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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센짱 Jan 10. 2022

살고 싶은 동네 말고 살기 좋은 동네

따로 또 같이 사는 글로컬 코리빙 하우스 서울눅스 프리퀄 5

부동산 사장님과 약속을 잡고 자려고 누웠으나 선뜻 잠들 수 없었다. 기대감에 눈이 더 말똥거리는데 억지로 잠을 청했다. 다음날 결국 늦잠을 자 헐레벌떡하며 후암동으로 향했다. 헉헉대며 오르막길을 올라 그 집 주차장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부동산 사장님을 만났다. 


"이 집 입구가 조금 헷갈려서 주차장 앞에서 보자고 했습니다." 


그 말대로였다. 나 혼자는 어디로 들어가야 할지 짐작도 못했을 것이다. 입구라고 생각했던 곳은 창고문이었다. 주차장을 지나서 벽돌 계단을 올라가자 정원이 나타났다. 꽤 크고 수목이 다양했다. “여기 집주인 분이 정원을 꽤 잘 관리하셨죠.” 내 환호성과는 달리 차분한 목소리로 사장님이 코멘트했다. 집 안에는 그 정원을 잘 관리했다는 주인 부부가 기다리고 있었다. 집 안은 더 놀라웠다. 사진에서 본 대로 벽난로가 있었다. 들어가자마자 벽난로에 먼저 다가가 만져 보았다. 진짜인가?


"진짜 벽난로예요. 남산에서 만원이면 이만한 땔감을 구해올 수 있어요." 


주인아주머니가 자랑스럽게 말했다. 예전에는 미군 가족들이 살았다고 덧붙였다. 이국적인 집 구조가 이해되는 배경이었다. 


복층 구조의 커다란 집에는 다섯 개의 방이 있었다. 방 사이의 크기 차이들은 있었지만 너무 작다고 생각되는 방은 없었다. 화장실도 세 군데. 수치만 놓고 보면 네다섯이 살기에 이상적이었다. 한 가지 한계점이 있었다. 마스터룸 구조 때문이었다. 한 방과 화장실이 가장 큰 방을 통해서만 접근이 가능했다. 전통적인 가족이었다면 큰 방을 부부의 침실로, 작은 방을 서재 또는 옷방으로 사용하기에 적합했을 구조다. 하지만 내가 살려고 하는 방식은 전통과는 거리가 멀었다. 이런 새로운 필요를 완벽하게 담아내지 못하는 것은 이 집뿐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집이 그럴 것이었다. 고민해보고 연락하겠다 인사한 뒤 대문에서 왼편으로 발걸음을 내디뎠다.


동네를 배회해보기로 했다. 

집 안 뿐만 아니라 동네도 엄연히 거주 영역이니까. 


먼저 집주인이 자랑했던 도서관으로 향했다. 어마 무시한 계단 뒤에 용산도서관이 있었다. 책도 책이지만 도서관 내 저렴한 구내식당 가격표를 보니 마음이 푸근해졌다. 앞에 있는 자그마한 동네 카페에 들어가 보았다. 시킨 음료를 천천히 들이키면서 손님들은 어떤 사람인지, 주인과 손님 사이의 관계는 어떤지, 이 동네 바이브를 감지해보려고 했다. 이후에도 여러 번에 걸쳐 후암동을 찾아 동네 투어를 했다. 


남산도서관에 들렸다가 내친김에 남산 둘레길을 걷기도 하고, 해방촌까지 걸어가 보기도 했다. 야경이나 도시 뷰에 관심이 없었지만 왜 다들 높은 곳에서 도시를 조망하려고 하는지 조금 알 것 같았다. 이윽고 가장 가까운 공원, 백범광장을 찾았다. 아담한 공원이었지만 한가로이 피크닉 하는 사람들을 보니 나까지 여유로워졌다. 다음으론 시장으로 향했다. 망원시장에 길들여져 후암시장에 만족하기란 당연 불가능했다. 망원시장의 그 활기는 기대하지 않았지만 크기도 작고, 파는 물건도 다양하지 않고, 가격도 저렴하지 않아서 실망했다. 다만 시장 한가운데 생뚱맞은 위치에서 재즈카페를 발견했다. 불이 꺼진 가게 앞에는 라이브 일정이 적힌 블랙 보드가 세워져있었다. '와, 진짜 라이브가 있는 재즈카페구나!!' 시장과 재즈, 상상도 안되는 이 조합 만으로 후암시장을 좋아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당시 투어하면서 찍었던 사진들


어떤 동네를 보려거든, 그 동네의 크림빵을 먹어봐야 해.


일드 <키치죠지만이 살고 싶은 동네입니까?>에서 나온 이 명대사대로, 동네 투어를 하면서 주섬주섬 먹고 마셨다. 마지막 코스는 후암동 <공집합>이었다. 당시 커뮤니티 바를 지향하며 운영하고 있던 곳이었다. 동네에 어떤 실험이 어떤 온도와 리듬으로 벌어지고 있는지 느껴보기로 했다. 


후암동 종점에서 살고 있었던 수진과 석영이 내 전화를 받고 합류했다. 며칠을 돌아다니면서 이곳에서의 내 일상을 그려보았지만 망원동을 떠날 결정을 할 만큼 강렬한 호감이 생기지는 않았다. 먼저 이 동네에 살고 있던 두 친구에게 후암동의 장점을 물어보기로 했다. 


"저희는 이 동네에 굉장히 만족하고 있어요. 저희는 산책을 많이 하는데 후암동 인근에 해방촌, 회현, 숙대입구 쪽 등 주변 지역들의 매력이 서로 다르고 다양해요. 그래서 필요한 게 있으면 주변 어딘가에서 분명 구할 수 있고요, 오래 있어도 질리지가 않아요. 누나도 엄청 좋아할 거란 생각이 들어요. " 


늘 새로운 것을 찾는 내 기질에 맞춤 조언이었다. 후암동에 대해 마음이 조금 더 열리기 시작했다. 

고뇌하는 나 그리고 수진, 석영


그리고 무엇보다 수진이와 석영이 그리고 그들이 키우는 웰시코기 유나가 후암동에 있다는 사실은 후암동에서 산다는 것에 대해 편하게 느끼게 했다.망원동만큼 많지는 않았지만 내가 좋아하는 친구가 동네친구로 있다는 사실은 중요했다. 종종 두 사람과 번개를 하고, 어떨 때는 내가 대신 유나를 산책시켜주는 그림을 그려보며, '음, 여기서 살아도 좋겠다'라는 마음이 시나브로 들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여전히 최종 결정은 내리지 못하고 시간을 흘려보냈는데...  고민이 될 수밖에 없었다. 무턱대고 집부터 보러 왔지만 벽난로만큼이나  (내게) 비현실적인 월세 때문이었다. 



To Be Continued



따로 또 같이 사는 집 Seoul Nooks 알아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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