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동물원킨트 Jun 04. 2024

희극과 비극의 동시상영 (3)


오전 진료가 끝나고 점심시간이 다가왔다.

응급실에서는 점심을 같이 먹기가 힘들었지만, 오늘은 신경외과를 비롯한 다른 병동에서 파견을 나온 의사들이 많아서 제때 점심을 먹을 수 있었다.


“뭐야? 우리 너무 자주 같이 식사를 하는 거 아니니?”


형석과 마주 앉은 은경은 투덜거렸다.


“은경 선생님, 의사가 건강해야 환자를 도울 수 있는 겁니다. 이렇게 제때 식사를 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행운인지 감사하셔야죠.”


“듣고 보니 그러네. 넌 역시 참 긍정적이야.”


은경의 칭찬을 듣고 나니, 형석은 당장이라도 애정을 고백하고 싶은 욕망이 생겼지만 꾹 참았다. 사실 이렇게 둘이 오붓하게 같이 있을 수 있는 시간은 예전에도 많았는데, 며칠 전부터 은경 선배가 신경이 쓰이면서부터 같이 있는 시간의 느낌이 확실하게 달라져 있었다.


‘나중에 밖에서 데이트라도 해보자고 할까?’


형석의 상상은 끝이 없었다. 그렇게 오전 일과는 막을 내렸다.






외과의사인 강철 선배가 야간 병동에 합류했다. 한낮의 위세척 사건과 달리 저녁은 심각한 환자가 있는 경우가 많았다. 아무래도 일반 병동이 퇴근한 시간이라 위급한 환자들은 죄다 응급실에 몰리는 게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통증이라는 게 밤낮을 절대로 가리지 않는다. 더군다나 예민한 사람들은 밤에 더 아픈 경우가 의외로 많았다.


“오늘은 환자가 천지랍니다.”


간호사는 피곤함을 이기려고 강철에게 농담을 했지만, 두 사람 모두 웃음은 나오지 않았다.


“우선 흉부 외상 환자부터 보시는 게 좋을 거 같네요.”


강철이 수술실 안으로 들어가자 상황은 좋지 않았다.


“심장에서 소음이 있고, 삽관을 해야 할 거 같습니다.”


형석은 강철 선배에게 일단 간략하게 보고를 했다.


“일단은 폐를 부풀려야해.”


흉강 삽관술이 시작되었다. 공기가 어느 정도 차있는지를 확인하는 일이 우선이다. 강철 선배는 수술실에서만큼은 언제나 신중했다. 그래서 형석은 강철 선배가 응급실에 내려오는 날이면 배울 것이 많아서 좋았다. 자신에게 부족한 것이 무엇인가를 몸소 실천으로 가장 잘 설명해주는 사람이 멋진 남자였다.


“산소 포화도가 좋지 않아요.”


환자는 심각해보였다. 환자는 말을 할 수도 없는 상태인지라 아무래도 모두가 긴장을 할 수밖에 없었다.


“혈액이 더 필요할 거 같군요.”


하지만 환자는 그리 오래 버티지 못했다. 강철과 형석은 최선을 다했지만, 환자를 구해내지는 못 했다. 사망선고는 강철이 수술실에 들어온 뒤 30분 뒤에 이뤄졌다. 강철은 자신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


죽음은 이 세상 어느 곳에나 있는 것이고, 오래 전부터 지금까지 어느 때이던지 일어나는 일이었지만 그것은 언제나 햔실에서 커다란 아픔으로 사람들에게 충격을 안겼다.


"우리가 놓친 게 있었을까?"


강철 선배는 형석을 바라보며 말했다.


“고생하셨어요.”


형석은 딱히 할 말이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해야 할 조치는 모두 강철 선배가 지시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 모든 최선이 최상의 결과가 아닌 한 인간의 죽음으로 돌아오는 공간이 바로 응급실이었다. 침울해진 표정의 강철의 뒷모습을 보니 형석은 마음이 무거워졌다.


응급실에서는 오늘도 그렇게 한 번의 희극과 한 번의 비극이 교차했다.

삶은 그렇게 누군가에겐 사소하고, 누군가에겐 지나치게 무겁고, 또 누군가에게는 너무나도 잔인했다.

응급실은 오래된 극장처럼 희극과 비극을 동시 상영했다.




이전 10화 희극과 비극의 동시상영 (2)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