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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지현 Jul 28. 2017

850일째 육아일기

독박육아, 그 한가운데 서.

 올해는 유난히 폭염이 빨리 왔다. 해 뜨자마나 빛이 드는 동향집이라, 아침부터 문열고 환기시킬 틈 없이 집안은 벌써 찜통이다. 아이가 잠에서 깨면 아침밥을 먹이고 씻고 집을 정리하면 밖에서 외부 활동을 한다. 그런데 며칠째 지속된 폭염으로 밖에 나가지 못했다. 아이도 지루해 하고, 나도 아이와 놀아주기에 한계가 왔다. 28개월이 되고서는 잠시간도 줄어서, 웬만큼 몸으로 놀지 않고서는 낮잠을 아예 자지 않았다.

 남편은 퇴근 후 캐드 수업을 듣기 시작했다. 직장인의 자기계발이 필수가 된 현실에서, 또 지금 하고있는 업무에 적성이 맞지 않아 힘들어하는 남편을 위해 캐드 수업을 듣도록 독려해줬다.

 그렇지만 세살아이를 하루종일, 매일매일 혼자 보는것은 가끔 미칠듯한 답답함을 느끼게 한다.

 

episod. 문화센터 가는길


폭염의 한가운 데 쯤 되던날, 아이는 낮잠을 자지 않았다. 그 날은 오후 다섯시 문화센터 수업이 있던 날이었다. 원래라면 내가 운전해서 아이를 데려가는데, 그날 따라 '타요버스 타러가자' 라고 노래를 부르는 아이 덕분에 버스를 타고 가기로 했다. 넉넉히 4시 반에 나서야 하는데, 잠시 다른데 정신이 팔린건지 문득 시계를 보니 벌써 다섯시였다. '에잇, 덥고 귀찮다 가지말자' 싶었는데, 이렇게라도 나가려고 문화센터를 신청했지, 하는 생각에 택시를 잡아타고 가기로했다.(집으로 돌아올 때 버스를 타기 위해서, 차를 가져갈 수 없었다)

 아이를 데리고 택시를 타면, 그 전과 확실히 다른점이 하나있다. 택시 기사님들의 열에 아홉은 꼭 말을 건다는것. "아이고 귀엽네, 몇개월이에요?"를 시작으로 "첫짼가요?" 부터 시작하는 호구 조사에 "밥은 잘먹어요? 어린이집 다녀요?"등등등 쉽게쉽게 말을 걸어오신다. 아마 택시기사님의 대부분은 나의 부모님과 연세가 비슷하거나 더 많으신 분들이 많아서 대부분 손주를 보신 분들이다. 그래서 그런지 다들 당신들의 손주를 보는것 처럼 이뻐해 주신다.

 그날도 넉살 좋아보이시는 기사님께서 "아이고~ 통통하네" 하시면서 대뜸 "모유먹였지예?" 라고 물으셨다. 나는 약간 당황했다. 그러고는 "예.." 라고 대답했다. 그러더니 기사님왈, "모유먹어야지~ 소젖먹으면 안돼~"

 아이를 키우면서, 제일 많이 들었던 질문 중 하나가 모유수유 여부에 관한 질문이라, 이제는 그러려니 싶은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속에서 은근한 짜증이 올라오는것은 어쩔 수 없었다. 엄마의 모유가 수도꼭지 처럼 틀면 나오고 아이가 물면 먹는것 처럼 간단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특히 남자 어른들)을 일일이 붙잡고 설명 할 수 도 없는 일이고, 모유를 먹이기 이전에, 이가슴은 내꺼니까 내가 알아서 선택한다고. 그러니 제발 신경끄시라고. 속에서 맴도는 말을 밖으로 낼 수 도 없는 일이다.

  넉살 좋은 기사님의 더 거슬리는 발언은 그 이후에도 이어진다.

 "나는 딸 둘이고 아들 하난데, 다 결혼해서 손주가 많아~"

 " 다복하시겠네요"

 "나는 우리 며느리보고 셋은 낳으라고 하는디, 힘들다고 둘만 낳겠다네"

  "......."

  "딸래미들은 뭐 지들 알아서 할꺼고, 며느리는 셋은 낳아줘야제~"

   "......."
 불쌍한 며느리, 저 아저씨에게는 딸이 자식을 키우는것은 안쓰러워 보이고 며느리가 자식을 키우는것은 당연하게 보일테지.

 나는 더 이상 넉살좋은 기사님과 대화를 나누고 싶지가 않았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처음보는 여성(아이엄마)에게 아무렇지 않게 자식계획을 묻는다던지, 자연분만 했냐는둥 모유수유 했냐는둥, 여성의 몸의 개인적인 부분들을 공적인 물건 대하듯이 말을 한다.

 기사님은 "몸 좀 망가지면 어떠냐"는 어이없는 말로 여성을 '출산기계'처럼 인식하는 무개념적인 발언도 서슴없이 하신다.

 자궁과 젖가슴은 공공재처럼 여기면서 정작 육아에 대한 책임감은 엄마에게로만 돌리는 현실이 참으로 답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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