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안의 작은 붓다
- 함께 일하는 사람에게 배운다 -
직장 동료가 한 명 있다.
나와 5년 가까이 함께했다.
당시 업계 탑급의 과외중개업체에서 실적 1위 찍었던 능력있는 사람인데 워라밸이 X망이라 울 회사로 지원해서 입사했다. (울 회사 칼퇴에 휴가 일년에 25개 넘게 쓸 수 있다. 대신 급여 짬 ㅠㅠ)
나와 나이대도 비슷하고 애기아빠라는 공통점이 있어 금방 친해졌다.
여자가 9할인 조직 분위기에 적응을 잘 못했는데 그나마 내가 있어 지낼만했다고 말했다.
나 역시 그의 적극적이면서도 선량하고 가정적인 면이 좋았고 우린 서로 의지하는 든든한 동료사이가 되었다.
시간이 흐르고 우리 둘은 나란히 팀장이 되었다.
나는 업무 성격상 신사업 기획, 제안, 연구, 핵심 고객사 운영 등 다양한 업무를 그때 그때 필요한 인원을 내외로 조달해 수행하느라 팀원을 리드하는 팀장 역할을 별로 한게 없었다.
팀장 업무에 대한 애착도 약했고 그냥 내 할 일 하면서 팀 단위 업무를 간간히 수행하는 정도였다.
하지만 ㅇ팀장은 각자 고객사를 맡은 팀원들을 총괄 관리하고 직접 고객사의 책임자 급을 상대하면서 계약관계를 유지하고 용역 업무를 성공적으로 이끌어야 하는 그야말로 '팀장' 업무를 수행해야했다.
본인 스스로 팀장직에 대한 애착을 가지고 고객사 관리와 직원 교육에 힘썼다. 나보다 훨씬 열정적이었다.
하지만 일 년의 시간이 지나고 우린 둘다 팀장직에서 짤렸다.
나는 연구팀장이면서 a사 위탁용역 운영팀장, 그리고 운영 2팀장, 무려 직책이 세 개였는데 그 중 하나로 팀원 4명을 관리하는 운영 2팀장직을 내려 놓았다.
하지만 ㅇ팀장은 그냥 하루아침에 운영팀장에서 갑자기 영업직군으로 전환되었다.
그 이유는 팀원들이 ㅇ팀장을 싫어하고 따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팀원들이 제기한 문제는 리더십이었다.
팀원들이 자꾸 팀장의 리더십 스타일을 싫어하고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하니까 결국 대표님이 팀장 제도를 없앴다.
ㅇ팀장 리더십 스타일은 약간 올드했다.
성과 및 목표지향, 직선적, 저돌적이었고 회의를 자주하면서 팀 내 결속을 다지고자 했다.
본인 성향이 원래 그러기도 하지만 이전 직장에서의 경험도 크게 작용했다.
그곳은 성과가 낮으면 쪼는 상사가 있고 성과가 높으면 월급만큼의 보너스가 주어졌었다.
하지만 이전 직장과 달리 직원들 성향이 비위계적, 수평적, 안정지향, 내성적이고 개인주의적인 현 직장에서 ㅇ팀장은 팀원들과의 궁합이 잘 안 맞았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나와 ㅇ팀장 둘다 팀원을 콘트롤할 아무런 권한이 없었다.
즉 팀장에게 팀원에 대한 평가와 보상 권한이 전혀 주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우린 팀원들을 관리하고 독려하면서 조직의 목표를 달성해 나가는 '미션 임파서블mission impossible'을 수행해야 했다.
왜 impossible이었냐면, 팀원들이 각자의 목표를 수행했을 때 주어지는 평가와 보상이 불명확했고 우린 그 과정에서 조직이 잘 되어야 팀원 개인도 잘 된다는 뻔한 '공수표'를 남발해야했기 때문이다.
이는 한편 조직의 구조적 문제이기도 했다.
일단 대표님 스스로의 경험이 제한적이었다.
실적으로 평가하고 보상하고 책임을 묻는 조직이 아니라 공통의 가치와 사명감, 조직에의 헌신을 요구하는 곳에서 20년 가까이 일하셨다.
그러다보니 일반 기업에서 쉽게 도입하는 각종 평가제도왜 성과금, 인센티브 같은 것도 도입을 주저하셨다.
그리고 그 결과는 대표님이 원하는 모습- 각자가 워라밸 속에서 알아서 열심히 일하고 수평적인 관계 속에서 스스로 성장하는 직원들이 최상의 성과를 내는 조직이 아니었다.
