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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센짱 Jan 12. 2022

감당하지 못할 도전을 해도 될까?

따로 또 같이 사는 글로컬 코리빙 하우스 서울눅스 프리퀄 7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그네를 타며 시작된 청문회는 생산적이지 않았다. 상상도 해본 적 없었던 리스크 규모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지르고 싶은 내 마음 사이, 현실의 추를 무겁게 하기 위한 자기비난이 시작되었다. 이 자기비난의 목소리는 내가 시작하고 마무리하지 못했던 일들을 쳐다보라고 했다. 모든 실패의 역사가 적힌 책을 친절히 펼쳐주며. 싱싱한 것부터 묵어 있는 오래된 것까지 다양한 모양의 실패사들을 직면하면서 어느새 구렁에 빠졌다. 


실패 투성이인 내가 또 책임 지지 못할 일을 욕심 내는구나. 


다큐멘터리 <서칭포 슈가맨>을 다시 꺼내 보았다.

주인공이자 실존 인물인 로드리게즈는 뮤지션이다. 가능성을 높게 점쳤던 프로듀서들의 기대와는 다르게 앨범은 처참히 실패했다. 의아스러울 정도였다. 그는 음악활동을 중단했지만 그의 앨범은 지구 반대편 남아공에서 대히트를 친다. 전설이 되었지만 소문만 무성하던 그를 남아공의 팬들이 수소문해서 찾아와서 이런 놀라운 사실을 전했을 때 그는 덤덤하다. 시대와 장소의 핀트가 맞아 떨어지지 자신의 재능을 충분히 펼칠 기회를 놓쳤던 '불운'에 대해 나라면 화가 났을 텐데. 실패에도 성공에도 연연하지 않는 그의 모습은 나에게 그저 경이롭기만 했다. 남들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았기 때문에 실패도 성공도 없었다. 그는 업에 상관없이 예술가로서 살았다. 형태에 구애 받지 않고 그의 이야기를 써내려갔다. 쿨내 팍팍 나는 그의 모습을 보면서 내 욕심과 자괴감을 가라앉히려고 노력했다. 


영화가 끝나고 함께 영화를 본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왜 이 영화가 보고 싶었냐는 질문에 대답하다가 울음이 터졌다. 실패라는 단어와 바꿔써도 될 나의 존재에 대해 로드리게스처럼 초연해지고 싶다고 답했다. 나의 현실은 어렸을 때 내 삶에 품었던 기대와 많이 달랐다. 그리고 이제 이 모든 것을 되돌리기엔 늦은 것 같다. 나는 실패했고, 실패 그 자체라고 고해성사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라디오헤드의 <Creep>까지 들으니 루저 감성 충만하기 그지 없었다. 그래. 그냥 루저로 살자. 


한편 또 다른 목소리가 내 안에서 들리기 시작했다. 

지금 나에게 필요한 성장을 위해서는 한 걸음 더 내딛어야 한다는.


내가 실패했던 프로젝트들은 그 주제가 트렌드가 되기 한 박자 또는 반 박자 이르게 시작했었다. 신선해하는 반응은 받았지만 지속하지 못했다. 각 실험은 한두번 정도 하다가 끝났다. 피봇을 하면서 실험을 반복하기 위해 준비해둔 자금도, 돈을 빌릴 깡도 없었다. 역량 부족부터 실패에 귀결될 수 밖에 없는 요인이 차고 넘쳤지만 그 중에 가장 큰 이유는 리스크를 회피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리스크를 지고 조금 더 버텼다면 어땠을까. ' 씁쓸한 마음에 의미 없는 가정형 질문이 꼬리를 물었다. 열정 하나만으로 대차게 삽질했던 주제들(ex. 디지털노마드, 리모트워킹, 코워킹 등)은 점점 수면 위로 올라왔지만 나는 점점 수면 아래로 무겁게 가라앉고 있었다. 족쇄를 채운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니라 나였다. 


이리도 궁상 맞고 지루한 내 자기비난을 들어준 벗들이 있었다. 인내심 많은 이들은 그만 좀 하라고 야단치지 않았다. 누군가는 나 대신 속상해하고, 누군가는 자신이 어떻게 열등감과 무력감을 다루었는지 담담하게 경험을 공유해주었다. 그저 내가 심해로 가라앉지 않도록 팔을 뻗어 나를 끌어올렸다. 덕분에 다른 목소리가 점점 더 크게 들리기 시작했다.  


리스크를 계속 피하면서 살 수 없어.
싫던 좋던 그것을 감당하는 연습을 해야 해. 
나한테 조금 버거운 정도의 리스크를 져야 해. 
일부러라도. 사서라도. 그리고 그건 지금이야. 


이 목소리는 다름 아닌 그 족쇄가 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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