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컬 코리빙 스페이스 Seoul Nooks의 커뮤니티빌딩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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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8월 한 여름의 일요일 저녁. 타운홀(a.k.a. 반상회)을 위해 한 명씩 거실에 모였다. 논의해야 할 중대한 사안이 있는 만큼 지각하는 사람 없이 거의 정시에 시작됐다. 가벼운 안건들을 빠르게 논의한 후 곧이어 키보드 사용 관련 논의할 차례가 되었다. 본격적으로 시작하기에 앞서 나는 두 가지를 제안했다. 호흡명상과 비폭력대화(NVC) 기법의 사용이었다.
비폭력대화 기법에 대해 간단히 소개했다. 상대를 판단하지 않고 각자가 어떻게 느끼는지, 무엇을 원하는지를 명확하게 이야기하도록 하자고 제의했다. 간단히 말해 말을 시작할 때 '너'가 아니라 '나'로 시작하자고. "네가 어떻게 그럴 수 있어."가 아니라 "나는 이렇게 느꼈어. 이걸 원해."라고 말하자고. 오늘의 회의가 무사히, 생산적으로 끝나기 위해서 대화법이 먼저 바뀌어야 했다.
하지만 감정이 앞서면 자신의 느낌과 욕구에 대한 신호를 놓치기 십상이다. 그래서 제안한 두 번째가 함께 호흡명상을 하는 것이었다. 아마 1분 정도의 짧은 명상이었을 것이다. 우려와는 달리 어색해하며 거부하지 않고 모두 잘 따라와 주었다. 아마 며칠간 화를 삭일 시간도 각자 있었을 것이고 언뜻 보기엔 다들 차분한 얼굴이었다. 설사 논의 중 감정이 과열된다고 해도 내가 이에 압도되지 않고 회의의 중심을 잘 지킬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심호흡을 한번 더 한 후 운을 뗐다.
조금 더 생산적인 토론을 위해서 내가 초안을 준비해봤어. 모두에게 공평한 제안 대해 굉장히 많이 고민했는데 문제는 거실의 변화인 것 같아. 거실에 대해 가지고 있는 기대와 실제 사용이 복합적이고 그래서 때로 모순적이라는 데서 갈등이 시작되는 것 같아. 코로나가 부추겼지.
재택이 선택이 아니라 필수가 되면서 거실이 주 작업 공간이 되었어. 주중 낮시간 동안 거실이 진지한 업무공간으로서 역할을 하길 바라. 그렇지 않아? 그래서 저기 다이닝룸에서 이뤄지는 통화라 할지라도 볼륨이 높고 오래 지속되면 불편해하기도 해. 누군가는 기계식 키보드가 필요하고, 누군가는 불편해. 거실을 대하는 우리의 지금 태도는 실질적으로는 코워킹 스페이스야. 특정 시간에 대해서는 말이야. 그 사실을 우리가 인정하는 게 먼저 일 것 같아. 거실은 여전히 집이고, 집 안에 있으니까 편하고도 싶지. 내 맘대로 하고 싶기도 해. 하지만 이런 욕구들이 모순적이라면 우리는 이 중 가장 중요한 것을 선택을 해야 해.
거실이 그저 거실이기만 한 것이 아니란 것, 시간에 따라 같은 공간이 가지는 다른 얼굴에 대해 인정하고 합의가 되었다면 그다음 코워킹 시간을 정하자. 그리고 이 시간 내에는 거실을 전문적인 코워킹 스페이스로 대우하자. 코워킹 스페이스에서 우리가 자연스럽게 따르는 to do & not to do가 있잖아? 이 기준을 적용 하면 어떨까. 예컨대, 위워크 같은 곳에서 기계식 키보드 가져가? 누가 쓰는 거 봤어? 없지?
나도 기계식 키보드를 개인적으론 선호하긴 해. 그리고 기계식 키보드가 생산적으로 일하는 것에 중요한 S와 이제 막 기계식 키보드를 사고 신나 했던 M에겐 미안한 일이지만 이게 공평하지 않을까 해. 추후 함께 하게 될 멤버들도 생각해야지. 지금의 멤버들의 다수가 기계식 키보드가 괜찮다고 이를 허용하면 멤버가 변화할 때마다 우리는 계속해서 합의점을 찾아가야 할 거야.
거기다가 C가 기계식 키보드 소리가 그냥 싫어하는 것 이상의 고통이라고 해. C, 어떤 고통인지 모두에게 이야기해줄 수 있어?
물론 실제로 말할 때는 이만큼 정돈되진 않았지만, 대충 이런 내용이었다
C는 기계식 키보드 소리가 그냥 시끄러운 게 아니라 자신에겐 손톱으로 칠판을 긁는 소리로 들린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듣고 Y가 발언했다. 그는 기계식 키보드를 사용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그 소음에 불만을 제기하지 않아 갈등에는 직접적으로 관여되어 있지는 않았었다.
" 그 정도로 큰 고통을 겪었다니 상상도 못 했어. 정말 정말 유감이고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어. 커뮤니티의 멤버가 그런 고통을 받지 않길 바라. "
그의 진심 어린 말은 C 뿐만 아니라 타운홀을 진행하던 나도 감동시켰다. 누군가로부터 그런 공감을 받았기 때문인지 C는 화가 누그러지는 듯해 보였다. 그렇게 평화롭게 진행되는가 싶었지만... 역시 그렇게 순순히 풀려갈 갈등은 아니었다. 아마도 갈등의 중심축에 함께 서있던 M이 받은 상처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서였던 것 같다.
M이 키보드에 대해 의견을 피력했을 때 C의 반응은 M에게 상당한 상처가 되었다. C에게 이어폰을 끼는 게 어떻겠냐는 M의 제안에 C는 "It's just FUCKING keyboard!"라고 소리치고 자기 방에 들어가 버렸다. 문을 쾅하고 닫는 소리가 내 방에까지 들릴 정도였다. 놀란 M은 그 자리에서 얼어 펑펑 울었다. C의 반응이 놀랄 만은 했지만 평소 소심하거나 겁이 많은 스타일이 아닌 M이 그렇게나 우는 것에는 이유가 있었다. 어릴 적 가족 중 다혈질적인 사람이 있었고 이로 인한 트라우마가 있었다. C의 고통을 우리가 인지하고 공감했으니, M 차례라 생각해 그런 배경이 공유되도록 나는 이끌었다. 그러다가 M이 다음과 같은 말을 날렸다.
"우리 지역(나라)에서는 절대로 그렇게 화를 내선 안돼. 이야기하는 중에 자리를 박차고 문을 쾅하고 닫는 것은 굉장히 모욕을 주는 행위로 간주돼. 그래서 나는 더욱 공포스러웠어! "
쏜화살처럼 툭 튀어나온 M의 이런 말에 C는 다시 욱했다.
"우리 문화에서는 원래 이렇게 감정을 숨기지 않고 표출해. 싸우고 화해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뭘 그렇게 예민하게 굴어. 그러니까 애초에 기계식 키보드 쓰지 말아 달라는 내 이야기를 네가 무시하지 말았어야지!"
개입해서 막을 새가 없었다. 마치 오랫동안 비가 오지 않은 산에 작은 불씨가 큰 화염으로 번지듯, 서로의 감정이 폭발했다. 서로 간의 언성이 높아지며 다시금 M은 울음을 터뜨렸다. 소파의 구석 자리에서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고 흐느끼는 M이 말했다.
"못하겠어. 나 정말 못하겠어."
거실의 공기는 다시 냉랭해졌다.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