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벌 punishment

old world belief

by 오세준

처벌(punishment)은 인류의 사고와 행동을 매우 비슷한 형태로 직조하는 아주 오래된 원형, 요즘 말로는 템플릿이다.

마치 붕어빵 틀 같아서 일단 '처벌'이라는 프레임을 거치면 좌파와 우파가, 진보와 보수가, 남과 여가, 노인과 청년이 하나가 된다.

'처벌'이라는 템플릿은 단순명료하다.

죄를 지었나요? 그럼 벌을 받으세요.
고통스럽나요? 죄를 지어 받는 벌이니 받아들이세요.
그 벌은 누가 내리냐구요? 당신 위의 무언가(신, 인과응보, 사법체계 등)랍니다.

이 템플릿에 젖으면 이렇게 된다.

"니가 잘못했으니까 내가 널 때리는거야" - 아동폭력
"니가 벗고 다니니까 그런 일을 당한거야" - 성폭력
"니가 약하니까 친구들한테 당하는 거야" - 학교폭력
"니가 사람을 죽였으니까 널 죽이는 거야" - 사형제도
"니가 먼저 쐈으니까 나도 널 쏘는거야" - 전쟁

뭐 이 리스트는 끝도 없다.
그만큼 만연해있다. 착한 사람에게도, 그리고 나쁜 사람에게도.

처벌이라는 템플릿은 우리에게서 '책임responsibility'을 앗아간다.

처벌이 가져다주는 고통은 우리가 가해자로서 타인에게 가했던 고통을 상기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저 사회에 대한 복수심을 키우는 연료로 쓰인다.

'나보다 더 심한 짓을 한 놈들이 천지에 널렸는데... 재수없게 나만 걸렸네'

우리는 처벌로 받은 고통으로 죄를 탕감하려든다. 자신에게 권리가 생겼다고 믿는다. 더 이상 죄의 책임을 추궁당하지
않을 권리가.

죄인은 변하지 않는다. 그가 처벌받는 한.

나는 혹은 너는 이런 잘못을 했으니 이런 저런 공격과 폭력과 고통을 감내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믿는 사람들은 바로 이 '처벌'이라는 템플릿을 가지고 계속 똑같은 말과 행동을 쏟아낸다.

그리고 그것은 명백히 나와 타인 모두에게 '해롭다'.

나는 단 한번도 처벌로 나의 태도나 신념, 행동을 바꾼적이 없다. 그것이 키운 것은 오직 증오였다.

나를 바꾼 것은 단 하나였다.

신뢰

나에게 잘못을 바로잡을 힘이 있고 시간이 있다는 누군가의 신뢰가 나의 죄와 함께 사는 길을 열었다.

역설적으로 처벌이 사라지면 우리는 영원히 자신의 죄를 기억한다. 죄의 진짜 주인이 되어 그것을 부정하지 않고 인정하고 책임지는 삶을 살게 한다.

이제 인류의 오랜 유산이자 악습인 처벌을 내려 놓을 때다.
안에서도, 밖에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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