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로 또 같이 사는 글로컬 코리빙 하우스 서울눅스 프리퀄 6
벽난로가 있는 파이브룸 집은 그 매력 만큼 월세가 어마 무시했다. 250만원. 공과금과 관리비 제외하고 월세만 250만원이었다. 그 매력에 눈이 멀어 집을 보러 갈 때까지는 월세를 곁눈질로만 봤었던 게 분명했다. 250만원이라는 숫자를 제대로 직면하자니 나도 모르게 침을 꼴깍 삼켰다.
코어 멤버가 될 사람을 두세명 모집한 후에 결정을 하는 것이 이상적이었다. 같이 살 의향이나 관심을 보여준 친구들은 몇 있었다. 하지만 확정된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이미 비어있는 집이었기 때문에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빨리 이사해야 했다. 현정 언니는 현재 살고 있는 집의 계약이 가을까지 있었다. 자기만의 방이 필요하다며 관심을 보였던 석영에겐 전세 대출이 꼭 필요했다. 하지만 전세 대출 지원 정책들 대부분이 집의 평수를 제한했기에 내가 찾고 있던 포룸 이상의 집으로는 해당 혜택을 받을 수 없었다. 여러가지 안을 생각해보았지만 뾰족한 수는 없어 답답했다. 부동산 정책과 지원 사업들이 시대 변화와 다양성을 제대로 반영하고 있지 못하다는 생각에 화도 났다.
이상적인 방법을 추구하다가 이상은 그냥 이상으로만 머무를 걸?
일단 저질러봐. 이후에 어떻게든 풀릴거야.
이런 위험한 목소리가 내 안에서 나를 흔들었다. 가슴이 뜨거워졌다가 이내 곧 식었다. 살면서 그 만큼의 리스크를 져본 적은 없었다. 남미에서 했던 히치하이킹이 내가 경험한 최대의 모험이었다. 돈을 잃을 수 있는, 빚질 수 있는 재정적 리스크를 지는 길은 아예 쳐다보지도 않았다. 감당하지 못했을 때의 그 자괴감과 막막함을 생각하고 싶지도 않았다. 나는 그런 그릇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너무 소극적으로 생각하는 건 아닐까? 공간 관련 일을 하는 친구들에게 조언을 요청했다. 반전을 바랐지만 그들의 생각도 마찬가지였다. "월세가 너무 비싼데?" "아, 이거 좀 어렵긴 하겠다." 내가 쫄보가 아니라는 사실에 위안을 느끼면서도 한편 좌절했다. 내가 왕쫄보인 거라면 용기를 짜내면 되지만, 객관적으로 어려운 조건이라니까. 접는 수 밖에. 현실을 무시할 수는 없었다.
같은 동네에 이 집과 비슷하면서 월세는 합리적인 집은 없을까. 다른 부동산 몇 군데를 찾았다. 발품에 기대를 걸었다. 포룸에 한정하지 않고 쓰리룸도 여러군데 보았다. 정말 많은 집들을 봤다.
초여름이었지만 후암동의 경사진 길들을 오르락 내리락 거리기엔 더운 날씨였다. 경사가 가파른 길을 올라가다가 숨이 차서 고개를 들자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사장님이 달랬다. "조~금 올라와야하지만...경치는.. 정말 좋습니다 ^^; " 다행히 거짓말은 아니었다. 땀의 양과 전망의 퀄리티는 정확히 비례했다. 아, 땀을 많이 흘렸단 말이다.
한편 망원동/합정 인근에서도 물색을 이어갔다. (망원동에 대한 집착...) 기대와 달리 내가 찾고 있는 조건의 집(포룸 이상일 것)들은 이 지역에서 더 비쌌다. 조금은 절망적인 기분이 되었다. 여러 계산들로 머리가 복잡했다. 한편 벽난로 집이 머릿 속에 아른거렸다. 그 집 때문에 눈이 너무 높아졌다. 아무리 다른 집들을 많이 봐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잠깐만, 잠깐만!
나를 멈춰세우고 물어야 했다.
.나는 결국 무엇을 위해 이것을 하고 싶은가.
.나는 왜 그 집이 끌렸던 걸까.
.어떤 집에서 살고 싶은가.
.왜 포룸 이상이어야 하더라.
.정말 그래야만 하는가.
길고 지겨운 셀프 청문회가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