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센짱 Jan 05. 2022

같이 잘 지지고 볶자!

따로 또 같이 사는 글로컬 코리빙 하우스 서울눅스 프리퀄 2

따로 또 같이 사는 다국적 코리빙 하우스 서울눅스 프리퀄 1

"같이 잘 지지고 볶자!"

이사하는 날 H 언니가 한 말이었다. 막상 살아보니 지지고 볶을 일은 거의 없었다. 적어도 H 언니, S 오빠 그리고 나 사이는 말이다. 두 사람은 너그럽고 열린 태도를 가진 사람들이었다. 나 역시 함께 사는 경험이 이력이라면 높은 연차 수준이라 공동 주거에서의 필수 기본 매너 정도는 갖추고 있었다. (언니, 오빠는 생각이 다를 수도 있겠..) 


거기다가 내가 집에 잘 붙어 있지 않았다. 십여 년 이상 공동주거를 하며 진화시켜온 내 평화 전략이었다. 아무리 친하고 좋은 관계여도 가까이서 오랜 시간을 같이 보내면 반드시 갈등은 발생한다. 크지 않은 집에 많으면 다섯이 같이 지내는데 나라도 빠져서 이용 밀도를 낮춰주는 게 좋겠다 싶었다. 


그렇게 내가 밖으로 나돌아다니는 사이, 갈등이 시작되고 있었는데... 


밖에서 시간을 보내느라 나름 미니멀하게 유지했던 내 방


우리는 노마드들을 호스트했다. 조금 긴 호흡으로 생활하며 여행하는 노마드들을 위주로. 주로 1-3개월 정도 지내다 갔다. 리모트로 일 하며 다니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라 짧은 기간 최대한 많은 곳을 다녀야 하는 관광객들과는 달리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상대적으로 길었다. 그래도 대체로 이따금씩 카페에 나가서 일하거나 식당에서 외식을 하는데, 이런 활동에 대한 일말의 관심이 없는 사람들도 있었다. 키릴 & 스네하 커플(이하 K&S)이 대표적이었다. 


두 사람은 노마드 개발자 커플이었다. 여러 면에서 인상적인 사람들이었고 첫인상부터 강렬했다. 세계여행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둘의 여행 가방은 작고 단출했다. 그 작은 가방에는 놀랍게도 부피를 꽤 많이 차지하는 VR 기기 오큘러스도 있었다. 스네하는 음악을 좋아했지만 여행하면서 건반을 메고 다닐 순 없어 대안으로 코딩으로 음악을 연주하는 취미가 있었다. 이런 흥미로운 면모들을 활용해서 친구들을 초대해 코딩 디제이 파티를 열기도 했다. 한쪽에서는 VR 체험을 하고, 한쪽에서는 라이브코딩 DJying이 일어났다. 


Live Coding DJ Party @Community Sum


한편 그들은 굉장히 알뜰했다. 약수에 있던 전 숙소에서 망원동 우리 집까지 올 때 택시는 말할 것도 없고, 버스와 지하철 모두를 무시하고 걸어왔다. 두세 시간이 걸리는 거리다. 나는 놀라서 출발지와 소요시간을 한 번 더 물어보기도 했다. 두 사람은 가장 돈을 잘 벌 수 있는 개발자임에도 불구하고 돈 될만한 일들을 마다한 후 실험적인 프로젝트들을 하고 있었다. 때문에 카페나 외식 대신 집에서 일도 하고 밥도 해 먹었다. 자연스럽게 언니 오빠와 함께 집에서 활동하는 시간이 길었다. 


문제는 우리집이 그리 크지는 않았단 것이다. 주방은 두 명이 동시에 요리를 하는 것도 복잡했고, 다이닝룸은 따로 없어 거실이 다이닝 룸, 휴식 공간, 작업실 3가지 기능을 동시에 해냈다. 누군가 일할 때 다른 누군가 옆에서 식사하는 일도 부지기수였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일하고 있던 K&S가 심히 불편해하는 기색을 보이고, 어떤 경우는 그러면서 집을 나섰다고 한다. 그러자 언니네 부부가 K&S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고 이들이 거실에서 일하고 있으면 식사는 밖에서 해결했다. 주객전도가 일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누가 호스트이고, 누가 게스트인가. 이 집은 정녕 우리집이 맞는가, 하는 의문이 두 사람에게 생기기 시작했다. 거기다가 언니 오빠의 식재료를 사전 허가 없이 쓴다든지 하는 일도 발생했다는 사실을 듣게 되었고, 의아했다. 문제를 해결하고자 내가 중간에서 소통을 시도했다.


