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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센짱 Oct 30. 2022

교집합의 기쁨과 슬픔

지금의 집에 사는 동안 가출(?)을 한 적이 있다. 다른 지역도 아니고 같은 서울 안에서 다른 코리빙 스페이스에서 방을 얻어 잠깐 생활했다. 이를 친구들이 농담조로 '우리 언니가 가출했다', 하는 식으로 말한 게 웃기기도 귀여워서 나 역시 이 시절을 '가출'이라고 표현하곤 한다. 


장기로 해외 출장 가는 동안 방이 필요한 친구에게 내 방을 내어줬었다. 출장이 생각보다 짧게 끝나고 돌아왔는데 막상 내가 지낼 방이 없네? 어쩔 수 없이 1개월 내외로 거주 가능한 방을 찾다 결국 다른 코리빙 스페이스 입주를 하게 된 게 전말이었다. 내가 자초했지만 막상 실행에 옮기고자 한니 무진장 귀찮으면서 또 동시에 설레는 마음이 벅찼다. 


- 이야호, 엄마(?)는 가출한다, 곰국 많이 끓여놨으니 잘 챙겨 먹고 당분간 찾을 생각 한스푼도 먹지마. 내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내가 이 집안을 건사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일을 하고 있는지는 나의 부재를 통해 톡톡히 알아주길 바래? 아디오스(Adios)! 


그렇게 대중교통으로 30분 거리에 있는 코리빙 S로 입주하러 가는 날 나름의 이삿짐 - 캐리어가방과 이불세트를 들고 들어간 날, 기분이 참 이상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14층에 내려 내 방문을 열기 위해 보안카드를 찍고 들어가는 게 조금 낯설었다. 하지만 그 낯선 기분을 잊는 건 금방이었다. 쾌적함에 취해 후암동 집이 그리 그립지 않았다. 


다른 무엇보다 오랜만에 쓰는 개인 전용 화장실의 쾌적함에 홀로 감동했다. 나 혼자만 쓰는 변기! 어느 누구의 엉덩이도 닿지 않는 변기! 나 혼자만 쓰는 샤워실! 날 괴롭게 하는 다른 머리카락은 없는, 있다면 그건 의심의 여지 없이 내 머리카락일 수 밖에 없는, 완벽하게 컨트롤 되는 나만의 작은 세상! 이예스(YEEES)! 같이 쓰는 게 너무 익숙하고 디폴트값이라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사실 공간을 공유하는 것에서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혼자 쓴다는 게 편하긴 편하구나. 무엇보다 마음이! 보안카드를 터치해야만 열 수 있는 개인실엔 앞서 내가 의외로 감동했던 전용 욕실 외에 개인 벽걸이 TV도 있었다. 드디어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내가 원하는 볼륨(그렇다고 이웃에 폐가 갈 정도는 아니고-) 으로 영화를 볼 수 있다! 이예스(YES) 22! 


구 호텔 건물을 리모델링 해 코리빙으로 변신시킨 17층 규모의 빌딩엔 감각적인 라운지, 루프탑, 공유 주방 등을 갖추고 있었다. 원룸에 가까운 개인실, 유연한 계약 기간 및 단기 이용에도 수월한 어메니티, 공용 공간과 커뮤니티가 더해진 이런 형태가 사실 요즘 국내에서 '코리빙(Coliving)'이라고 했을 때 사람들이 떠올리는 인식이다. 프리미엄 급 코리빙 스페이스나 좀 더 장기 거주자를 위한 사회 주택의 경우 개인실 내부에 욕실은 물론 미니 주방까지 갖추고 있기도 하다. 나는 내심 그런 공간들을 부러워했었다. 


우리 집은 주방, 다이닝룸, 거실 겸 코워킹 스페이스, 화장실/욕실을 공유한다. 화장실 있는 개인실이 딱 하나 있다. 3-40년 된 구옥 빌라에 반월세로 들어와 있기 때문에 달리 어쩔 수 없었다. 따로 또 사는 커뮤니티 하우스를 새로 지을 돈이 있다면 나 역시 각 개인방에 욕실과 미니 주방을 갖춘 집이면 좋겠다 생각했다. 같이 사는 집에서 일어나는 갈등 또는 불편함 대부분은 예상 가능하게도 함께 쓰는 주방과 욕실에서 일어난다. 요즘 코리빙 디자인은 갈등관리 면에서 효율적인 전략이다. 개개인 멤버들에게도 편리한 것은 두말할 것도 없을 것이고. 


