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부터 빠져들 수 있다면

빈센트 반 고흐, 박은영 옮김, 『반 고흐. 영혼의 편지2』

by 세포뭉치

“새가 새지 뭐.”

엄마는 말했다. 파란 배에 검은 머리를 한 새가 너무 예뻐서, 저것 좀 보라며 흥분한 나를 보고 하는 말이었다.

나는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난 아무래도 다리 밑에서 주워온 자식이 맞나봐.”

정말이지 놀랍지 않았다. 어느 시점 이후로 웬만한 일에는 고개를 끄덕거릴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 옛날 엄마가 아빠와 연애하던 시절에, “날씨가 춥네요.”를 “겨울이니까 춥죠.”하고 받아쳤다는 이야기를 듣고 난 이후로는. 물론 내가 특별히 불행한 가정에서 자란 건 아니었을 것이다. 내가 기억하는바 어른들은 늘 그런 식이었으니까.


무슨 다리든 어쨌든 다리 밑에서 태어난 나는, 어릴 적 내성적이고 예민한 사람이었다. 당연하지만 내가 스스로 정의한 자아의 모습은 아니었다. 말하자면 그건 평가였고, 좀 더 구체적으로는 말하기 좋아하는 어른들이 비릿한 웃음을 띠고 말하는 ‘얘는 남자애가 숫기가 없어서 어떡해~’였다.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던, 머리끝까지 화나게 하던 그 말. 반박할 힘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다만 예나 지금이나 나는 말할 수 없는 것의 주변을 맴돌고 있었고 그 시절 어른들은 그런 아이들을 기다려 주는 법이 없었을 뿐이다. 내가 무슨 말을 보태면 그 말을 웃음거리로 바꿔 입속에 던져 넣고, 말들이 목구멍까지 찰랑거리면 어린 놈이 따박따박 말대꾸한다며 토해내던 어른들. 그 속에서 나는 점점 말을 잃어갔고 언젠가부터는 저편에서 빈정대는 무리들 사이에서 종종 내 얼굴을 발견하게 되었다.


솔직히 말하면 꽤나 따뜻했다. 그저 예전에 알았던 무언가를 원래부터 없었던 셈 치면 되는 사소한 문제였다. 그러나 고흐는 달랐다. 고흐는 저편에 기대어 살기를 단호하게 거절한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이 시대가 너무나 무미건조하다고 생각지 않나? 아니면 나한테 문제가 있는 걸까? 열정과 온정 그리고 진심 어림의 부재! 화상과 그 일당들은 “그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바라는 변화는 먼 미래의 어느 날에야 올 것”이라고 주장하네. 하지만 나로선 왜 ‘그것이 어쩔 수 없는 일’인지 결코 이해할 수 없네.”(145)


고흐가 보기에 그가 살던 시기의 화가들은 그 전의 위대한 화가들에게서 중요한 것을 배우지 못한 채 도덕과 관습에 따라 작업을 하고 있었다. 고흐가 보기에 그 무리에 결여된 것은 ‘감정’이었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가슴에서 복받치는 정열에 솔직히 빠져 드는 대신, 가치 없는 것에 힘을 쏟고 진정으로 사랑하는 것은 무시해 버리네.”(61) 따라서 그는 대중을 떠나 고독을 택한다. “인간들 속에 있을 때 나는 늘 내가 덜 인간적이라고 느낀다.”(113)


멀리 갈 것도 없이 우리는, “그게 돈이 됩니까?”의 사회문화를 가지고 있다. 우리는 그 물음에 따라 모호하고 불확실한 것들을 가차 없이 도려내고 최적화한다. 여러 사람들 앞에서 감각이나 감정 같은 이야기를 한 경험이 있다면, 그들의 입술 사이를 비집고 나오는 야릇한 비웃음을 포착한 적이 있을지도 모른다. 비상구 따위는 염두에도 두지 않은 채 머리부터 풍덩 빠져(59)들 용기가 없었던, 비겁자들의 겁에 질린 패배선언을 말이다. 이런 점에서 고흐는 확고한 의견을 가지고 있었다. “사회 관습만을 지키려 애쓰는 자들의 선입견을 조금, 조금, 정말로 아주 조금 이해하는 만큼 나는 그들을 약자로 간주하고 있네. 그리고 그들 나름의 가치만큼만 계속 존중해 주기로 했네.”(173-174) ─정말 통쾌한 가치의 전도가 아닌가?

고흐가 이러한 ‘생각’만을 가지고 있었다면 그는 화가가 아니라 사상가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잘 알려졌듯이, 그는 열악한 환경에서 처절하게 작업을 이어나갔으며 그림을 그리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쳤다. 명예, 재산, 친목, 심지어는 자신의 생명까지도.


“작년에 병이 났을 때, 나는 의사의 진단을 비웃었었네. 그의 충고가 틀려서도, 그보다 내가 자신을 더 잘 안다고 고집해서도 아니네. 그건 바로 ‘나는 그림을 그리기 위해 살고 있지 육체의 건강을 지키려고 사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 때문이었지. ‘삶을 잃어버린 자는 다시 삶을 찾을 것이다.’라는 애매한 말의 진리는 때때로 너무 명확하다네.”(167)


그 결과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느리지만 묵직하게 모습을 드러낸다. 실로 그가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그 자신의 작품인 「씨 뿌리는 사람」에 대해 스스로 이렇게 평한다.


“「씨 뿌리는 사람」에 대한 자네의 논평은 매우 타당하네. ‘씨를 뿌리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 ‘씨 뿌리는 자세를 취하고 있는 사람‘이라는 평 말일세. ……(중략)…… 내가 ‘실제로 씨를 뿌리고 있는’ 사람을 보여줄 수 있으려면 1,2년이 더 지나야겠지.”(36-37)


1882년의 두 작품을 보면 정말 그렇다. 못 그렸다고는 감히 말하지 못해도 감상자를 매혹에 빠져들게 하지 못하는 것은 사실이다. 반면 1888년의 「씨 뿌리는 사람」은 다르다. 여기의 ‘씨 뿌리는 사람’은 금방이라도 한 발을 더 내딛을 것만 같다. 뒤편에 보이는 태양의 밝음과 그 볕의 온기마저 느껴진다. 한 마디로 말해 생동감이 넘친다. 상상하기 어렵다. 그렇게 되기까지는 얼마나 많은 고난과 시련이 있었을까? “체념은 체념에 길들여지기 마련이기에 그 짐승은 결국 내가 싸움을 포기하리라 여겼겠지. 하지만 나는 여전히 싸울 의지를 품고있네.”(68) 물론 고흐라면 몇 년이 걸리더라도 해냈을 테지만 말이다.


고흐는 말한다. “때로 설교자가 우리를 사로잡아 주위를 둘러싼 모든 것을 잊게 하는 경우도 있을 걸세. 교회가 ‘종종’ 그러하다면, 나는 ‘늘’ 그렇기를 원한다네.”(50) 적어도 고흐는 내게 있어서는 그 목적을 이루는 데 성공한 것 같다. 책장을 넘기며, 고흐가 인도해 도착한 ‘먼 바다’, 그 고요하고 적막한 대양에서 ‘평온한 광기’에 몸을 싣는다. 출렁거리는 파도 사이로 여전히 덜 자란 내가 빠끔히 고개를 내민다. 그가 태양같이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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