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를 읽은 후
무슨 책 제목이 저렇게 자극적이지? 무슨 내용이길래?
책을 들어 펼쳐보니, 책의 저자는 1999년 미국 콜롬바인 총기난사 사건의 주범 두명 중 한명인 딜런의 엄마였다. 세상에나! 무고한 학생들을 총으로 마구 쏴서 죽인 가해자의 엄마가 쓴 책이라니. 나는 밖에서 뛰어놀고 있는 내 아들이 만약 피해 학생이었다면 하는 상상이 잠시나마 머리를 스쳐갔다. 그 끔찍한 상상을 하면 도대체 그 가해자 엄마는 무슨 생각으로 이런 책을 쓴 것일까? 평생 숨어서 속죄하는 마음으로 살아도 용서받지 못할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순간적으로 그 끔찍한 사건이 궁금해졌다. 그래서 책을 샀다. 안타까움을 동반하는 호기심과 우리 아들을 '가해자'로 키우지 않을 수 있을까? 하는 두가지 생각 때문이었다.
그리고 나는 '들어가는 말'을 읽자마자 깨달았다. 그런 방법 같은것은 없다고.
잔인한 살인사건이나 폭행사건 같은 일들이 일어나면 특히 10대 범죄의 경우 많은 비난의 화살들이 가해자의 부모에게로 몰린다. 그것은 당연하다. 부모에게는 양육의 절대적인 책임이 있으니까, 가해자의 부모들이 자식을 잘 못 키웠기 때문에 자식이 괴물이 되었을 것이라 여긴다. 이 책을 다 읽은 지금도 여전히 부모의 책이 분명히 크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는 언제나, 어디에나 존재한다.
에릭과 딜런은 학교에 폭탄을 설치했다. 불행 중 다행인것은 폭탄이 터지지 않았고, 그들은 준비한 총을 꺼내 그냐말로 마구잡이로 난사하여 친구들을 살해한다. 그리고 그 두 사람은 자살한다. 만약 폭탄이 터졌다면 더 많은 희생자가 생겼을 것이다.
이런 극악무도한 범죄를 저지른 가해자의 엄마로 산다는것, 감히 상상조차도 할 수 없고,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먹먹하고 머리가 멍해진다.
내 아들이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상상도 끔찍하지만, 타인을 해치는 가해자가 된다는 것은 0.00001초도 생각해본 적 없다. 그런데 이 책의 저자인, 끔찍한 총기난사 사건의 주범인 딜런의 엄마도 나와 마찬가지였다는 것이다. 그것이 나를 더 슬프고 두렵게 했다.
1.안다는 착각
딜런의 엄마 수 클리볼드는 장애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을 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수는 양육과 교육에 있어서 어느정도 자부심이 있는 사람이었다. 게다가 보수적이기 까지 하다. 아이가 친구집에서 자고 온다고 하면, 친구의 부모에게 전화해서 확인을 하고, 영화를 본다고 하면 어떤 영화를 보여 줄 것인지 까지 친구의 부모에게 물어보는 엄마였다. 딜런의 아빠인 톰도 우리가 생각하는 전형적인, 모범적인 아빠였다. 아이와 운동을 즐기고 사랑한다는 표현을 자주하고 아들을 잘 다독이고 격려할 줄 알았다.
딜런은 어릴때 영특해서 공부를 잘했고 부모의 말을 잘 듣는 아이였다. 고등학교에 들어가서야 몇가지 사고를 내지만, 보통 10대들이 저지를 수 있는 수준의 사고였다. 고등학교 졸업파티에 여자친구와 함께 참석해서 춤을 추고 여자친구의 정수리에 살며시 키스를 하는 아이였다. 대학교도 몇 군데 합격해서 진학을 앞두고 있었다. 이런 '보통'의 아이가 13명을 살해하고 24명의 부상자를 낸 살인사건의 주범이라니.
저자가 사건 이후 약 20년 가까이 흐른 지금까지 엄청난 슬픔과 죄책감 속에 살고 있으리라는 것은 명백하게 느껴진다. 그렇지만 우리는 분명 가해자 가족의 슬픔이라는 것을 받아들이기 힘들다. 설령 공감이 갈지라도 무고한 피해자를 생각하면, 가해자가 자식에 대한 슬픔을 표현한다는 것이 가당치 않게 느껴진다. 그래서 이 책에 그녀의 슬픔과 아픔은 최대한 배제되어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 책은 딜런이 사고를 낸 시점부터 역으로 올라간다. 그리고 엄마인 수 클리볼드가 아들의 계획을 어떻게 알아차리지 못하고, 콜롬바인 사건의 복선이 될 수도 있는 단서들을 놓칠 수 있었는지, 아들에 대해서 얼마나 큰 오해를 하고 있었는지에 대해 서술하고 있다.
그렇지만 그녀는 수많은 단서라고 예측되는 일들을 떠올리지만, 왜 이런일이 일어났는지에 대해서는 완전히 이해 할 수 없다고 고백한다.
수는 몰랐지만, 딜런은 꽤 오랫동안 우울증을 앓고 있었다는 사실이 사건 후 드러났다. 수는 딜런의 말수가 줄어들긴 했지만 그것은 사춘기 10대의 보편적 모습이라고 생각했다. 나 역시도 10대를 되돌아봤을 때, 부모에게 미주알고주알 모든것을 이야기 하지 않았고 많은 비밀들이 있었다. 그것은 우리 대부분의 모습일 것이다. 단순히 말수가 줄어들었다고해서 아이의 우울증을 의심할 부모가 몇이나 되겠는가?
