른 누구도 아닌 내 손에 쥐어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순간이었다.
이 모든 것이 낯설게 성장하며 제자리를 찾아 준 존재들 덕분이었고, 이제 내 차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