“집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소는 어디예요?” 집에 놀러 온 학교 후배가 물었다. “음…(새삼스럽게 집안을 한번 둘러보고는) 주방의 아일랜드 바?” 대답하면서 놀랐다. 주방은 내가 가장 피로함을 느끼는 장소이기도 했다. 설거지하고 나면 바로 물기 제거해서 제자리로 돌려놓아야 하는데, 왜 그대로 엎어진 그릇들이 있는 것이고, 며칠째 있는 것이고, 더 늘어나는 것인가. 음식을 놓았던 곳이라면 꼭 한번 닦아달라고 했는데 또 생겨있는 자국과 부스러기. 식기세척기를 쓰고 치우는 사람은 따로 있지. 아니, 그릇을 이렇게 수납해달라고 사진까지 붙여놨는데 왜 이게 저기 가있을 수가 있냐고! 이 컵은 식기세척기 금지라고 공지했는데 왜 맨날 식기세척기 안에서 발견되냐고! 이렇게까지 깔끔한 인간이 아니었는데 팬데믹은 밖순이를 집순이로 만들더니 그 외 성향도 바꿔버렸나 보다. 집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되니 잠만 자던 시기에 비해 내 눈에 거슬리는 너무나도 많아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방 주변부가 내 최애 공간에 꼽혔으니 스스로 놀랄만하다.


그 장소에 대한 증오보다 애정이 클 수 있었던 건 그곳에서 소소하지만 따뜻한 기억들이 가장 많기 때문이었다. 우리 커뮤니티에서 지내면서 가장 좋았던 순간은 언제냐고 물어보면 적지 않은 사람들이 매일 아침 또는 늦은 밤에 주고받는 안부를 꼽는다. “오늘 하루 어땠어?” “늦었네?” “기분이 좋아 보이네!” “피곤해 보이네. 괜찮아?” 그날그날의 컨디션 그대로 생략 없이 보일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 나의 안녕과 안위를 걱정하고 지켜보는 사람들이 가까이 있다는 것. 소소한 나의 승리와 패배가 뒤섞인 하루에 대해 때론 박수를 때론 위로를 얻을 수 있다는 것. 그것이 이곳을 집(Home)으로 느끼게 만든다.


아일랜드 바를 중심으로 왔다 갔다 하며 던진 안부는 대화에 불씨를 붙이고 불이 제대로 붙게 되면 사람들을 그곳 주위로 둘러 앉는다. 들고 가려던 찻잔을 어느샌가 바 테이블 위에 얹어두고 대화를 잠깐 잇다가, 어느새 엉덩이를 붙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나는 종종 바텐더의 위치가 되어 선 자세를 유지하고 있다. 바텐딩에 대해 1도 모르고 술을 만들지도 않지만…. 안부로 시작한 것이 다른 주제로 번지기도 하고 서로의 마음속 깊숙한 곳으로 다이빙하기도 한다. 모든 것이 자연스럽다. 우리 집 곳곳의 교집합에서 자주 일어나는 일인데, 아일랜드 바는 유독 그렇다. 교두보의 역할을 하면서도, 다이닝 테이블처럼 처음부터 각 잡고 앉아야 할 부담은 없기 때문이다. 


반면 꼭 들리게 되는 공유공간 없이 지낼 수 있는 코리빙 S에서 나는 쾌적한 경험을 했지만 어떠한 관계도 짓지 못하고 나왔다. 화장실 내 방 안에 있고, 정수기 각층에 있고, 공유주방은 엘리베이터 타고 지하까지 가야하는데 심리적 거리감에 점점 가질 않고, 역시 엘리베이터를 타고 이번엔 반대로 제일 꼭대기층에 가야하는 라운지는 일하기에 괜찮았으나 그걸로 끝이었다. 아쉽게도 누구와도 인연을 교차하지 못했다. 심지어 드디어 같은 타이밍에 귀가하는 옆방 사람에게 인사를 걸었다가 무시를 당하기도 했다. 게시판을 통해 동네에서 같이 점심 한번 먹기로 한 사람이 생겼는데, 카톡으로 일정 조율만 하다가 결국 얼굴 한번 제대로 못 보고 헤어졌다. 


이렇게 교집합 공간이 없으니 갈등 소재도 없이 쾌적하지만, 자연스러운 만남의 기회가 생기지 못했고, 그 만남의 레이어가 쌓여 관계로 발전할 가능성 또한 적었다. 부닥칠 일 없어 쾌적한 삶을 만끽한 건 딱 한달. 둘째달부터 오히려 나는 역효과를 보기 시작했다. 중간에 업무로 인한 스트레스가 최고조로 달했을 때 자신감이 떨어지고 불안과 우울에 잠식당하기 시작했다. 생활 리듬이 깨지면서 급속히 피폐해지면서 두문불출하기 시작했다. 방 밖 현실이 두려워 오들오들 떨면서 내 방에만 한 일주일 정도 머물렀는데, 그 손쉬운 단절과 고립은 내가 직면하고 있는 문제가 마치 세상 가장 중대하고 어려운 일인 것 마냥 착각을 일으켜 우울의 가파른 계단을 타고 지하 79층까지 내려가고 있었다. 그때 그립기 시작했다. 내 진짜 집이. 누군가 깜빡하고 닦지 않은 찻자국이 있는 바 테이블이. 불편의 다른 이름은 즐거움이고 가능성이었다는 것을깨달았다. 


