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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물원킨트 Jun 05. 2024

강철의 휴무일 (2)


2. 형석의 벌주


그렇게 한 바탕 오전 일과가 끝나고, 오후 진료가 시작되었다.

형석에게 환자들이 줄지어 그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가장 인상적인 것은 첫 환자부터 엄청난 미인이었다는 사실이었다.


“다리를 삐끗한 거 같은데, 좀 아프네요.”


누가 봐도 뛰어난 각선미를 자랑하는 구리빛의 건강한 미녀였다.


“일단 제가 좀 살펴보죠.”


갑자기 늘씬한 미녀 앞에 서니 형석은 자신도 모르게 긴장되는 느낌이 들었다.


‘아, 이러면 안 되는데.’


아무리 자신이 의사도 어쩔 수 없는 자신은 직업 의식보다는 이상하게 본능이 앞서는 남자라는 생각이 드는 형석은 약간의 죄책감마저 느꼈다.


“아아. 거긴 좀 아파요.”


형석의 손이 닿자 얼굴을 찡그렸다. 그런데 찡그리는 얼굴도 예쁜 여자가 바로 이런 여자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 눈매가 참으로 매력적인 여인이었다.


‘진료가 끝나고 이 여자에게 데이트 신청을 해야 하나? 아니지, 환자와 데이트를 하는 건 법으로 금지되어 있어. 그러면 의사를 바꿔야 하나?’


형석은 ‘금사빠’ 답게 머릿속으로 여러 가지 경우의 수를 생각해보고 있었다. 만약 내가 무인도에 딱 한 명만 데리고 갈 수 있다면 은경 선배와 이 건강미녀 중에 과연 누구를 선택할 것인가. 아무리 생각해도 둘 다 데리고 가는 게 정답인 거 같았다.


‘나도 참 못 말리는 남자로구나!’




“저기 근데요…”


“네?”


“제가 아는 언니가 여기 병원에 근무하거든요.”


“누군데요.”


“혹시 은경 언니 아세요?”


‘아차차. 이 모든 일을 망칠 뻔했구나!’


형석은 속으로 불경을 외우고 싶어졌다. 사실 종교와는 눈꼽만치도 상관이 없는 형석이었지만, 이런 순간만큼은 모든 종교의 신들에게 죄를 고백하고 용서받고 싶었다.


“근데 선생님 진짜 잘 생기셨네요?”


“아, 무슨 그런 농담을.”


형석은 미녀의 칭찬이 싫지 않았다.  


“선생님 전화 번호 좀 알고 싶은데요.”


형석은 씩 웃으며 대답했다.


“병원으로 전화를 하시면 됩니다. 저는 늘 여기 있으니까요.”




이 날의 하이라이트는 저산소증 환자였다. 산소포화도가 아주 좋지 않았다. 형석은 이 경우는 생명을 구하기가 어려울 거란 생각이 들었다.


“체온은요?”


강철이 응급실로 들어왔다.


“선생님 오늘 비번이잖아요?”


“이미 병원에 온 거 일이나 해야지, 뭐.”


28도. 한마디로 저체온이었다. 각종 검사 지시를 내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늦게 도착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발 체온이 빨리 올라와야 하는데.”


“일단 심장부터 살리자.”


일단 심장 충격기가 필요한 상태가 먼저였다. 전혀 반응이 없었다. 출력을 높여서 다시 한 번 충격을 가했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세 번째 시도였다.


“뚜, 뚜, 뚜…”


리듬이 돌아왔다. 심장박동이 드디어 살아서 돌아온 것이다!


“역시 강철 선배님이십니다!”


체온 상승을 위해 각종 약물이 투입되기 시작했다.


가까스로 환자를 구하고, 형석이 응급실에서 나오자 갑자기 누군가 그를 확 끌어안았다. 형석은 깜짝 놀랐다. 그녀를 끌어안은 사람은 방금 강철이 목숨을 구한 환자의 딸이었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정작 감사해야할 분은 따로 있어요.”


“제가 봤어요. 병실에서 아버지를 구하시는 모습을요.”


형석이 아무 것도 안 한 것도 아니니, 감사의 인사를 받는 것이 꼭 잘못된 것은 아니었다. 계속 끌어안고 있다가는 미녀의 키스 세례까지 받기 직전이었다.


“저는 그냥 제 일을 했을 뿐입니다. 그리고 진짜로 환자분을 구한 분은 다른 선생님이세요.”


“고마워요. 정말…”


여자는 형석의 말이 들어오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반쯤 포기한 사람의 목숨을 구했으니, 이 상황에서 어떤 논리적인 사고를 한다는 것이 가능한 일은 아닐 것이다. 그녀는 다시 한 번 형석을 힘껏 끌어안았다. 감사의 포옹이 생각보다 길었다.


“아이고. 괜찮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모습을 본 목격자가 하필이면 은경이었다는 사실이었다.


‘너 그거서 대체 뭐하는 거냐? 병원 복도에서 연애질이라도 하는 거냐?’


은경 선배의 속마음이 다 들리는 거 같아서, 형석은 가까스로 포옹을 풀었다.


“아무튼 감사 인사는 충분히 받았고요. 나중에 최강철 선생님이라고 계세요. 그 분이 살리신 겁니다. 오해하신 거예요.”


형석은 겨우겨우 상황을 제자리로 돌려놓았다.




“너 이제 보니 선수였구나. 연애 국가대표였어?”


“아니 그게 말이에요…”


자초지정을 설명하며 한사코 변명을 해보았지만, 은경은 못마땅하다는 얼굴이었다.


“아주 좋았겠어… 그 여자분 꽤 예쁘시던데.”


“아니 제가 뭘 어쨌다고 이러세요?”


“표정에 다 행복이라고 적혀있던데.”


“진짜 그런 거 아니에요.”


“거짓말 하지 마.”


“거짓말이면 제가 저녁을 사죠.”


그러자 갑자기 은경은 잠시 고민하는 표정이 되었다.


“아니다. 마음이 바뀌었어! 네 말이 다 진실이어도 저녁을 사는 걸로 해.”


“네?”


“어차피 나 오늘 저녁에는 드라마나 보면서 라면이나 끓여 먹을 게 뻔한데, 그것보다야 낫겠지?”


“어? 그게 무슨 말이에요?”


“나는 오늘 저녁으로 족발! 어때?”


“아니 선배, 하필이면 족발이에요?”


“그럼 너랑 뭐 우아하게 스파게티에 화이트 와인이라도 먹어야 하는 거니?”


“가끔은요. 우리가 뭐 연인은 아니더라도 좀 근사하게 멋진 레스토랑이라도 가야하는 거 아닙니까?”


“오, 꿈도 크셔라.”




형석은 소주를 탄 맥주 500cc를 벌컥벌칵 한 번에 쑥 들이켰다. 은경은 약간 걱정되는 눈빛으로 형석을 쳐다보았다.


“괜찮아?”


“그런 거 같네요.”


“너 왜 그래? 힘든 하루였어?”


“의사의 본분을 잠시 망각했던 자에게 내리는 벌주입니다.”


은경은 형석의 말에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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