서로를 대하는 '태도'가 외부에서 보면 깜짝 놀랄 정도로 수평적이긴 하지만 중요한 의사결정은 대표와 팀장 선에서만 이루어지다보니 팀원들은 적극적인 의견 개진을 하지 않았다.
한편 어떤 일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팀장은 평가나 보상 권한없이 업무지시를 하다보니 팀원들에게 각자 맡고 있는 고객사 외의 일을 시키기 어려워서 그냥 본인들이 하거나 알바를 쓰게 되었다.
뭐 내 경우도 팀원들에게 일을 시키기보다는 주로 그냥 내가 일을 해버렸다. 야근도 내가 더 많이했다.
팀원들에게 일을 시키기 어려웠다.
힘들게 일했을 때 주어질 보상을 약속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일년의 팀장제도 실험이 끝나고,
나는 제 자리, 조직 내의 프리랜서 같은 원맨쇼 스타일의 연구 및 기획, 제인업무로 돌아왔지만 ㅇ팀장은 아니었다.
관리와 운영 대신 영업이라는 완전히 새로운 직무가 주어졌다.
하루아침에 직군이 전환된 것이다.
o 팀장에게는 청천벽력같은 일이었다.
스트레스로 공황장애 초기 증상이 올 정도였다.
배신감과 좌절감에 퇴사를 고민하기도 했지만 그는 결국 조직에 남았다.
그렇게 ㅇ팀장은 한 동안 별다른 성과 없이(당연하다) 고민과 학습의 시간을 1년 가까이 보냈다.
그 시간 동안의 성과는 초라했다.
본인의 급여 수준에 해당하는 기대 매출을 올리지 못했다.
하지만 본인은 당당했다.
직접 고객과 마주하는 경험을 쌓으면서 어느 정도 영업에 적응했고 앞으로 성과를 낼 수 있을거란 자신감이 붙은 상태였다.
그리고 2019년이 밝았다. 우리 둘은 회사가 시장에서 경쟁력을 잃고 2년 연속 매출 제자리 걸음을 하는 상황에서 영업전략을 세워야했다.
설상가상으로 핵심 고객사 두곳이 이탈하는 위기까지 닥쳤다.
수주를 하지 못하면 작년보다 매출이 더 떨어지고 인원 감축까지 고려해야 할 지경이었다.
우리는 업계 4-5위라는 지위를 받아들이고 '가성비 전략'을 세웠다. 제안 pt 내용은 입찰시 타사와의 점수 차이를 좁히는 데 초점을 맞춰 평가점수에서 1위와 1-2점 차 내로 들어가는 걸 목표로 했다.
그리고 최저가를 썼다.
수익은 떨어지지만 당장 매출을 채워야 하는 상황이었고 이미 경쟁사 중 하나가 최저가 전략으로 몇차례 성공을 거둔 후였다.
우리는 수위권 업체들이 주저하는 틈을 치고 들어가 최저가로 입찰해서 몇 군데 사업을 따냈다.
그리고 ㅇ팀장이 작년에 영업해 놓은 곳들의 의사결정이 마무리되면서 새로운 계약이 체결되는 등 영업 성과가 본격적으로 나기 시작했다.
최저가 전략을 뒷받침하기 위한 내부 전산 시스템 정비도 마무리 되었다. 인원을 추가로 채용하는 일 없이 현재의 직원수를 유지하면서 무리없이 새로 수주된 위탁운영업무를 수행할 시스템이 마련된 것이다 (내가 이거 하느라 1년을 썼다. 업체 중간에 한 번 바꾸면서 말이다 ㅠㅠ).
결국 ㅇ팀장은 본인이 연초에 공언한 것보다 훨씬 더 큰 매출을 올렸다.
아마 거의 x억 가까이 됐을 거다.
그걸 혼자서 올렸다. 영업직이 본인 한 명았으니까 ㅋㅋㅋ
그 덕분에 올해 총 영업매출은 xx억을 찍을 것 같다.
오랜만에 자리수가 바뀌는 거다.
개인적으로 무엇보다 놀란 것은 ㅇ팀장이 보여준 회복탄력성이었다.
팀장직 박탈과 직군전환이라는 엄청난 스트레스 속에서 ㅇ팀장이 택한 것은 미움과 자책, 후회가 아니었다.
ㅇ팀장은 대신 나에게 제안 업무를 직접 물어보면서 배워나가고 관련 교육에도 열심히 참석핬다.