심지어 딜런은 고등학교 때 저지른 실수(에릭과 절도 혐의로 경찰에 신고된다)로 상담치료 과정까지 받는다. 그 때 상담교사가 딜런은 '괜찮은 아이'라며 치료과정을 조기에 끝내기 까지 했다. 그러니까 딜런은 전문가에게까지도 자신의 아픔과 고통을 능숙하게 숨길 수 있었던 것이다.
'아이가 좋은 고등학교에 잘 다니고, 친구들과 잘 어울리고, 좋은 대학에 합격하는 등의 '트랙' 위에 있다면, 우리는 그 아이에게 어떤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기가 쉽지 않다.'(옮긴이의 말 중에서) 그러니까 수 역시도 아들이 보통의 '트랙'위에서 크게 벗어나 있지 않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아들을 면밀하게 살펴보기가 힘들었을 것이다. 게다가 수는 교육자가 아닌가? 그렇기 때문에 수는 자신의 아들에 대해 모든것을 다 파악하고 있다고 착각 했을 것이다.
아이들의 범죄가 부모 탓이라고 믿고 싶은 강력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을 것이다. 제대로 '양육'하고만 있다면, 그 아이는 아무런 문제가 없으리라고 방심하기 쉽고, 부모에게 성실한 자식이니까 밖에서도 성실하리라 쉽게 믿어 버릴 것이다.
요즘 10대들의 잔혹한 폭행에 대한 기사가 매일 올라온다. 자식을 키우고 있는 부모입장에서 분노를 감출 수 없고 안타깝고 슬프다. 그렇지만 그런 자극적인 뉴스를 보면 '내 아이는 안전해'라고 안도하며 '나와 상관없는 이야기'라고 느끼면서 동시에 내 아이를 보호 해야해'라는 극도로 강한 방어 심리가 우리 모두에게 생긴다. 그렇다면 내 아이를 위한 방어심리가 '안전한 사회'로 향하는데 도움이 되는 것일까?
가해자가 극악무도한 사이코패스라고 단정짓는게 쉬워 보이기는 하지만, (실제로 몇몇 사건은 그렇게 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렇게 단정 지으면 우리는 사이코패스를 구별하고 우리 아이를 사이코패스랑 떨어뜨려서 키우는 것이 가능한 것 일까?
이 책의 저자 수 클리볼드가 이야기 하고자 하는것은 결국 우리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이다. 부모가 '내 자식'에 사로잡혀서 모든 것을 안다고 생각하는 순간 '진짜 문제'를 놓쳐 버릴 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어른들이 그저 '10대는 다 그래', 혹은 '싸우면서 크는거야'라는 말들로 청소년 문제를 방관하고 있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부모도 당연히 자식을 면밀히 지켜봐야 겠지만, 학교나 사회도 아이들에게 조금 더 예민하게, 진지하게 반응해야 하지 않을까.
2. 잔인한 뉴스를 보는 위선
1999년 콜롬바인 총기 난사 사건이 일어난 직후, 미국의 많은 신문들이 헤드라인으로 사고 뉴스를 실었다. 자극 적인 사진을 싣는 주간지가 있는 반면에 세세한 보도 지침이 있는 언론사들 도 있었다. 그 지침을 보면 범인 이름은 맨 앞에 한번만 쓰고 두번째 나올 때 부터는 대명사로 지칭한다. 자살한 뉴스라면 유서를 공개하지 말고, 자살 동기를 한가지 이유로 쓰지 않는다. 자살 방법을 쓰지 말고 유가족에 대한 정보도 쓰지 않는다. 이렇게 세세한 지침이 있는 이유는 범죄자의 영웅화, 모방범죄나 모방자살을 막기 위해서 일 것이다.
나는 범인의 얼굴이나 이름을 공개하는것이 분명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이 사회에서 두번 다시 발 붙이고 살면 안되는 극악한 범죄자가 많으니까. 그 사람들을 공개해서 모두가 비난하는것이 '정의'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내가 범인의 얼굴을 봐서, 혹은 블러처리한 잔인한 사건현장의 사진을 봐서 무슨 득이 있는것일까, 하는 생각도 해왔다. 때로는 범행 과정을 담은 CCTV 영상까지도 노출되는데, 그런 것을 보면 범죄를 피하는데 어떤 도움이 되는것일까? 하는 의문도 들었다.
최근, 아니 예전부터 아동 성범죄라든지, 단발적인 잔인한 살해에 관련된 뉴스가 지나치게 '상세'하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특히 요즘 CCTV나 블랙박스 영상 같은것을 보면 도가 지나치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게까지 우리가 알 필요가 있는것일까? 물론 사고를 예방하기 위한 경각심을 일깨우기 위한 것이라면 당연히 알아야 한다. 그런데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불필요한 사진과 내용들을 우리는 너무나도 쉽게 접하고 있다. 당연히 청소년들도 무방비하게 그런 뉴스들에 노출이 될 것이다.
폭력적인 영화나 게임을 즐기는 것이 실제 폭력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는 절대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많은 사람들이 쉽게 접하는 뉴스에 굳이 선정적인 사진을 올리고 폭력에 대한 상세한 설명을 하는것은 나는 과하다고 생각한다. 누군가는 '알 권리다' 라고 주장 할 수 있겠지만, 누군가에게는 분명 폭력적인 뉴스를 자신도 모르게 오락적으로 소비하는것에 불과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