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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물원킨트 May 24. 2024

[짧은 소설] 분실물 (3)

03. 호텔 캘리포니아


    “그럼 일부러 내게 맡겼다는 건가?”


    “역시 당신이군요. 전화는 늦었지만 의도는 잘 파악하고 있군요.”


    “의도?”


    “이를테면 그렇죠. 세상의 것들은 사라지기 마련이라는.”


    그녀의 목소리는 분명 농담과는 충분한 거리가 있었다. 그래, 그녀의 말대로 모든 것들은 사라질 운명이다. 그런데 왜 그걸 내게 말하려고 한 걸까?


    “아직 당신이 모르는 게 한 가지 더 있어요.”

 

    “내가 모르는 거?”


    “당신이 잃어버린 그 지폐가 지금 어디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글쎄, 혹시 당신이 가지고 있나?”


    그녀는 내 질문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그녀의 말을 이어갔다.





    “우린 많은 걸 분실하죠. 우산이며 신발 한 켤레, 옛날에 가지고 놀던 인형들, 고물시계… 물론 그 대부분은 쓰레기 매립장에 묻히거나 다른 사람의 수중으로 흘러가기도 하죠. 하지만 다 그런 건 아니에요. 그중 운이 좋은 것들은 ‘잃어버린 것들의 세상’에 가 있어요. 지금 여기와는 다른 세상에.”


    “잃어버린 것들의 세상?”


    “그래요. 내가 맡긴 그 만 원짜리 지폐는 ‘잃어버린 것들의 세상’에 갈 운명이었죠.”


    “아니 그럼 그게 어디쯤 있는 거지?”


    “글쎄요, 아마도… 호텔 캘리포니아일 거예요.”


    '어둡고 황량한 고속도로의 아득한 곳에 희미한 불빛이 있는 곳. 문가의 여인이 촛불을 밝혀 방을 안내하고, 멀리서 누군가 부르는 소리에 깨어나보면 아래층 복도에서 주방장이 이상한 소리를 지껄인다. 영혼의 각성제는 1966년부터 취급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존재를 잊는다는 것은 얼마나 멋집니까. 아름다운 캘리포니아 호텔에서.'*


    “이글스(Eagles)?”


    “그들은 분명 알고 있었을 거예요. 자신의 존재를 잊을 수 있는 곳.”


    “잠깐만. 혹시 처음부터 난 만 원짜리 지폐 같은 건 맡아두지 않았던 거 아닌가?”


    나는 마지막으로 모든 걸 원점으로 돌이켜보고 싶었다. 모든 게 거짓말이란 대답을 원했다. 하지만 이내 나는 그것이 몹시 어리석은 질문임을 깨달았다.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해서 실제로 엄연히 일어났던 일을 부정할 수는 없는 일이다.


    예상한 대로 지원은 답할 가치가 없는 질문이라는 듯 내 우문(愚問)은 묵살해 버렸다.


    “어쩌면 당신과 나도 그곳에서 온 것인지도 몰라요.”


    “그곳?”


    “잃어버린 것들의 세상에서.”


    지원은 그렇게 말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그녀의 부재를 알리는 신호음이 수화기 안에 커져만 갔고, 나는 한동안 수화기를 놓을 수가 없었다.



    - 끝 -



* 이글스의 ‘호텔 캘리포니아’에서 부분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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