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원에게 (1)
중학생이 된 혜원과 나에게 있어, 어떤 의미를 지닌다는 뜻에서, 두 사람의 인생의 첫 번째 노래는 비틀즈의 ‘예스터데이’였다. 어릴 적 우리는 작은 방에서 함께 비틀즈의 노래를 들었다.
보물찾기 놀이를 벌이던 우리는 온종일 집 안을 뒤지던 끝에 신기한 물건을 발견했고, 그다음 날부터 매일 아침이면 혜원은 무슨 행사처럼 한 블록 떨어진 그 애의 집에서 단숨에 달려와 우리 집의 초인종을 눌렀다. 벨소리가 울리면 나는 잠가둔 서랍을 열어 나의 유일한 방문객을 위한 테이프를 꺼냈다. 맞벌이를 하시던 부모님이 출근하시면 우리는 거실에 앉은 채로 서로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손으로는 비틀즈의 테이프를 만지작거리며.
인생의 첫 곡으로 (물론 지금도 나는 존 레논의 노래를 즐겨 듣지만) 비틀즈를 택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당시에 우리 집에 유일한 단 하나의 테이프이었기 때문이었다.
사실 테이프의 임자는 따로 있었다. 어머니였다. 이른 아침 비가 내리면 어머니는 어김없이 비틀즈를 크게 틀어놓고서 커피를 끓이곤 하셨다. 그 일은 혜원과 내가 테이프를 찾아낸 것보다 한참 이전의 일인데도 나는 그때의 그 모습만큼은 이상하리만치 또렷하게 기억할 수 있었다. 비 내리는 날에 비틀즈. 어머니는 비를 그으며 그렇게 지나가버린 시간을 꺼내어 들어보셨다.
그런데 우리가 비틀즈 테이프를 발견했을 때는 사정이 달라서 더 이상 비틀즈는 어머니의 예전 같은 애착을 유지하지 못했다. 어머니의 무관심은 테이프가 내 수중으로 넘어온 이후로부터 꽤나 시간이 흐른 지금까지도 그대로여서, 여태껏 어머니는 비틀즈의 테이프에 관해 단 한 번의 물음도 없으셨다.
하기야 그도 그럴 것이 그 테이프는 정품이 아닌, 약간 조잡한 종류의 ‘비틀즈 히트곡 모음집’이었다. 비록 형편없는 품질의 테이프였다고 하더라도 비틀즈의 노래는 어린 우리에게는 진기한 경험이었다. 흔해 빠진 동요나 만화영화 주제곡이 아닌, 다른 세상의 노래를 우리는 비틀즈의 이름을 빌어 남몰래 훔쳐들을 수 있었다.
순번을 정해 번갈아가며 혜원과 나는 카세트 플레이어에 조심스럽게 테이프를 집어넣고 살며시 작동버튼을 눌렀다. 그 순간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두근거린다. 겨울 아침에 테이프가 ‘Yesterday’로 시작해서 ‘I wanna hold your hand’로 끝날 때까지 혜원과 나는 열심히 그 노래들을 따라 불렀다.
지금은 어디에 있는지 찾을 수 없지만, 금박 종이에 영문자로 빨갛게 ‘BEATLES’라고 박힌 그 오래전 테이프에는 잊을 수 없는 많은 노래들이 있었다. Mishelle, Let It be, Hey Jude, Ticket To Ride, Come Together, And I Love Her. 그중에 진영과 내가 특별히 좋아했던 노래는 앞면의 중간쯤에서 들을 수 있는 ‘OB-LA-DI, OB-LA-DA’와 ‘Yellow Submarine’이었다. 두 곡 다 빠르고 경쾌한 리듬이었다. 슬픈 멜로디를 이해하기에는 어린 나이였으니 당연한 결론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서툴게 따라 부르는, 더군다나 뜻도 모르는 노래였지만 그래도 한없이 좋았다. 창가에 언뜻언뜻 내비치는 겨울 햇살 아래서 우린 많이도 웃었고, 카세트에서 흘러나오는 노래에 마음을 뺏기곤 했다. 지금도 들린다. 눈을 감으면 살짝살짝 어깨를 들썩이며 ‘OB-LA-DI, OB-LA-DA’를 따라 부르던 혜원의 환한 얼굴이 선명하게 보인다.
그 해 겨울엔 밤사이 소복이 눈이 내리곤 했고, 아침에 한바탕 눈싸움이라도 하고 돌아오면 우리는 아랫목에서 몸을 녹이며 숨죽여가며 이불을 무릎 위에 덮은 채로 비틀즈의 노래를 기다렸다. 그러면 어김없이 ‘예스터데이’ 하고 폴 메카트니의 부드러운 음성이 따스한 입김처럼 흘러나왔다.
테이프가 카세트 플레이어 안에서 스윽스윽하며 내는 소리를 한참 동안이나 들어야 첫 곡을 시작했던, 해적판 비틀즈 테이프가 혜원과 나를 사로잡았던 그때는 추운 겨울이었고, 12월이었다.
그날들은 추억이었다.
(2편에 계속)
Desmond has a barrow in the marketplace
Molly is the singer in a band
Desmond says to Molly, "Girl, I like your face"
And Molly says this as she takes him by the hand
Ob-la-di, ob-la-da
Life goes on, brah
La, la, how the life goes 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