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컬 코리빙 스페이스 Seoul Nooks의 커뮤니티빌딩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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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서 가장 후회되는 게 가족을 위해 한 희생이야.
어려서 가장이 된 아빠는 가족이 함께 잘 살아야 진짜 잘 사는 것이라 믿었다. 과부가 된 할머니뿐만 아니라 고모들, 막내 삼촌까지 열심히 서포트하는 원동력이었다. 특히나 가족의 희망이었던 영재 막내 삼촌에 대한 지원은 각별했다. 교육비부터 일자리까지 장기적인 지원이었다. 하지만 기대는 매번 실망으로 돌아왔다. 다른 용도로 탕진하거나 날려먹거나 대충 하더니 결국 사기로 구속됐다. 그 과정에서 아빠가 할머니 여생을 위해 마련한 주공아파트를 아빠 몰래 담보로 잡았다가 깨끗하게 날려먹었다. 문제는 그 사실을 알고도 할머니와 고모들이 그 사실을 말하지 않았던 것이다. 아빠는 엄청난 배신감을 느끼고서 그제야 '형제들이 함께 잘 사는 가족'이라는 이상을 버렸다. 그리고 설마 무슨 일이 생기더라도 장남이니까, 큰 오빠니까 결국엔 책임져주겠지, 라며 은연중 당연하게 기대된 역할을 보란 듯이 차 버렸다.
아빠는 그간의 희생에 대해 허탈한 마음이 자꾸 들었나보다.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젊은 시절 기회의 땅이었던 서울에 오지 못한 것, 그것으로 그의 가능성을 더욱더 펼쳐 보이지 못한 것 등등 아쉬웠다. 물려준 거라곤 빚과 미련한 형제자매들 밖에 없는 부모와 조상들을 모시는 일이 이제 복장이 터졌다.
'어머니가 어떻게 나한테 그럴 수 있어?'
'너희들이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어?'
'가족이 어떻게 이래?'
울분을 삼킨 이후 실용주의자의 노선을 더 확실히 걷기 시작한 아빠는 제사나 명절 의식들을 과감히 생략하거나 간소화시켰다.
. 가족이니까 이 정도는 해줄 수 있잖아.
. 가족이니까 이 정도는 참아야지.
. 가족이니까 이 정도는 이해해줘.
. 가족이니까 이 정도는 포기하고 희생해야지.
이렇듯 가족이란 이름 아래 주고받는 상처들이 얼마나 많은가. 고모나 삼촌들에게 물으면 나름 억울하고 서운한 사연들이 있을 것이다. 상처의 이유는 결국 파고들면 비슷하지 않을까. 가족이니까 당연하게 여겨졌던 부담과 희생들. 우리는 본인의 희생을 더 진하게 기억하는 법이다.
우리는 종종 가족을 무조건적 사랑의 상징으로 이상화한다. 하지만 정말 가족이라고 보상을 바라지 않고 사랑하는가? 실질적으로 호혜성을 기대하면서 호혜적이지 않다고 스스로 속이는 경우도 많지 않을까. 다만 지금 당장 보상받지 못한다고 해도 기다릴 수 있는 건 피로 연결되어 인연은 대체로 싫으나 좋으나 긴 타임라인을 가지기 때문이다. 지금의 사랑에 대해 나중에 보상 받을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려있다. 다소 일방적으로 보이는 희생이나 양보가 가능한 것은 그런 셈법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보다시피 그런 혈육도 결국 끊고자 한다면 끊긴다. 혈연으로 이루어진 가족 관계의 문법도 바뀌어갈지언정, 새로운 가족은 더욱 자기만의 새로운 호혜성에 대한 문법을 찾아내야 한다.
'당연함'이 꼭 나쁘지만은 않다. 자식으로서 부모가 당연히 주는 사랑을 당연한 듯이 받는 그 안온함은 달콤하다. 무엇 하나 당연하게 그냥 주어지는 것이 없는 냉랭한 세상에 합리성을 따지지 않고 당연함으로 엮일 수 있는 관계는 오아시스 같기도 하다.
남남이 모여 사는 우리 코리빙 커뮤니티가 하나의 유사 가족이 되는 데에도 '기꺼이' 그리고 '당연히' 하는 호의들이 큰 몫을 했다. '너니까', '친구 사이니까', '같이 사는 사람들끼리인데', '우린 커뮤니티이니까' '식구니까'. 그래서 이해하고, 기다리고, 봉사하고, 용서하고, 나누고, 배려하고, 함께 웃고 울면서 우리는 끈끈해졌다.
동시에 당연하게 받고 익숙해지는 순간도 찾아오면서 가족의 딜레마가 시작된 것이다. 이쯤 하면 나 자신이 준 베풂과 호의를 다시 돌려줄 것이라 품었던 기대가 실망으로 바뀌기도 하고, 그렇게 지게 된 희생이 반복되어 지치기도 하고, 당연하게 여겨지니 서운함으로 바뀌기도 했다.
혈연으로 맺어져 있는 가족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극적인 상황을 제외하고) '어쩔 수 없이' 계속 그 관계를 유지한다. 도돌이표 같은 애증의 루프를 타며. 하지만 우리는 어느 정도의 계약 기간 이후에는 헤어질 자유가 있는 관계다. 그러니 지속 가능한 커뮤니티를 위해서는 '당연함'은 경쾌한 수준으로 유지되어야 했다. 즉슨 우리는 가족이되 가족은 아닌, 그 중간의 관계의 길을 닦아가야 함을 의미했다.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