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Back to the Futuer
빛도 제대로 들어오지 않는 허름한 방이었다. 직원들은 새벽까지 야근을 하고 다들 떠났고, 나와 Y만 남았다. 신제품 출시일까지 이제 이틀이 남은 셈이었다. 더군다나 내일은 휴일. 아무래도 이 프로젝트는 망한 거 같다는 생각만 들었다. 나는 멍하니 Y의 투박하게 검은 스마트 폰을 바라보다 이렇게 말했다.
“어디선가 본 것 같은 물건이야. 뭐랄까 어쩐지 이전에 본 것만 같아.”
혹시 비슷한 종류의 핸드폰을 주위의 누군가가 소유하고 있었던가. 뭔가 익숙한 느낌이었다.
“그럴 리가 없잖아요. 이 제품은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거라고요. 선배도 알잖아요? 이건 신작 테스트용으로 몇 사람만 들고 다니는 거.”
“그건 아는데, 이상하게 어디서 본 것만 같단 말이지.”
내가 고집스럽게 오류투성이의 생각을 하고 있을 때, Y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전생에 보았는지도 모르죠.”
“전생?”
옛날에 핸드폰 따위가 있었을 리 없잖아.
“전생이 미래일 수도 있잖아요?”
점심메뉴를 말하는 투로 그런 이야기하는 Y의 모습이 낯설었다.
아니, 이 망할 지하실에 오래 있더니 너마저 외계인이 된 건가.
“전생이 반드시 과거일 필요는 없다는 건가?”
“물론이에요. 지금 여기는 어쩌면 시간이라는 커다란 원의 아주 짤막한, 그것도 직선에 가까워 보이는 선분에 해당하는 건지도 몰라요.”
‘뫼비우스의 띠’ 같은 건가? 과거, 현재, 미래가 모두 얽혀 풀 수 없는 하나의 묶음으로 된 띠.
그런데 전생이라는 건 대관절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 걸까?
윤회의 고리는 워낙 커다란 것이어서 상상을 초월한다.
“그럼 난 미래에서 온 전사인가? 내가 무슨 시간 여행자라도 되는 건가?”
나의 농담에 Y가 시니컬하게 웃으며 답했다.
“이를테면 백 투 더 퓨처.”
“미래로 되돌아가라고? 아아, 멋지군.”
“아, 이젠 진짜. 어차피 마감 기한까지 해내긴 틀렸어요. 오늘은 포기할래요..”
시간이 아프도록 천천히 흘러가자, 결국에는 나도 그곳을 떠나고 싶었다.
Y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퇴근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선배는요?”
“난... 그러니까...”
나는 거짓말이 서툴렀다. 하지만 그래도 거짓말 외에는 나를 설명할 수가 없었다.
나는 오늘 사랑니를 뽑는다는 말도 안 되는 핑계로 밖으로 나와 버스에 올랐다. 뻔한 거짓말이었는데, 방금 사랑니를 뽑은 것처럼 입안이 얼얼했다. 한 시간 후면 통증이 밀려올지도 몰라. 그러면 태연한 척 얼음주머니를 뺨에 대고 성가대처럼 송년가를 부르지 않을까.
버스는 급한 일이라도 있는지 벨을 누르지 않은 나의 도착지를 지나친다. 그리고는 태연하게 연이은 안내 방송을 흘려보냈다. 그래 아무 데나 내리자. 어차피 오늘은 집에 가고 싶은 날도 아니었다.
“다음은 삼양동 입구입니다.”
삼양동? 영화 <삼양동 정육점>의 그 삼양동 말인가. 그곳이 여기였나?
꽤 오래전 나는 여러 사람들과 그 영화를 보기로 약속하기도 했다. 하지만 손가락을 걸었던 사람들 중 아무도 그 영화를 보진 않았다. 쓸쓸한 내가 쓸쓸히 간판을 내리는 극장을 기억해 볼까.
아무도 보지 않은 영화와 아무도 지키지 못한 약속. 시간의 흐름 속에 친구들은 하나 둘 떠나고, 시간은 우리의 청춘을 조금씩 갉아먹었다.
그렇게 아무도 기억해내지 못할, 그 해의 마지막 날.
(2부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