또한 직접 고객사에 전화를 걸어 영업을 하는 콜드콜 업무도 하고(초반엔 자존심 상해서 무척 힘들었다고 한다), 발로 뛰어 다니면서 고객들을 만나고 관계를 쌓아 나갔다.
대표님은 발이 굼뜬 것 같다며 불만이었지만 내가 보기엔 충분히 노력하고 있었다. 티가 잘 안 났고 본인도 말보다는 성과로 말하고 싶어했다.
그리고 그 결과를 올해 직접 조직에 보야주었다.
놀라운 영업 매출로 말이다.
물론 초반 제안 pt나 발표 요령은 내가 도와줬다.
원래 내 일이었으니까.
하지만 신사업 준비하느라 바빠서 초반 3번 까지만 틀 잡아주고 완전히 손을 뗐다.
그런 상황 속에서도 본인이 이전에는 익숙치 안호 잘 못했었던 일, 제안 pt 만들기와 발표하기를 배우고 연습해서 그런 성과를 냈다.
대단한 일이다.
같이 오랜 시간을 보냈지만 이 정도로 빠르고 훌륭하게 새로운 직무에 적응할지 몰랐다.
동료로서 곁에서 보고 많은 것을 배웠다.
제안 업무는 내가 가르쳤지만 정작 더 큰 걸 배운건 바로 나였다.
ㅇ팀장으로부터 '수용'과 '전념'의 태도와 '변화'의 용기를 배웠으니 말이다.
도대체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었을까?
ㅇ팀장의 답변은 이랬다.
"그냥 다 내려 놓고 내가 할 일에 집중하니까 잘 풀리더라고. 그리고 차라리 혼자서라도 해내겠다고 맘 먹고 조금씩 여기저기 씨앗을 뿌려 놓으니까 그게 또 하나 둘씩 성사가 되더라고"
감탄했다.
역시 직장생활 하면서 사람한테 제일 많이 데이지만 사람으로부터 배우는게 제일 크기도 하다는 점을 다시 한 번 깨달았다.
ㅇ팀장에게 올 한 해 아직 좀 남았지만 정말 애썼다고 멋진 모습을 보여줘서 고맙다고 말했다.
ㅇ팀장 또한 나에게 초반에 영업 제안 업무를 도와줘서 고맙다고 말했다.
얼마전 김용석 코치님의 제안 관련 교육을 함께 들으러가서 종각 역 근처의 한 분식집에서 떡볶이 라면 튀김 김밥을 시켜 나눠 먹었다.
먹던 중 어떤 연인이 옆자리에 앉아 튀김을 소중대 중 어느 사이즈로 시킬까 고민하고 있었다.
보통 이런 상황에서 난 그냥 내 밥 먹고 관심을 끊는다. 그동안 그렇게 살아왔고 사람들에게 그닥 관심을 두지 않는 편이다.
하지만 ㅇ팀장은 달랐다.
우리가 시켜먹은 사이즈가 중인데 남자 둘이 먹기 배부른 양이라고 소짜 시키는게 좋을 거라고 말을 걸었다.
그리고 다 먹고 나가면서도 맛있게 드시라는 말을 빼놓지 않았다.
뒤통수를 한 대 맞은 기분이었다.
아, 태도였구나!
삶을 대하는 태도,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ㅇ팀장의 가장 큰 힘이자 재능임을 새삼 발견했다.
먼 산 속 암자나 인도의 아쉬람이 아니라 매일 가는 직장 안에서도 스승이 있었다.
고마워 ㅇ팀장.
덕분에 좋은 거 배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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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 ㅇ팀장이 힘든 시기 큰 도움이 되었던 것이 세 가지 있었다. 본인이 직접 밝힌 바로는,
하나는 '마보'라는 명상앱이다. 실제 본인이 스트레스를 극복하는데 큰 도움을 받았다며 영업 제안에 포함시키고 실제 일부 고객사 도입에도 성공했다.
또 하나는 법륜스님의 즉문즉설 동영상 강의였다. 출퇴근 시 주로 들었는데 관점을 바꾸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마지막 하나는, 바로 나다. ㅋㅋㅋ
별거는 아니지만 ㅇ팀장 힘내라고 곁에서 응원 많이 하고 이야기 많이 나누고 올해 초 영업 제안 업무 인계하면서 같이 야근하고 밤새고 많은 시간을 보냈다.
남자는 의리 빼면 시체 아니겠능가? 케케케.
함께 한 동료가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 반, 그리고 내가 야근 할 일을 더는 목적도 반, 결국 둘다 성공했다.
일타쌍피의 좋은 예라 하겠다.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