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로 또 같이 사는 글로컬 코리빙 하우스 서울눅스 프리퀄 8
비생산적인 셀프 청문회가 진행되는 동안 처음에 본 벽난로 집은 진즉에 떠나보냈다. 갈팡질팡 하는 과정에서 조언을 구한 사람들 중에 KJ 오빠가 있었다. 상의 과정에서 오빠도 이 집을 마음에 들어했고 내가 결국엔 무결정을 결정, 그러니까 기권을 하면서 오빠가 계약하게 되었다. 아쉬웠지만 다른 사람이 아니라 오빠가 계약을 하게 되서 다행이었다. 그래도 이따금 놀러 갈 수 있는 집이 되었으니까.
그 사이 부동산 사장님은 내가 찾고 있는 조건에 부합하는 집이 나타날 때마다 연락을 주셨다. 이번에 찾아간 4층 포룸은 벽난로 집 이후로 가장 마음에 드는 집이었다. 일단 널찍했다. 다이닝룸과 거실은 물론 화장실과 창고까지 넓고 쾌적했다. 옷방으로의 활용을 의도한 작은 방이 없었다. 붙박이 옷장들이 따로 있었다. 거기다가 층별로 한 집인 구조라 다른 이웃과 부닥칠 일이 없어 편할 것이었다.
가장 큰 장점은 전망이었다. 넓은 거실 창을 통해서 보이는 도시 뷰가 시원시원했다. 남산타워와 서울 시티뷰 둘 다 가진 옥상이 바로 위였다. 넓은데다 꽤 깔끔한 바비큐 시설도 있었다. '여기에 살면 루프탑 카페에 안 가도 되겠는걸?' 루프탑에서 열 수 있는 다양한 이벤트를 어느새 상상하고 있었다. 벽난로 집에 비해 방이 하나 적은 포룸이니만큼 월세가 비교적 합리적은 점도 좋았다. 아쉬운 점은 집 전체가 하얗기만 해 밋밋했다는 점이었다. 그만큼 호불호가 갈리지 않을 좋은 캔버스라는 뜻이기도 했지만 강력한 매력을 느끼지는 못했다. 며칠 더 고민을 이어갔다.
201호도 이제 곧 나올 예정인데 한번 보실래요?
벽난로가 있던 집은 여섯 집이 모여 있는 빌라였다. 내가 처음 본 집은 101호였고, 이번에 201호 세입자가 곧 이사 나갈 예정이었다.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부동산 사장님은 그 집이 101호보다 한 개층 많은 복복층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복복층이라니. 복복층이란 단어를 듣는 것도 처음이라 무엇을 기대하여야 할지 몰랐다. 복복층의 모습을 상상하며 한편 기대하는 마음으로 그 빌라를 다시 찾았다. 집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던 당시 세입자가 문을 열어주었다. 하지만 기대가 실망으로 바뀌는 데는 집에 들어선 후 얼마 걸리지 않았다.
첫인상에서 망했다. 1층을 가득 채우고 있었던 세입자의 물건들 영향이 컸다. 대낮이었지만 거실이 어두컴컴해 음침하기까지 했다. 민박업을 하고 계셨고 한 숙소 예약 플랫폼에서 8.5 정도의 평점을 받았는데 그 사실이 조금 믿겨지지 않는 첫인상이었다. 필시 주인아주머니의 요리 솜씨가 훌륭했거나 가성비가 좋았을 것이라! 과연 나는 이곳을 어떻게 바꿀 수 있을지 그리는 데 애를 먹으며 2층으로 올라갔다. 다행히 위층으로 갈수록 볕이 잘 들어왔다. 바로 윗집인데 101호와 202호는 상당히 달랐다. 단순히 복층이 하나 더 있는 것 이상이었다. 아주머니를 따라 복복층 끝방까지 이동하면서 예상보다 훨씬 더 다른 구조에 놀랐다. 다락방에서는 남산타워가 잘 보였다. 천정에 유리 창문이 조금 나 있는 등 재밌는 구석이 많았다.
하지만 '바로 이 집이다!'와 같은 강력한 느낌은 없었다. 기대가 컸기 때문에 낙차로 인한 실망은 필연적이었다. 비유하자면 101호는 첫사랑 같은 존재였는데, 콩깍지가 낀 상태에서 보고 기억하는 101호에 201호를 자꾸만 비교하니 성에 차지 않았다.
하지만 차분히 생각해보니 201호야말로 내가 희망하는 조건들을 모두 갖추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