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Colin Marshall, THE NEWYOKER 기고문
왜 미국에서 한국으로 이주했냐는 질문을 받을 때, 난 제1세계(First World)에서 살고 싶어서라고 말하곤 했다. 반은 농담으로 한 말이었지만, 이 대답이 최근들어 참 당황스러울만큼 그럴싸해졌다. 한국을 여행하는 미국인들은 항상 서울의 지하철 시스템(아마도 세계에서 가장 우수할), 일군의 사회기반시설들과 고국에선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상의 작은 편리함들에 대한 부러움을 표한다. 하지만, 불과 몇 주 전만 해도, 친구, 가족, 심지어 편집자로부터 이곳의 코로나바이러스 발병에 대한 우려의 메시지들을 받고 있었다. 미국식 삶이 전반적으로 보다 안전하고, 보다 안정적이라 믿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 현재 미국의 팬데믹 광란과는 양립할 수 없는 믿음이었지만 말이다.
지난 1월 말경 첫 확진 사례 이후(역자 : 정확히는 1월 20일), 한국의 언론에서 COVID-19는 피할 수 없는 이슈였다. 내가 매일 아침에 듣는 1등 방송(now leads with nothing else) "김어준의 뉴스공장"은 국내의 상황이 개선되면서 방송에서 다루는 범위를 다른 국가들의 코로나바이러스 대응으로까지 확장시켰다. 어느 날, 이 방송은 미국 CDC와 다른 기관들의 공무원들이 한국의 테스트와 방역 전략을 칭찬하고, 왜 미국은 그렇게 할 수 없는지에 대한 발언들을 모아 내보냈다. 프로그램 대표 진행자인 김어준은 몇 차례나 이렇게 말했다 : "이젠 우리가 선진국developed nation이라고 생각하지 않나요?". 마치 그 자신만 그 사실을 깨달은 것처럼 약간 놀란듯한 만족감이 깃든 말이었다.
물론 김어준이 직접 "developed nation"이란 표현을 쓴 건 아니다 : 그는 한국말로 뒤쳐졌다는 뜻의 후진국hujinguk의 반대말로 발전된 국가를 가리키는 선진국seonjinguk이라는 표현을 썼다. 비록 한국이 끊임없는 스펙터클은 팝뮤직의 생산, 사회 모든 부문에서의 연결성(wiredness), 최근 보여준 미국 시상식 싹슬이 능력 등과 더불어 적어도 지난 10년 사이이 모든 선진국들 중에서도 가장 활기차고 인상깊은 모습을 보여주긴 했지만, 한국인들은 여전히 자신의 국가를, 본질적으로, 여전히 후진국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다. 저명한 이코노미스트인 한국인 친구 한 명은 언젠가 이를 두고 국가적 열등감 콤플렉스라고 묘사한 바 있다. 저개발 사회의 부끄러운 특징으로 여겨지는 류의 사고들, 예를 들면 2014년 세월호 침몰 같은 재난 상황에서 촉발되는 콤플렉스라고 말이다.
한국의 현대를 훑어보면 이러한 현상을 포착하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를 두고 몇 가지 원인을 찾아 볼 수 있다. 어떤 사람은 20세기 초반에 시작되어 2차 세계 때까지 지속된 일본 식민지 지배의 유산을 탓한다. Michael Breen은 "몇몇 한국인들이 자신들의 이른바 후진성이 타고난 열등함의 결과인 것으로 결론을 내리게 유도하는" 일본의 부정적 선전이 "지속적인 폭격" 수준으로 이뤄졌음과 동시에, 일본의 지배자들이 강제로 한국인들을 "그 전에는 없었던 기차, 전화, 전기의 문명세계, 진짜 세계"로 이끌기도 하였다고 기술하였다. 심지어 진짜 한국적인 것들조차 수치심의 근원으로 틀지어지기도 했었다. 책 "한국 멋의 탄생: 어떻게 하여 한 국가가 대중문화를 통해 세계를 지배하는가The Birth of Korean Cool: How One Nation Is Conquering the World Through Pop Culture"에서 저자 유니 홍Euny Hong은 배추와 마늘로 만들어진 한국인의 대표 발효식품 김치가 야기했던 "열등감 콤플렉스"를 제기하기도 했다. 미국계 한국인들이 "어울려 놀기엔 더럽고 냄새나는 불가촉천민(不可觸賤民)"으로 여겨지기도 했었다는 것이다. 이코노미스트지 전 한국 특파원이었던 Daniel Tudor는 한국을 두고 "특히 미국으로부터 인정받기 원하는 국가"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이제 아이러니한 것은, "한국이 여러 면에서 미국을 능가하고 있으며 평균 수명도 길고 더 건강하고, 더 놓은 교육 수준에, 실업률도 낮고 빈곤 속에 살 가능성도 낮다는 것이다."
