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

이제야 내 삶이 시작되었습니다. 내게 사랑이 찾아왔으니까요

by 센짱

4월 7일, 올해는 방콕에서 생일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공교롭게도 올해 나는 모두가 그리 달가워 하지 않는다는 아홉수에 걸렸습니다.


스물아홉.


헌데, 우습게도 나는 나의 스물아홉이 감히 기대됩니다. 29세의 나는 지난 28년간의 나보다 더 나은 버전의 나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내년에는 더 나아져 있을거라는 낙관적 믿음이 생겼습니다. 그 '나음'은 타인에게 판단의 기준을 둔 '착해지는 것'이 더이상 아니라는 점이 통쾌합니다. 한동안 스스로를 갇아둔 '착한 사람'이라는 아주 두꺼운 껍질을 드디어 깨고 나오기 시작했거든요.


'착한 사람'이라는 덫

christopher-windus-92825.jpg Photo by Christopher Windus on Unsplash

10대엔 비가 억수로 쏟아지는 날 이따금씩 '나는 존재할 가치가 없어. 누구도 사랑해주지 않을거야!' 하며 울며 뛰쳐 나갔었습니다. 직장생활을 하는 나이가 되어선, 출근 직전 거울 앞에 선 내 꼴이 밉고, 이 꼬라지로 문을 열고 세상으로 나가는 것이 끔찍한 나머지 그자리에서 주저 앉아서 진탕 울었던 적도 있습니다. 그러니 미움받지 않기 위해 착한 사람이 되는 것에 집착했던 게 아닌가 싶습니다.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


절박하게 찾은 심리치료센터에서는 어릴적 성장과정을 원인으로 지적했습니다. 나쁜 기억 속에 울고 있는 자신에게 다가가 안아주고 다독여 보라 해서 시도했지만, 궁극적으로 해결되진 않았습니다. 다시 태어날 수도 없는 일이었습니다. 차라리 다른 누군가가 기적적으로 나를 사랑해준다면 그제서야 나도 사랑받을 만한 존재라고 어렴풋이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렇다면 <생일>이라는 시에서 시인이 노래하는 것처럼 그 날이 나의 영혼이 다시 태어나는 생일이 될텐데 말입니다.




자신을 사랑하지 않고도 타자를 사랑할 수 있다고 오만하게 생각했던 적이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인해 숨진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생각하며 안타까움에 눈물을 흘렸지만, 스스로에 대해서는 죽을 용기가 없어서 울었습니다. 그렇게 고등학생 시절부터 봉사활동, 비영리쪽 일, 캠페인 등 꽤나 열정적으로 했습니다.나의 모든 사랑을 세상을 향해 쏟았고, 그렇게 흘려보내면 그 사랑이 내게도 돌아오게 되는 건지, 하고 막연히 기대했습니다.


커져가는 부조화


허나 자존감 없이 좋은 사람, 정의로운 사람, 착한 사람이 되려면 되려고 할 수록, 부조화가 커졌습니다. 거짓말이 늘어가기 시작했습니다. 그 땐 그게 거짓인지도 모른채로 말입니다. 내 감정 따위는 중요한 게 아니라고 생각했더니, 진짜 내 감정과 내 욕구를 알아차리기 너무 힘들어졌습니다. 스스로 기쁘지 않고, 상대가 원했던 것인지도 확실치 않았던 희생과 배려들을 하는 동안에 내면에서는 화가 쌓여 갔습니다.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어느 순간 임계점에 다다르면 팡! 하고 터졌습니다. 그런 화는 참으로 파괴적이었습니다. 나도, 상대도 놀라고 당황했습니다. 곧 정신이 들면 모든 것을 다시 못난 나의 탓으로 돌리기 시작했습니다. 상처가 딱지가 됩니다. 딱지를 뜯어내면 왜곡된 자기연민이란 고름이 흘러나왔습니다. 외로워집니다. 이런 폭발을 여러 차례 거치며, 나 스스로 (정신적으로) 자립하지 못한 상태로는 누군가를 제대로 사랑해줄 수도, 누군가가 나에게 주는 사랑도 제대로 받아낼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할 수 밖에 없습니다. 끊임없는 자기 부정으로는 행복한 관계를 만들 수가 없습니다.


그러다가 나는 길을 떠났습니다.

지난 상처를 딛고 자기를 찾기 위해 떠난 한 여성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 <The Wild>의 스틸컷.


중간에 한국에 돌아간 적도 있지만 나와있는 시간이 도합 1년이 되었습니다. 변화를 겪었습니다. 생일을 기점으로 해서 지난 생일과 지금의 생일을 비교해보니 그 차이가 사뭇 크게 다가왔습니다.


