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답게 일하게 되기를 소망하며
남편이 직장생활을 한지 벌써 만 5년이 되어간다.
2년전 부터였을까, 남편은 부쩍 새치가 늘었다. 별것 아닌 대화에도 조금씩 짜증이 묻어있었다. 남편은 퇴근 후 세살 된 아들의 밥을 손수 먹여주고, 본인은 제대로 앉아서 먹지도 않는다. 아들이 계속 '아빠 일어나'라고 말하며 놀아달라 떼쓰기 때문이다. 남편의 유일한 취미(?)라고 해야할까, 여가는 스마트폰으로 이것저것 동영상이나 웹퉅을 보거나, 텔레비전 영화채널을 보는것이 다다.
남편의 회사는 빡세기로 유명한 철강회사다. 안전사고도 자주 일어나고 업무 강도도 매우 높다. 고연봉이라고 알려져있지만, 업무량 대비 고연봉은 절대 아니다. 남편은 내가 봤을때도 융통성이 아주 좋은 편은 아니다. '조금 느리다'는 말을 어릴때부터 20년 넘게 듣고 살아왔을테다. 그렇지만 꼼꼼하며 실수안하려고 노력하고 뭐든 대충대충하지 않는다.
남편은 2년전부터 이직얘기를 자주 했다. 스트레스로 가슴이 답답하고 일이 적성에 맞지 않는다고 했다. 나는 그저 직장인들의 '습관'같은 이직얘기라고 생각했다. 물론 맞장구는 쳐줬다. 진심으로 옮기고 싶으면 준비해서 이직하자고.
얼마전, 남편이 회사에서 있었던 일을 덤덤히 이야기 했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남편은 상사의 막말과 고성이 오가는 사무실에서 앉아있었다고 했다. 그 막말과 고성은 남편을 향한 것이었다. 어쩌면 그 사무실에서 상사의 폭언은 흔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공기중에 폭언 폭탄이 둥둥 떠있는 회사에서 하루 14시간이상 일을 한다는것은 인간 존엄성의 상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을 하는것이 남편에게는 돈을 버는 행위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
'밖에서 돈버는게 쉬운줄 알아?'
이 말은 자존감을 잃어버린것에 면역된 말로 들린다. 일을 하고 정당한 대가로 돈을 받는것이 아니라, 일도 하고 나 자신도 바쳐야만 돈을 받는것이다.
나는 남편에게 폭언을 했다는 상사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그 사람도 누군가의 남편일테고 아빠일테고 아들일것이다. 회사에서 일하는 모든 사람들이 다 누군가에게는 소중한 사람일테다. 치열하게 정신차리지 않으면 누군가가 생명을 잃을수도 있는 일터다. 그러니 냉정해지지 않으면 안될것이다.
그러나 냉정한것과 비인간적인것은 완전히 다른것이다. 일에 대해서는 냉정하고 냉철해야한다. 그렇지만 일을 하는 사람에 대해서는 인간적이어야한다. 어떤형태로든 인격을 살인하는 행위가 버젓이 이루어져서는 안된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공감'에 대한 어떠한 인지 자체가 부족한 사람들의 집단속에서 '사람처럼 일한다'는것이 불가능한 일일지도 모르겠다고.
그래서 모두들 '기계'가 되었을지도.
가족(혹은 그에 준하는 유대감이 있는 관계)의 울타리를 벗어나면, 우리는 곧바로 '아무도 아닌' 상태가된다.
황정은의 '아무도 아닌'을 읽은 다음날, 남편에게 들은 회사이야기는 나에게 어떤 감정의 겹침을 주었다. 그래서 하루종일 우울했다.
나는 남편이 회사에서 사람임을 숨기고(?) 기계처럼 일하는것이 슬펐다. 아마도 나는 지금 너무나 온전히 사람으로 살고있어서(나의 모든 행동을 위대하게 바라보는 아들로 인해서)그 강력한 대비때문에 더 슬플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