한편, 대한민국의 다사다난했던 짧은 역사 동안, 한국을 떠난 사람들이 미국에 자리잡는 경우도 있었다. 서울에 거주하는 한국계 미국인 Krys Lee는 그녀의 단편집 "Drifting House"에 박정희 독재정권을 피해 아메리칸 드림을 좇아 떠난 미스터 리의 이야기를 담았다. 미스터 리는 이민 후에도 "한국이라는 개발도상국에서 매일 벌어지는 사건사고 소식들-1986년 후추 스프레이로 공격받는 시위대, 1995년 여러 일가족을 죽게 한 삼풍백화점 붕괴를 보면서 떠나기를 잘했다고 확신했다. 이후 국가가 번창하고 과테말라부터 몽고까지 세계 곳곳에서 똑똑한 유학생들이 몰려오고 영화와 기술 분야에서 트렌드를 만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오늘날, 한국전쟁과 그 직후를 겪은 세대는 미국이 자선을 베푸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내가 처음 한국에 왔을 때, "글로벌화된" 젊은 사람들조차 내가 왜 궁극의 선진국인 미국 대신 이곳을 택했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에 대한 대답으로 나는 서울이 상대적으로 낮은 폭력범죄율, 공중화장실의 존재 등 가장 큰 미국의 도시들조차 갖지 못한 것을 가지고 있음을 열거했다. 뭐 이제는 그냥 두 국가가 코로나 바이러스에 어떻게 대처했는지를 비교하기만 하면 된다. " Anne Applebaum이 The Atlantic에서 쓴 것처럼, "너무나 오랫동안 스스로가 세계 최고의, 가장 효율적이고, 가장 기술적으로 앞선 사회에서 살고 있다고 생각해온 이가 벌거벗은 임금님 신세가 될 지경에 이르렀다."
4월 8일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한 첫 번째 죽음이 보고된, 서울에서의 삶이 변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새로운 확진 사례를 알리는 국가 안전안내문자가 하루에도 몇차례씩 모든 핸드폰에서 일제히 울린다. 확진자 총수는 4월 초 1만을 넘기면서 이 숫자가 많게 들리겠지만, 바이러스 전파는 분명 안정화되었다. 이는 부분적으로 국가 전역에 걸친 검진 시설들의 빠른 설치와 전 세계적으로 주목받은 드라이브-스루 센터로 대표되는 검진 접근성 덕분이기도 하다. 서울은 다른 국가의 수도들을 유령 도시로 뒤바꿔놓은 류의 전반적인 락다운을 시도하지 않았다. 확진 또는 확진자와 접촉한 것으로 의심되는 사람들이 일반 대중들로부터 떨어져 격리되긴 하지만, 손세정제, 마스크, 신선식품, 기타 필수품이 정부로부터 주어지고 있다. 4월 1일부터는 해외로부터 유입되는 모든 한국인과 외국인은 동시에 2주 동안의 자가격리가 의무화되었다.
현재 보기엔 상대적으로 칭찬받을만하지만, 집단발병에 대한 한국 정부의 초기 대응은 대중의 분노를 야기했었다 : 위험이 곧 끝날 것이라는 문재인 대통령의 섣부른 확언에 대한 분노, 마스크 판매 상황에 대한 계속 뒤바뀌고 모순된 정보 제공에 대한 분노, 중국으로부터의 입국을 막으라는 의사협회의 권고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정부에 대한 분노 등.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에서 계속되는 락다운, 치솟는 감염률, 추락하는 주가, 사라지는 화장지에 대한 소식과 소셜 미디어의 글들을 보고 있자면, 나는 그의 바람잘날 없는 고국을 향해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던 이민자 미스터 리가 된 기분이다.
이제 고개를 들어 내 주변에서 지속되고 있는 서울에서의 상대적으로 정상적인 삶을 바라본다(김어준이 지난 달 국가 집단 발병의 주범으로 지목해서 비난을 받았던 대구로부터는 수백킬로미터 떨어져 있다). 학교와 기타 공공 기관들, 최근 들어선 체육관처럼 사람들이 밀집하는 사업장들이 일시적으로 문을 닫았다. 하지만, 여전히 카페는 붐비고 거리와 공원은 마스크를 낀 온갖 세대의 사람들로 채워져 있고 스토어에는 휴지가 넘치고 지하철에선 앉아서 가기가 참 쉬워졌다. 갑자기 난 느낀다. 바이러스에도 불구하고, 실은 바이러스 덕분에, 나는 코리안 드림을 살고 있다고 말이다.
Suddenly I feel, despite the virus—or, indeed, because of it—like I’m living a Korean Dream.
더뉴요커(The New Yorker)는 미국의 시사 주간지. 뉴욕 타임스의 기자, 해럴드 로스와 아내 제인 그랜트에 의해 설립되어 1925년 2월 17일에 2월 21일호로 창간되었다. 2주 동안의 기사를 모은 합본을 1년에 5차례 발간하여 매년 47(52-5)권을 간행한다.
잡지명처럼 뉴욕에서 벌어지는 갖가지 사건과 생활상을 주로 다룬다. 단편소설, 문학·미술 비평, 수필, 시, 르포르타주, 만화 등을 싣는데 특히 대중문화에 대한 심도 있는 논평, 정치·사회적 이슈에 대한 각종 기사와 연재만화로 정평이 나 있다. 이코노미스트와 유사하게 고급잡지로 정평이 나있다. 예루살렘의 아이히만도 원래는 이 잡지에서 연재되던 기사이다.
퓰리처상, GLADD 미디어 어워드 최우수 매거진 오버올 커버리지, Peabody Award 등을 수상함.
-출처 : 나무위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