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들의 역할

“‘EVIAN’ is ‘NAIVE’ spelled backwards.”

by 세모아저씨


여태 나를 사로잡은 문장들이 있다.기록하지 못하고 지나갔기 때문에 잊혀졌을 법도 한데 잊히지 않은 그 문장들은 어떤 감정들의 ‘정 안 든 집’이 된다.꼭 그 문장들을 처음 마주했을 때의 감정은 무언가 솟구치긴 하는데 도무지 기록할 만큼 정확하지도 뭔지도 모르겠는, 진저리가 나지만 계속 들락날락은 해야 하는 그 ‘정 안 든 집’이 된다.나를 사로잡은 문장들. 그 문장들은 정말 고맙게도 숨통을 트이게 하는 해답을 주곤 한다. 다만, 해답에 이르는 과정은 문장과 문장가 누구도 의도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강조하고 싶은 것은 나를 사로잡은 문장에 대한 경외로 오래 탄식할 필요도 정말 없다는 것!그리고 문장들에 대해 기록하는 것은 그저 필사하는 것과는 전혀 달라야 한다. ‘정 안 드는 집’에 머물며 있는 것은 지루한 것과 온전히 담 쌓고 싶은 강렬한 욕망이 있어야 하며 당연한 반복에 마저 몸서리 쳐야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 문장들만이 나를 울린 것도 아니며 그곳에서만 책을 읽은 것도, 적은 생각만 한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나의 뒤엉킨 사고에서 도무지 풀어낼 진도가 안나가도 돌면 돌아보라지 같은 마음을 먼저 먹고 있어야 하고 시공간이 다 답답해 일단 어디로든 출발해야될 것 같아 집 안팍을 서성여야 하는 것이다.정말 그러다가 문득, 문득 다른 관점에서 나를 한참을 들여다볼 어떤 ‘딴청’을 얻는것 뿐이다. 벗어나고 싶은 욕구가 도무지 가둬 둘 수가 없을 때임에도 다시 또 머무를 수 밖에 없는 현실의 상충하는 감정에서의 탈출구. (다행히 그 탈-내부적인 ‘딴청’은 주로 애매하게 내가 스스로의 생각에 대해 얼마만큼 나태했는지를 간단하게 상기시켜 준다.)특히 그 집을 정리하는 것에 물리적인 포화 상태일 때일수록 생각의 진도가 더 잘 안 나간다. 사색이랍시고 쌓으려던 몇 가지 대단한 습관보다 손자를 놀아주러 나온 조부모를 바라보던 놀이터 느린 그네 위에서 정립한 두어 가지 것들이 지금껏 변함없이 나의 삶을 이끌고 있다.몇 번이고 박차고 문밖을 나설 때 대부분은 일상에서 느끼는 감정이 틀렸다고 빗금이 쳐질 때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때가 또 좋은 건 몇 낱말만 가지고서도 그럴싸한 문장의 결합을 만드는데 용이한 때이기도 하다는 것이다.뭐랄까. 중요한 가지관이 통째로 빠진 것도 동파된 것도 아니나 여기저기 작은 균열로 누수가 있는 뭐 그런 때. 중요한 수선이 필요하지도 않고 어수선한 몇가지 이야기만 하면 되는 때. (종 잡을 수는 없는 때)그리고 감정을 정리하는데에 짧고 굵게 집중해 여러 갈래의 넝마 같은 글을 적어놓고 충분한 정리를 해냈노라고 나를 격려하기도 편한 그런 때를 지금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