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날 갑자기 숨 쉬는 법을 까먹었다.
표지 사진 출처: Photo by Victor Rodvang on Unsplash
1. 나는 지금 한국에서 지구정반대인 남미 아르헨티나에 와있다. 작년, 그러니까 2017년 12월 19일 비행기로 57시간(?!)의 비행 및 환승 시간을 거쳐 부에노스아이레스에 도착했다. 지금 내가 여기에 있는 것을 포함해서 2017년의 많은 의외의 일들은 2016년 말 내 인생에서 가장 드라마틱했던 순간으로 기인한다.
2. 2016년 겨울, 고향인 삼천포에 내려가 그 해의 어느 날보다도 가장 잘 먹고, 내일 잘 곳을 걱정할 것없이 우리 집, 내 방에서 편하게 지내고 있었다. 그런 평온한 한 밤, 그 전날 밤과 마찬가지로 뭔가를 하기 위해서(도대체 뭘 하려고 했는지는 기억이 안난다) 컴퓨터 앞에 앉았는데 갑자기 숨이 턱 안쉬어지는 것이었다. 들이마시는 산소가 평소의 반 밖에 되지 않는 것 같았다. 증상이 생각보다 길어지자 두려웠다. 답답함에 창문을 열어보고 심호흡을 크게 해보려고 했지만, 숨쉬는 방법이 생각나지 않았다.
오잉. 숨을... 어떻게 쉬더라..
막막하고 정말 스스로 바보같이 느껴졌다. 아, 나는 29년간 숨을 어떻게 쉬어왔더라. 이 기초적인 것 하나 못하는구나.
3. 느낌상 한 10분 동안 지속되었던 산소 부족의 상태가 어느덧 겨우 지나갔다. 하지만 익일에도 계속된 가슴압박에 병원에 찾아갔다. 아무런 검사를 받지 못했고, 그 정도의 증상 가지고는 심장병 관련해서는 검사해서 찾아낼 수 없다는 이야기만 들었다. 별 문제 아닐 것이라고 이야기해주었다. 하지만 결과에는 항상 원인이 있는 것이 아닌가! 나는 갑자기 원인을 알 수 없는 신체의 변화 앞에서 비극을 생각하고 준비했다. 그래, 내 삶이 이때까지 너무 운이 좋았지. 병원에서 밝힐 수 없는 걸 보니, 현대의학으로는 밝혀지지 않는 미지의 희귀병이겠구나. 29년간 잠복해있던 심장병이 드디어 내 인생을 끝내려 자신의 모습을 드러냈구나, 하며 이미 비극의 스토리를 써내려가고 있었다. 나는 사뭇 비장해졌다. 첫 증상 만큼은 아니었지만 호흡이 멎을 것 같은 찰나의 공포가 매일 이따금씩 스쳐갔다. 버스를 타고 가다가 내가 서 있는 지점에서 구급차로 가장 가까운 병원까지 이송되는 시간은 얼마나 걸릴까, 그 시간을 나는 잘 견딜 수 있을까를 상상했다.
4. 그러다가 2016년 12월 31일 저녁 5시 45분. 이번에는 아름다운 제주도에서, 내가 정말 좋아하는 ‘지음’과 이야기를 나누며 가다가, 또 한번 크리티컬한 순간이 온 것이다.
아, 이번엔 진짜 죽을 것 같다.
호흡이 잦아들어가서 15분 후,
정확히 6시가 되면 모든 것이 끝날 것 같다.
응급실에 좀 데려가 달라고 친구에 부탁하고는 창문을 바라보며 눈물을 주욱 흘렸다. 감상적인 마음에 그런 생각을 했다. 더도말고 나에게 딱 하루만 더 있으면 좋겠다. ‘내일’이 정말 궁금하다고.
5. 그러나 이 드라마는 화끈한 결말을 이루지 못하고 기승전-에서 질질 끌었다. 응급실에서 여러가지 조사를 받았지만 아무래도 그 응급실을 찾은 환자들 중에 내가 가장 운이 좋은 사람인 듯했다. 아무것도 발견되지 않았으니 말이다. 나는 좋아해야할지 말아야할지 아리쏭했다. 비극의 확정선고가 아니었기에 희미하게 기쁜 한편, 여전히 나의 증상의 원인에 대해서는 미지수로 남아있었기 때문에 알 수 없는 것에 대한 두려움으로 마음은 잠식당하고 있었다. 내 머리 속에서는 이미 이 무능한 병원에서는 찾을 수 없는 희귀 심장병인 시나리오로 이야기를 그려가고 있었다. 담당레지던트가 “이런 증상으로 세상 어디에도 죽은 사람이 없어요”라고 상황에 과잉 몰입한 환자를 정신들게 해보려 했지만, 나는 그가 세상의 각종 사례들을 충분히 공부하지 않았을 뿐일 것이라 판단하며, 마침 서른을 앞둔 나는 새로운 드라마에 ‘아홉수의 저주’라는 타이틀까지 달았다.
