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5 총선을 앞두고
초딩 때부터 선거 때가 되면 신이 났다.
홍보물들이 오기 때문이다.
홍보물에 실린 공약, 그리고 사진을 보면서 나름 후보를 평가해보는 것은 나의 '놀이' 중 하나였다.
어려서부터 야당(특히 진보정당) 지지자였던 나는 늘 '한 쪽'에 불과한 그들의 홍보물이 너무나도 아쉬웠다.
지금의 미통당, 그 당시에는 민정당, 한나라당의 홍보물들은 늘 칼라풀하고 페이지수도 많았다.
민주당은 항상 미통당 지면수의 60~80% 수준이었다.
컬러나 디자인도 내 미적 기준엔 못미쳤다.
맞다. 그 당시 미통당은 모든 면에서 강자였다.
나는 늘 홍보물들을 보며 정신승리를 해야만 했다.
'우리 후보들의 공약이 그래도 더 개혁적이야'
'우리 후보들의 홍보물은 흑백이어도 진정성이 담겨 있어'
'디자인보다 더 중요한 건 메시지야'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나는 늘 지는 편에 마음을 주었고,
질 것을 알면서도 완주하는 후보들에게 한 표를 주었다.
그러나 1998년 김대중 대통령의 당선,
2002년 노무현 대통령의 당선부터 세상이 바뀌기 시작했다.
민주당을 포함한 한국의 진보 정당들은 더 멋지고 더 세련되고 더 보기 좋아졌다.
후보들의 인물부터가 그랬다.
전에는 눈빛은 형형하지만 피부가 상해 있고 어딘가 투박하고 모자른 구석이 보이는 후보들이 홍보물에 보였었는데,
언제부터인가 미남 미녀들이 늘어났다.
예전 미통당의 전성기인 민정당-한나라당-새누리당 시절의 세련된 디자인과 멀끔한 인물 사진은 이제 민주당의 몫이 되었다.
그렇다.
우리는 여당이 되었고,
나는 여당 지지자가 되었다.
나는 한 때 미통당류가 지배하는 세상이 영원할 거라 착각했다.
그렇게 패배주의에 빠져 개인의 깨달음만을 구하며 명상과 귀농의 삶을 꿈꿨다.
눈을 뜨면 곧 눈을 감고 내면으로 들어가 밖으로 나오지 않으려 했다.
나는 분명 눈을 감고 있었다.
바깥에서 빛을 구하기 위해 싸워온 이들 덕분에 어느 날 눈을 떴다.
김대중 대통령, 노무현 대통령, 민주당과 진보정당의 의원들, 그리고 열성 지지자들까지.
그들이 발한 찬란한 빛 덕분에 나는 세상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그 빛을 보고 희망을 안고 살기 시작했다.
그 전의 나는 죽어 있었다.
늘 눈을 감고 에고의 죽음을 기원했다.
세상이 싫었기 때문이다.
다, 옛 이야기다.
이번 총선은 우리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세상의 판세가 뒤바뀌었음을,
이제 빛이 어둠보다 더 깊고 찬란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선거가 될 것이다.
지금 선거 홍보물을 보라,
얼굴에서 빛이 나는 사람들이 어디에 더 많이 몰려 있는지
어려서 내가 보았던 잿빛 세상이 바뀌는데 한 세대가 넘게 걸렸다.
긴 시간이었지만 함께 버틴 사람들이 있어 외롭지 않았다.
사람 귀한 줄 모르는 세상에서 사람 귀한 줄 아는 세상이 오기까지 그 동안 고통받고 고문받고 상처받고 절망하고 아파하고 죽어간 모든 이들에게 위로를 보낸다.
민주당이 마음에 들지 않는 분들이 많은 것으로 안다.
부족함이 많은 정당이고 한계도 분명하고 새겨 들어야 할 비판과 고언들도 참으로 많다.
그러나 부족하더라도 민주당은 우리 사회에 빛을 가져온 집단임을 부정할 순 없다.
그들이 지금의 미통당처럼 어둠으로 변하는 날이 언젠가는 올지도 모르겠지만, 적어도 지금은 아니다.
나는 내일 사전선거에 참여할 것이다.
그리고 4월 15일에는 맥주 한 캔을 까고 티비 앞에 앉을 것이다.
그렇게 세상이 바뀌는 또 하나의 장면을 목도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