변화들


기쁘게도, (물론 갈 길은 아직도 멉니다만) 지금처럼 내 자신과 편해본 적도 없습니다. 혼자서 있는 시간이 외롭지 않습니다. 이제는 내 마음의 목소리가 좀 더 잘 들리게 되었습니다. 거절을 하거나 반대로 거절들을 당해도 예전처럼 상처가 되지 않습니다. 누군가가 나를 싫어하거나 욕해도 괜찮습니다. 내 모습 그대로가 썩 괜찮아 보이기도 합니다.


어떻게 내가 나로서 괜찮게 되었는지, 여러가지 영향들이 있었지만, 떠남은 결정적 요인 중 하나였습니다.



나의 떠남은 역설적으로 나의 뿌리를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왔습니다.


영화 <쿵푸팬더3> 속 비밀의 팬더 마을

쿵푸팬더3의 포가 '나'를 찾기 위해 자신이 태어난 팬더마을로 향한 것과는 반대의 방법입니다. 안에 있으면 너무나 당연해서 인지하지도 못했던 특성들이 때론 멀리 떨어져서 볼 때 보이기도 합니다. 마치 흙탕물을 실린더에 부었을때 처음엔 뿌였다가 시간이 가면 부유물들이 가라앉으며 물이 깨끗해지듯 말입니다. 한국은 특히나 무엇이 되어야 하고, 이런 상황에선 저렇게 해야하고, 어떤 모습이어야 하고 하는 등의 암묵적인 사회적 규칙이 많기 때문에 한번쯤은 이런저런 소음들로부터 떠나 내 안에 꽁꽁 감춰진 내 목소리를 듣는 고요한 시간이 필요합니다.



떠남은 세월과 함께 견고해진 타인이 바라보는 '나'의 이미지 사슬로부터 자유케 합니다.

katie-chase-180320.jpg Photo by Katie Chase on Unsplash

타인이 보는 나도 나의 일부라고 생각합니다만, 종종 '네가 보는 너는 틀려. 내가 봤을 때 넌 이래. 이게 맞아!'하고 나보다 나를 더 잘 안다고 우기는 분들도 계십니다. 꼭 이런 분들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서로에 대한 이미지를 형성하고, 그에 따른 기대를 지니게 됩니다. '착한사람'이라는 프레임에 갇히게 되면 내 안의 다양한 면들이 발현할 기회를 스스로도, 사회적으로도 주지 않습니다. '자기답게 살아가는 것'은 이러한 기대들과 마찰이 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익숙한 환경에서 떠나 충분한 시간을 가지면 새로 찾은 '자기다움'은 새로운 관성이 되어 돌아갔을 때의 마찰을 이겨낼 힘이 생깁니다.



떠남은 '나'의 범주를 '한국인'에서 '인류'로 확장시켜줍니다.


가지각색의 모습으로 살아가고 사랑하고 아프고 하는 모습들을 보며, 나는 자연스럽게 나 그대로 그 일부가 되었습니다. 단일민족 한국에서 벗어나 조금만 다녀보면 얼마나 다들 서로 다르게 생겼는지요. 나라마다 각각의 이상적인 미의 기준들은 있지만 이방인인 나는 그 미적기준에 얽메이지 않아도 됩니다. 내 뿌리 문화의 미적기준도 여러 미적기준의 하나가 될 뿐, 그것이 나를 평가하는 절대적이고 유일한 기준이 되지 않습니다. 내 외모를 가지고 비교할 기준도 없어집니다.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의 몰에서 열린 한 행사장에서 무료 메이크업을 받는 여성들


너무나도 예쁘게 생긴 발리인 친구가 나보고 피부가 하얘서 예쁘다며 부러워합니다. 내가 그리도 스스로에게 해주고 싶었던 말을 그녀에게 돌려줍니다.

무슨 말이야. 너는 너 대로 너무나도 눈부셔.



사랑으로 다시 태어나는 날, 생일


시<생일>에서의 나의 사랑은 다른 존재로부터 받는 사랑일 필요는 없습니다. 그건 내가 나한테 주는 사랑일 수 있습니다. 완벽하진 않지만 나의 변화는 시작되었고, 나는 다시 태어나고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나의 생일은 매일, 매일입니다.

이런 내가 변화를 겪게까지 빗속에서 비를 맞고 있자면 우산을 씌워주는 친구들이 있었고, 그이들에게 잠시나마 기대어 내 존재를 버텨냈습니다. 그 사랑을, 미약하게나마 내 두다리로 서고 나니, 이제야 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내가 떠날 수 있게 지지해주고, 멀리에서 내 생일을 연이어 축하해준 벗들에게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 올립니다. 나를 찾느라 당신에게 소홀했던 것 용서해주세요. 더 나다운 모습으로, 진솔한 모습으로 만나겠습니다.


Credit: Quate Fanc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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