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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물원킨트 Jun 04. 2024

강철의 휴무일 (1)


1. 강철의 휴무일


응급실에 새로운 의사가 채용되었다. 하필이면 형석보다 높은 직급이었다. 문제는 이 사람은 다른 병원에서도 꽤 유명한 빌런이었다는 사실이었다. 빌런과 악당이 뉘앙스에서 어떤 차이가 있는지 딱 부러지게 말하기는 어렵지만, 아무래도 이 경우의 빌런은 ‘누군가를 좀 짜증나게 하거나 괴롭히는 사람’ 이라는 느낌이 있다. 첫 인상부터가 그는 레슬링 선수 같았다. 커다란 덩치에 근육질을 가진 남자였다.


“형석 선생님이시죠? 오늘은 출근이 조금 늦으셨네요.”


“반갑습니다. 최고집이라고 합니다.”


“네? 성함이?”


형석은 자신이 잘못 들은 것이 아닌가 싶어서 되물었다.


“이름처럼 고집이 센 건 절대로 아닙니다. 최고집입니다.”


이름부터가 이미 빌런이기에 충분했다.


“되도록 복도에서는 커피를 드시지 않는 게 좋겠습니다. 뜨거운 커피에 화상을 입는 환자가 생기는 것을 저는 절대 원치 않거든요.”


‘이건 빌런이 틀림없어.’


형석은 확신에 확신을 거듭했다.




그 시각. 도시의 한복판에서 구급차는 거리를 미친 듯이 달렸다. 바다가 갈라지는 기적처럼, 도로 위의 차들이 양쪽으로 구급차를 위한 길을 만들어주었다.


“감사합니다!”


운전기사는 더욱 페달을 힘껏 밟았다.



거리에 쓰러진 사람이 있다는 소식에 구급차는 최대한 빠른 도착을 위해 거리를 내달렸다.


“청색증입니다.”


청색증이란 피부가 푸른색을 띄고 있다는 뜻으로 혈관에 산소포화도가 떨어져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상태가 많이 안 좋으면 온몸이 퍼렇게 변하기도 한다.


“출혈도 조금 있습니다.”


아마도 어디에 부딪혀서 피를 흘린 모양이었다. 총기가 허용된 나라라면 총탄에 맞아 심각할 정도로 피를 흘리는 경우가 있기도 하다. 하지만 총이 아니라도 하더라도 어딘가에 찔리거나 부딪히는 것만으로도 상태가 안 좋아지는 경우도 분명히 존재한다.


동공의 상태를 확인해본다. 의식을 지니고 있는지 알아보는 단계다.


“동공이 고정된 상태입니다.”


이 경우에 선택은 단 하나. 심폐소생술이다. 호흡이 멈추고 맥박이 없다면 더더욱 빠르게 진행되어야하는 게 심폐소생술이다.


그때 누군가가 뛰어왔다. 외과의 강철이었다. 비번인 날에 우연히 아이스크림을 먹으러 밖으로 나왔다가 사고현장을 만난 것이다.


“의사입니다. 먼저 삽관부터 합시다.”


구급요원이 심폐소생술을 하는 동안, 강철은 삽관을 시도했다.


“여기 목을 좀 눌러주세요. 네, 됐습니다!”


삽관으로 산소를 계속 공급하고, 심폐소생술이 동시에 진행되었다.



강철은 재빨리 구급차에서 들 것을 가져왔다. 환자를 들 것에 옮기고 이동하는 중에도 산소를 공급하는 일은 계속해서 진행되었다. 우리에게 산소는 늘 공짜로 존재하는 것이지만, 실제로는 산소를 우리가 능동적으로 들이마신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한다.


“지나갈게요.”


주위에 둘러싼 사람들을 비집고 나가며 강철은 외쳤다. 다행이도 사람들은 협조적이었다.


“에피네프린 있습니까?”


구급요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에피네프린은 긴급 상황에서 심장 박동과 혈압을 안정시키는데 도움을 주는 약물이다. 한마디로 응급상황에서는 생명을 구하는데 큰 역할을 하는 존재다. 아나팔락시스라고 심각한 알러지 반응에도 이 약물이 쓰이기도 한다. 혈압이 지나치게 하락하는 경우에 심각한 상황을 유발할 때 에피네프린은 즉각적으로 대응을 한다. 다만 고용량을 사용하면 산소요구량을 지나치게 높여서 협심증을 유발하는 경우가 있기는 하다. 그러나 이런 경우는 용량을 너무 많이 쓰는 경우에만 해당한다.




강철은 바로 구급차에 올라탔다.


“어느 병원입니까?”   


구급요원이 물었다.


“스톤 병원으로 가시죠! 가깝습니다.”


“저도 그리로 가려던 참이었습니다.”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강철은 산소를 주입하면서 형석에게 리포트를 했다.


“심장마비라서 에피네프린, 아트로핀 투여했습니다.”


“아니 선배, 이제는 아르바이트를 하는 겁니까?”


“요즘은 말이야, N잡이 필수라고!”


그 와중에도 구급요원은 환자에게 심폐소생술을 반복하고 있었다. 겨울임에도 그의 이마에서 흐르는 땀이 이 상황이 얼마나 급박하고 극적인가를 설명하고 있었다.


수술실에는 은경이 대기 중이었다.


“뭐에요? 선배?”


강철 선배를 알아본 은경의 표정도 형석과 다를 것이 없었다.


“언제부터 알바를 한 겁니까?”


“아, 이 사람들 유머 감각이 정말 최악이야.”


강철은 어이가 없었다.



“심실세동입니다!”


역시나 좋지 않은 상태였다. 간호사들은 혈액을 준비하고, 은경은 심장충격기를 충전시켰다.


“다들 비켜요.”


두 차례의 충격에 리듬이 돌아왔다.


“역시 은경은 일할 때가 멋지다니까.”


강철은 방관자처럼 말했다. 그러나 사실 그가 없었더라면 이 환자는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이었을 수도 있다는 걸 모두가 알고 있었다.




그때였다. 최고집이 들어왔다.


“어? 벌써 상황이 끝났군요. 구급 요원분들 감사합니다.”


고집이 강철에게 악수를 청하자 뭔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근데 누구시죠?”


강철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여기 의사인데요. 왜 물으시죠?”


“저도 여기 의사거든요.”


옆애서 지켜보던 형석은 살짝 웃음이 나왔다. 아침에 당한 일들을 강철 선배가 가벼운 잽으로 복수를 해준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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