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과
가끔은 별일이 없어도 불안할 때가 있다. 이런 습관적인 불안은 삶이 어느 때보다 평화롭게 흐르는 순간에도 어김없이 말을 걸어왔다. ‘나 지금 괜찮은 거지?’ 하고 말이다.
이럴 때 산책은 좋았다. 경쾌하면서도 또박또박한 발음으로 나에게 말을 거는 일 같았다. 발걸음을 내딛는 동안은 마치 마음이 꼭 맞는 친구와 시간이 아깝지 않은 대화를 나눈 것 같다.
지난 며칠, 나는 말 잘 듣는 아이처럼 산책과 햇볕 쐬기에 열심을 다하고 있었다. 그 덕인지 정말 비타민 D가 보충된 건지, 기분도 한결 가벼워졌다. 그러는 동안 나는, 산책하는 나를 자연스레 들여다보게 됐다. 하지만 평화로운 산책에도 복병은 있었다. 문제는 산책을 하다 보면 길에 떨어진 쓰레기가 자꾸 눈에 들어온다는 점이었다. 고즈넉한 마음으로 시작된 산책은 번번이 쓰레기 줍기로 끝났다.
지난여름에도 집 근처 운동장에서 새벽 달리기를 시작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 시간은 늘 30리터 봉지에 쓰레기를 가득 채운 뒤에야 끝이 났다. 결국, 한여름 폭염 속에서 너무 지쳐버린 나는, 스스로에게 외출 금지를 내리고서야 달리기와 쓰레기 줍기를 멈출 수 있었다.
이번에 새삼 깨달은 건, 이런 행동들이 깊은 고민이나 결심 끝에 나온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쓰레기가 보이면 당연히 주워야지.’
다른 생각할 겨를도 없이 몸이 먼저 움직였다. 그건 거의 본능에 가까운 반응이었다. 하지만 정신을 차리고 보면, ‘나 또 이랬네.’ 하는 생각이 뒤늦게 따라왔다.
그날도 워싱턴야자나무가 늘어선 공원 산책로를 따라 걷다 낮은 비탈길을 내려가고 있었다. 비탈 끝 도로에서 한 할머니가 내 앞을 가로질러 약국을 향해 걸어가고 계셨다. 지팡이에 몸을 의지한 채, 한 발 한 발 옮기는 걸음이 몹시 조심스러워 보였다. 잠시 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나는 할머니 뒤에서 약국의 묵직한 출입문을 붙잡고 서 있었다.
할머니는 낮은 문턱 하나를 넘는 데에도 시간이 꽤 걸렸고, 할머니의 몸이 완전히 약국 안으로 들어간 것을 확인한 뒤에야 나는 조심히 문을 닫고, 다시 가던 길로 걸음을 옮겼다.
‘나, 또 이랬다.’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다, 나는 슬쩍 웃음이 나왔다.
예전에는 불안이 헤픈 마음을 불러냈다면, 지금은 정렬된 나의 몸이 선택 없이 흘려보낸 헤픈 마음이었다.
그 둘의 차이라면 이제는 누군가에게 필요해지려고 애쓰거나 쓸모를 증명할 필요 없는, 그냥 나로서의 태도가 됐다는 것이다. 몸이 먼저 반응하고 마음은 뒤늦게 그것을 알아차리는 것.
나는 이 마음을 애써 붙잡지 않기로 했다. 지나간 자리만큼만 세상에 남고, 나는 다시 내 걸음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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