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 연애 기념.
2010년 봄,
나는 교환학생 1년으로 생긴 빵꾸난 학점을 메워야 했다. 그래서 4학년 때 나답지 않게 시험과 과제에 매달려 살았다. 취업을 할까, 대학원을 진학할까 등등 진로에 대한 고민을 하면서 어학시험 준비, '스펙'쌓기를 위한 공기업 인턴과 아르바이트를 번갈아하며 바쁘게 지냈다.
그러면서도 밤에는 하루가 멀다하고 선후배들과 질리지도 않는 술파티를 열었다. 술자리의 대부분은 2차, 3차 이어지고 새벽5시까지 영업하는 술집에서 마무리 되었다. 그리곤 24시 롯데리아에서 길어진 술자리로 생긴 허기를 달래려 햄버거를 사먹었다. 가끔은 수업중 날씨가 너무 좋다고 산성으로 가서 막걸리를 마시고 시험기간에는 엄청난(?) 공부를 했다는 핑계로 또 술자리를 갖는 포상을 스스로에게 내렸다.
나는 술자리가 좋았다. 이기지도 못하는 술을 그렇게나 마신건 주변에 좋은 사람들이 많았고, 나는 관계중독증에 걸린것 처럼 사람들을 찾았다. 우리들은 순수하게 '함께 있는 시간'에 빠져서 '오늘이 마지막'같은 하루하루를 보내곤 했다.
물론 내인생의 흑역사도 2009년부터 2010년 봄까지의 기간에 80퍼센트 이상 만들어졌다. 그때의 실수담을 이야기하면 한도끝도 없지만, 지금은 오히려 그 흑역사가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든다. 이제는 웃으면서 이야기할 좋은 안주거리가 되었으니 말이다.
2010년 봄, 나는 매일매일 술파티를 열면서도 무척이나 외로움을 탔었다. 솔직히 말하면 사실 어리석었었다. 별볼일없는 남자를 멋지다고 착각하며 이리저리 휘둘리기도 했었고, 단순히 자존감을 위해 마음에도 없는 남자를 만나기도 했었다. 나는 25살이면 대단한 사랑을 할 줄 알았었는데 현실은 텅빈감정 소비만 하고 있었다.
그렇게 점점 수렁으로 빠져들어가고 있을 무렵, 같은과 친구에게 소개팅 제의를 받았다. 그 친구 왈, '우리학교 기계과에서 공부를 제일(?) 잘하고 키가큰 남자야.'
나는 지적인 상대에게 큰 매력을 느끼는 타입이라, 다른건 모르겠고 공부를 잘한다는 말에 만나기도 전에 반은 넘어간 상태였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첫만남이 이루어졌다. 키는 컸다. 그게 다였다.
분명, 애프터가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소개해준 친구에게서 별다른 말이 없었다. 그때 나는 솔직히 자존감이 수직 낙하해서 지구 맨틀까지 뚫는 기분이었다.
7년전 일이라, 솔직히 그 후 내가 그 남자와 어떻게 다시 만나게 되었는지 과정이 기억나지 않는다. 어쨌든 우리는 연락이 닿았고 매일매일 문자를 주고받는 사이가 되었다.
한달 가량 문자를 주고 받았는데, 이 남자는 '만나자', '사귀자'는 말이없다. 분명 나에게 호감이 있는것 같은데,,,혹시 연애가 서툰남자 인가?
'뭐해?'
'나 공부중이야^^.'
'어디서? 나는 전산실에 있는데'
'나는 중도에 있어~'
'그럼 우리 잠깐 볼까?'
'그래^^'
소개팅남의 문자가 온다. 사실 나는 자취방에 널부러져 자고있었다. 그가 전산실에 있단다. 나는 후다닥 옷갈아입고 나갈 준비를 했다. 전산실과 가까운 중도에 있다고 거짓말을 하고.
2010년 6월, 월드컵기간
시험기간이었다. 소개팅남은 중도에서 공부중이었고, 나는 졸업유예생이었다. 예전에는 요즘과 비교해서 취업준비도 빡세게 안했으니, 나는 그냥 '한량'인 셈이었다. 소개팅남은 아직도 사귀자는 말이없다. 아니, 만나자는 말이없다. 연락은 매일 하면서도 말이다. 나는 반쯤 포기하고 있었다.
2010년 6월 9일
정확히 기억은 안나지만 기말고사 시험이 한 창일 때, 밤 10시경 그에게서 연락이 왔다. 내용은 아마도, '공부가 잘 안된다' 였을것이다. 거기에 나는 '심심하다'는 답장을 했고, 우리는 심야영화를 보게 되었다. 그 다음날이 공부를 잘한다(?)는 소개팅남 시험이었을텐데,,,, 아마 나는 이 남자가 나에게 중요한 시간을 내어주는것에 감동 받았을 것이다.
영화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어두운 골목길에서,
소개팅남이 용기낸듯 말했다. 그때 난 이미 이남자가 나에게 고백할 것이라 예상했었다.
'너는 나 어떻게 생각해?'
'그럼 너는 날 어떻게 생각해?'
'나는 좋지'
'나도'
'우리 한번 만나보지 않을래?
멋진 멘트도 아니었고, 오글거릴것 없는 말로 고백을 했다. 나는 하나도 부끄럽지 않은척, 담담하고 약간 세침하게 받아쳤다.
그냥 쓱 손이나 잡고 걸어도 좋았을텐데,
그때는 그렇게 연애를 '요이땅'하고 '시작' 해야 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