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키는?
어느새 나도 병원에서 의사로부터 '조심해야겠다'는 말을 듣는 나이가 됐다. 그때마다 어김없이 듣는 말이 있다.
"이건 유전입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네가 바로 내 딸이다!"
외치는 아버지 목소리를 들은것 같다.
‘아버지, 아무리 그래도 그것만은 사양하겠어요!’
그도 그럴 것이 아버지는 중년 이후 온갖 성인병을 달고 사셨고, 결국 대장암으로 세상을 떠나셨다. 그 덕에(?) 나는 이미 대장암 가족력이 있는 사람으로 분류 돼, 건강검진 때마다 추가 검사를 받고, 검사 주기도 더 빨리 돌아왔다.
이제는 더 이상 남의 일 같지 않다.
요즘 나는 마음을 단단히 먹고, 식이조절과 운동을 시작했다. 운동이라면 질색인 내가 실내 자전거를 30분씩 타고, 땀을 흘린다는 건 정말 큰 결심이 필요한 일이었다. 더는 물러설 수 없었다.
오늘 아침, 나는 조금 더 과감해지기로 했다. 새벽 글쓰기 시작 전에 하루키처럼(?) 달리기를 해보자는 결심을 한 것이다.
새벽 6시도 안 된 시간, 나는 집 앞 초등학교 운동장으로 향했다. 이미 몇몇 사람들이 트랙을 돌고 있었다. 나는 달리기 전에 조금 빠르게 걸었다.
‘이렇게 운동하기 좋은 곳이 바로 집 앞에 있었네.’
새삼 감사한 마음으로 한 바퀴를 돌았는데, 그 순간 눈에 들어온 건 운동장 여기저기에 흩어진, 많아도 너무 많은 쓰레기였다.
그곳엔 어젯밤 누군가 먹고 마신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함부로 버려진 플라스틱 음료 용기, 편의점 과자 포장지…
여긴 학교가 아닌가!
주변을 돌아보니 어디에도 쓰레기 통이 보이지 않는 걸로 보아, 오늘만 그런 건 아닐 것 같았다.
‘이쯤 되면 쓰레기통을 만들어주고, 아이들 스스로 버릴 수 있도록 지도해야 되는 거 아닐까?’
문득, 내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그때 우리에겐 ‘애교심’이라는 게 있었다. 쓰레기는 당연히 쓰레기통에 버리는 거라고 교육받았고, 운동장에 떨어진 쓰레기를 보면 주워서 쓰레기통에 버리기도 했다.
시대가 아무리 변해도, 함께 살아가기 위한 예절은 여전히 중요하다. 혹시, 요즘 교육은 시험 성적에 치중하느라 이런 기본적인 생활교육을 소홀히 하고 있는 걸까? 그럴 리 없다고 믿고 싶지만, 어쩐지 마음이 씁쓸했다.
결국 나는, 운동을 하다 말로 집으로 돌아왔다. 재활용 쓰레기봉투와 니트릴 장갑을 챙긴 뒤, 다시 운동장으로 가서 구석구석 흩어진 쓰레기를 하나씩 주워 담았다.
넓은 운동장을 돌며 쓰레기를 줍다 보니 의도치 않게 복근까지 쓰는 운동이 돼 버렸다. 30리터 재활용 봉지도 금세 쓰레기로 꽉 찼다. 폭염에 얼굴은 빨개졌고, 땀이 비 오듯 쏟아졌지만 마음만은 개운했다.
‘운동하러 와서 내가 지금 뭐 하고 있는 거지? 하루키처럼 할 거라며!’
스스로에게 묻다가, 금세 답을 찾았다.
“운동장 사용료라 생각하면 되지!”
오늘 아침, 운동도 하고, 쓰레기도 줍고, 글도 썼으니, 하루를 알차게 쓴 기분이었다. '내일 아침엔 비닐봉지 하나를 챙겨서 나가야지' 다짐하던 내게 물었다.
‘아침 운동을 하러 가려는 건가, 아니면 아침 청소를 하러 가려는 건가!… 하루키는?‘
……
‘첫날부터 하루키 루틴과는 거리가 멀어졌지만, 운동하면서 청소도 하면 좋은 거지. 그곳은 다름 아닌, 어린이들의 학교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