"토마토는 상하기 직전이었어. 안쓰나보다했지. 버려지는 게 아까워서 일단 썼어. 나중에 새로 사주려고 했다구!" 
"음..! 그랬구나. 이해했어. 하지만 우리가 서로의 의도를 다 알 수 없기 때문에 비슷한 상황이 되어도 쓰기 전에 꼭 미리 양해를 구하는 게 좋을 것 같아."
"그리고 내가 불편한 기색을 보이거나 문을 쾅하고 닫았다고? 그런 적 없어. 왜 그때 말하지 않은거지?"


K&S는 오히려 억울해했고 나는 당황했다. 서로간에 인식이 이렇게 다를수가. 누구 말이 진실에 가까울까. 무엇이 문제였을까. 화가 난 얼굴의 K를 보니 더 추가 질문을 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인식이 다를 때 어떤 질문과 말을 해야 할지도 알 수 없었다. 그렇게 갈등은 그쯤에서 마무리됐다. 해결이라기보단 그 정도에서 덮었다고 하는 게 더 맞을 것이다.
 
이후에도 불편한 상황들이 끝나지 않았다. K&S가 가고 난 다음 함께 지냈던 N도 또 다른 종류의 스트레스를 줬다. 그녀는 요리를 하면서 더러워진 손 그대로 냉장고 문을 열었고, 그래서 묻은 음식물 자국을 치우지 않았다. 자기가 재밌는 것을 보면 개인방에 들어와서까지 보여주고 싶어했다. (안타깝게도 우리한텐 재미없어서 난감..) 이렇게 쓰고 보면 소소해보일 수도 있지만 실제 살아보면, 그 누적된 영향은 결코 사소하지 않았다.

그 과정에서 언니와 오빠는 집의 역할에 대해 고민과 질문을 했을 것이고, 결국 변화를 선택했다. 



"우리는 이제 외국인들을 호스팅 하지 못하겠어. 물론 잘 맞고 너무 좋은 친구들도 있었지. 하지만 생활에 불편과 스트레스를 준 사람들도 있었어. 우리는 집에서 편하면 좋겠어. 너랑 우리끼리만 살거나, 우리 (한국인) 친구들을 받는 정도가 좋을 것 같아. 하지만 이게 너한테는 중요한 것이란 걸 알아. 네가 원하는 것을 우리가 막을 수 없기 때문에, 네가 원한다면 분리하는 것도 생각해봐야 할 것 같아. "


배려심 깊은 제안이었지만 망원동에 애착이 생겨버린 나에게는 청천벽력 같기도 했다. 나는 망원동을 사랑했다. 


호주머니 사정이 좋지 않은 이에게 망원시장은 천국이었다. 지출이 줄어드니 마음도 여유로워졌다. 농구 코트가 있는 한강공원이 지척에 있는 것, 동네 친구들이 많은 점 등 매일 더 좋아할 이유들이 늘었다. 동네 커뮤니티 또한 상당히 활발했다. 당근마켓이 생기기 이전부터 이웃들끼리 적극적으로 커뮤니케이션하던 페이스북 그룹이 있었고, 자발적으로 만들어진 오프라인 동네 모임들도 있었다. 무엇보다 망원동 커뮤니티의 바이브(Vibe)를 애정하지 않을 수가 없어다. 망원동은 서울 속 제주도다. 개인사정에 따라 불쑥 문을 열기도 닫기도 하는 마이웨이(My Way) 바이브는 이용자로서 불편할 수 있지만 뭐랄까 안심이 되었다. 자기만의 속도와 방향에 따라 살아도 괜찮다, 라는 메시지를 주고 받는 것 같았다. 퍽 사랑스럽고 자랑스러울 수가 없었다. 그렇게 한동안 망원동을 떠날 이유가 없어 보였고 서울에 있는 동안은 오래 이곳에 뿌리내리고 싶었다. 뿌리라는 게 있다면. 하지만 이제 다시 선택해야 했다.

나는 나답기도 하고, 동시에 전혀 나답지 않은 결정을 내린다. 망원에서 산지 일 년이 막 지난 시점이었다. 



Special Thanks to 

함께 살자고 제안해준 하연 언니와 상준 오빠 

그리고 망원동 커뮤니티 섬에서 즐거운 시간 함께 했던 모든 친구들

모두 정말 정말 고마웠어요 - 




작가의 이전글 아시아 스타트업 컨퍼런스 열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