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별한 타인
이제 고2가 되는 막내딸은 만 일곱 살부터 제주도에서 자랐다.
도시에서만 자란 나는, 아이들이 어린 시절을 시골마을에서 마음껏 뛰놀며 순하게 크길 바랐다. 그렇게 선택한 제주에서의 삶 덕분에 막내는 털털하고 모난 데 없이 자랐다. 하지만, 도시에서 나고 자란 기억은 거의 남아 있지 않은 것 같다.
사실, 도시에 살 때 막내는 잔병치레가 잦아 수시로 병원에 입원했고, 나는 아이 곁을 떠나지 못했다. 그래서인지 ‘막내’라는 단어에는 언제나 걱정과 보호가 덧붙은 헤픈 마음이 장착 됐다.
“엄마, 서울 가고 싶어요.”
제주 토박이 청소년들이 그렇듯, 막내도 어느 순간부터 도시를 동경하며 서울을 노래처럼 입에 올렸다. 작년 수학여행으로 서울을 다녀온 뒤에는 서울 토박이인 내게 “엄마, 청계천 알아요?”라고 물어 큰 웃음을 주기도 했다.
긴 겨울 방학, 막내는 선배에게서 2학년이 되면 정말 정신없이 바빠지니 겨울 방학을 잘 보내라는 조언을 들었다고 했다. 그러더니 이번 방학에 혼자 서울로 미술관 투어를 다녀오겠다고 했다. 인천 할머니 댁에 머물며 서울을 오가겠다는 계획이었다.
나는 무엇보다 그 ‘혼자’라는 말이 마음에 들어 흔쾌히 허락했다. 혼자 있어보는 경험은 성장하는 존재에게 귀하다. 나는 어쩌면 이 여행이 자기 삶의 리듬을 스스로 견뎌보는 첫 연습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같은 나이에 혼자 미국에 갔던 큰 딸을 떠올리면 서울 여행쯤이야 대수롭지 않은 일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막내’라는 단서 하나만 붙으면 모든 일이 유독 미덥지 않게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었다.
막내가 다니는 고등학교는 2학년이 되면 전공을 정한다. 막내가 막상 ‘비주얼 아트’를 선택하고 보니, 문화적 경험 면에서는 확살히 지방 도시의 한계가 있었다.
여행 계획을 세울 때만 해도 막내는 설렘으로 가득 차 있었다. 여기도 가고, 저기도 가겠다며 눈을 반짝였다. 하지만 날짜가 가까워질수록 어쩐지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엄마를 따라가기만 하던 여행이 아니라, 스스로 길을 찾고 시간을 나눠 써야 하는 여정이 기대되면서도 부담이 된 모양이었다. 급기야 여행 전날에는 하루 종일 배가 아프다고 했다. 나는 걱정하는 아이에게 괜찮다며, 그냥 경험해 보자고 다독이면서도 나 역시 스스로에 묻고 있었다. '괜찮겠지?'
여행 당일 아침, 비행기를 타러 들어가는 아이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어쩌면 정작 내려놓지 못하고 있던 건 근심이 만든 나의 헤픈 마음이었다. 그동안 막내고, 몸이 약했고 제주에서만 자라서라고 불러왔던 이유들은 사실 아이의 상태보다, 놓지 못한 나의 마음을 가리키고 있었다.
자식에 이르렀을 때야 말로 헤픈 마음은 그 정점에 이르고 만다. 의무와 사랑이 혼재된 마음은 쉽게 넘치고 조금만 방심해도 금방 과해지기 때문이다. 부모는 자식 앞에서 언제나 약자가 된다. 나는 흘려보내고, 떠나보내는 마음에 대해 생각했다. 하지만 자식에게 헤퍼야 할 것은 끌어안기만 하는 마음이 아니었다. 오히려 헤프게 떠나보낼 수 있는 마음, 아이가 자기 삶으로 걸어가도록 돕는 마음이 필요했다.
공항 밖으로 나오자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비를 피해 새 한 마리가 나무 위로 날아오르는 모습이 보였다. 아이도 훨훨 날아 자신의 삶에 더 가까워질 것이다. 나는 비 냄새를 맡으며 조금 걷다 집으로 돌아왔다.
얼마 뒤, 미술관에 도착했다는 딸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전시 관람 중에 발견했다며 존 던의 기도문을 보내왔다.
자식이라는 각별한 타인이 보내온 문장이 마음에 가만히 진동을 일으켰다.
누구를 위해 종은 울리나
사람은 누구도 혼자만의 섬이 아니다.
사람은 저마다 대륙의 한 조각이요, 본토의 일부다.
만일 흙덩이 하나가 바닷물에 씻겨 간다면
유럽은 그만큼 작아지는 것이다.
이는 곶이 쓸려간다 해도 마찬가지이며, 당신의 친구나 당신이 소유한 영지가 쓸려 간다 해도 마찬가지다.
나는 인류 가운데 하나이니, 어느 누구의 죽음도 나를 감소시키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을 보내어 누구를 위해 종이 울리나 알려고 하지 마라.
종은 바로 그대를 위해 울리는 것이다.
존던
떠나보낸다는 건 단절이 아니라, 각자의 자리에서 서로를 기억하며 연결되는 방식이었다.
나는 또다시 헤프게 새를 날려 보내는 연습을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