좋은 커뮤니티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지만, 지금처럼 공간을 공유하고 있지 않았더라면 우리 커뮤니티가 이만큼 친밀하고 유대 관계가 강한 곳이 되진 못했을 거다. 코리빙 S의 운영팀도 커뮤니티를 만들기 위해 정말 많이 관심을 기울이고 애썼지만, 공간의 특성이 그 노력을 돕지 못했다. 


물론 공간의 '교집합'이 많다고 교류가 자동적으로 일어나는 것은 절대 아니다. 거실과 주방은 1층에, 각 방들은 2층으로 분리되어 어느 정도의 거리가 있는 데다 생활 주기가 아예 다르면 한동안 서로 영 보지 못한다. 한집에 사는데도 오랜만이라며 인사를 건네기도 했다. 저녁에 출근하고 낮엔 주로 자신의 방에서 글을 썼던 M과 나는 식사 시간도 엇갈렸다. 그래서 우리는 아주 긴 호흡으로 친밀감을 쌓아야 했다. 우린 생각 방식도 상당히 달라 한동안 나는 그를 대할 때 긴장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서 내가 움직이기로 했다. 우리가 조금 더 겹칠 수 있도록. 그가 카페에 갈 때 나도 부러 같이 가겠다고 해 걸어가는 동안 이야기를 나누고, 내 식사 시간을 조금 늦춰 그와 함께 식사하는 기회를 가지려 했다. 


반대의 경험도 있다. 누군가 꼴도 보기 싫어진 적이 있다. 나는 그의 생활 리듬을 대충 꿰고 있었기에 그를 피하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나는 그보다 조금 더 일찍 주방을 이용하고 욕실을 이용했다. 식사도 일도 방에서 했다. 그가 집 밖을 나서면 그제야 공용공간으로 나왔다. 키보드 전쟁 때는 나뿐만 아니라 모두가 그런 식으로 교집합을 찢어놓지 않았던가. 


교집합은 커뮤니티의 필요충분조건은 아니지만 커뮤니티의 가능성을 의미한다. 교집합의 면적이 크다는 건 그만큼의 연결의 가능성이 생겨난다. 동시에 달의 뒷면과 같이 갈등의 가능성이 따라온다. 여기서도 중요한 것은 둘 다 가능성이라는 것이다. 


전 세계 안 가본 곳 없는 해리는 정착해야 한다면 어디에 정착하겠냐는 질문에 홍콩을 꼽았다. 홍콩이 매력은 있지만 세계 최고의 장소로 꼽히는 것에는 납득이 선뜻 가지 않았다. 심지어 좋은 곳은 다 가봤을 그가. 집도 작고 삶의 질이 그리 좋아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그는 말 타기를 즐기며 산을 좋아한다. 나의 질문에 대한 그의 대답은 깊은 인상을 남겼다. 스위스, 북유럽, 뉴질랜드 등 많은 이들이 살고 싶어 하고 그 역시 가장 좋은 곳으로 꼽지만 그곳에서 살고 싶진 않다고 한다. 그는 '좋아하는 곳'이 반드시 '자기가 살고 싶은 곳'은 아니라고 했다. 그는 자신이 살고 싶은 삶을 반영하는 곳에서 살고 싶다고 했다. 성장을 추구하며 세상에 임팩트를 만들려고 하는 그에게 걱정거리 없는 편안한 환경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다이내믹하고 각종 문제가 있는 곳이 낫기에 일부러 불편을 선택하는 것이라는 그의 대답은 오랫동안 내 마음 속에 남았다.  


생각해보니 나도 결국 그런 것 같다. 갈등이 없는 평화로운 상태를 좋아하지만, 그것이 내가 살아야 할 삶에 이르게 하지 않는다.  


"To see the world, things dangers come to, to see behind the walls, to draw closer, to find each other, and to feel. That is the purpose of life. (세상을 보고 무수한 장애물을 넘어 벽 뒤에 숨겨진 소중한 것을 보며, 더 가까이 다가가 서로를 알아가고 느끼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의 목표다.)"


영화 <월터 미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속 라이프지의 사명이 내가 살고 싶은 삶을 잘 담고 있다. 이 삶은 교집하지 않고 살 수 없다. 그러므로 나는 교집합에서 도망가지 않는다. 교집합을 택한다. 교집합이 주는 기쁨을 누리기 위해 그 뒷면에 오는 괴로움을 선택한다. 해야 할 것은 괴로움의 가능성을 최대한 줄이고, 연결의 가능성을 최대화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 합집합도 부분집합도 아니기 때문에 누릴 수 있는 다채로움에 감사하며 즐기는 것. 그것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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