6. 병원을 나오고 며칠간 제주도에서 내가 가장 사랑하는 동네 중 하나인 대평리/화순/대정 일대에서 머무르며 시간을 보냈다. 인생의 마지막 순간이 될 수도 있으니까 끝을 준비하기엔 이 곳이 좋겠다 생각했다. 박수기정의 일몰을 보면서, 산방산에 걸린 구름을 바라보며 감동을 받고 마음에 기쁨의 물결이 찰랑거리다가도 가슴압박을 느끼며 호흡에 불편을 느끼는 나날이 지속되었다. 아무도 내 속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 수 없을 일이었다. 내 불안은 차치하고 죽진 않는다고 하니까 호들갑 떨고 싶지 않았다. 카페에 앉아있다가 호흡곤란이 오고 죽을 것 같은 불안이 밀려와 눈물이 그렁그렁거려도 내 얼굴을 제대로 들여다보지 않는한 이상을 느낄 순 없었다. 불안 만큼이나 응급실 갔는데 '이런걸로 안죽어요!'하고 민망스러움을 겪는 것도 싫었다.
7. 그러던 중 페이스북에 올린 나의 신파적 글을 보고 비슷한 증상을 겪은 적이 있는 지인들이 각자의 경험담을 공유하며 나를 안심시켰다. 아마도 공황장애일 것이라고 진단내려주었다. 모 대학병원의 가정의학과 교수님 되시는 우리 율쌤도 전화를 통해서 차근차근 내 이야기를 들어주시고 다정하면서도 명확한 목소리로 확신시켜주셨다.
응 예지야 그건 공황장애야. (그걸로) 절대로 죽지 않아.
8. 죽지 않을 것이라는 확언을 한번 더 들으면서 안도를 내쉬면서도 내 뇌는 100퍼센트 납득하고 있지 못했다. 공황장애? 무슨 연예인들이나 정치인들의 꾀병 아니었나?
9. 아는 것이 그 정도의 편견 뿐이었기에 당혹감은 말할 수 없었다. 나는 이미 구글과 네이버를 통해서 심장 관련된 여러가지 희귀병에 대해서 조사를 진행하고 있었고, 역시나 MRI를 찍어봐야겠다고 생각을 하고 있었다. 고향에 돌아와 옆 도시 진주의 모 대학병원의 정신과를 찾아서 공황장애란 판정을 받고도 어딘가 찜찜했다. 뭔가 첨단의 기계나 진단 툴을 사용할 것이라는 내 예상과 다르게 내 증상들을 주욱 듣고는 판단내려주는게 다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여전히 희귀병 시나리오를 버릴 수가 없었다. 물론 아니길 바라면서도. 거기다가 내가 공황장애가 있다는 고백을 할 때마다 측은한 눈빛으로 “무슨 힘든 일이 있었어요?”라고 물어봐주곤 했는데 대부분의 인생에서 겪는 보통 수준의 업앤다운 빼고는 크게 충격적으로 힘든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거기다가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한 연말은 그 해에서 가장 편안했던 순간이었으니까.
10. 약을 처방받고 고향집에서 다시 생활을 시작했다. 약을 복용하기 시작한 첫 주에는 점심이 되면 너무 졸려서 낮잠을 청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확실히 증상은 제어되기 시작했다. 약이 듣는 걸 보니 공황장애가 맞긴 한가봉가, 생각하기 시작했다. 아직 한켠에 남아있는 의구심과 더불어 더 잘 알고 대처하기 위해 공황장애에 관한 자료를 마구 찾고 읽었다. 그러면서 스스로 공황장애에 대해 가지고 있던 편견들을 정리할 수 있었고, 점차 내가 진짜 죽는 병이 아니라 공황장애라는 것을 인지하게 되었다. 아래의 사항들은 공황장애를 겪고 있는 사람들 뿐만 아니라 환자를 곁에 둔 가족, 친구, 동료, 지인으로서도 알아두면 좋다.
11. 첫 번째, 공황장애가 꼭 정신적으로 충격적이고 슬픈일을 겪지 않아도 일어날 수 있다. 오마이뉴스 기사에서 남궁기 신촌세브란스병원 정신과 교수는 "공황장애는 우리 뇌 속의 위험경보장치로 작용하는 부위가 병적으로 예민해져서 발생하는 신체적 질병"이라며 공황장애의 원인이 생물학적인 인과라고 지적한다. 평온한 나날 중에 있었지만 그냥 내 뇌의 경보장치가 고장이 나서 온몸에 최고수위의 사이렌을 울린 것이었다. 어떤 연구결과는 혈액 속 CO2 수준에 대한 신체의 대응을 지적하기도 하고, 어떤 연구는 특정 호르몬을 지적하기도 한다.
12. 두번째, 공황장애는 광장공포증을 꼭 수반하지 않는다. 공황장애 이야기를 하면 사람들 많은 곳에 가거나 버스를 타거나 하면 힘들겠다고 말하는데 나는 그런 적은 없었다. 공황장애를 받아들이기 전 희귀심장병 시나리오를 굳게 믿고 있을 때 버스를 타고 도심을 벗어나거나 비행기를 타게 되면 응급처치가 힘들어지니 그런 이유에서 심리적으로 극도의 불안을 느끼긴 했다. 다만 광장공포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3분의 2가 공황장애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있는데, 이는 공황발작이 최초로 발생한 장소가 어디였는가에 따라 영향을 크게 받기도 한다. 사람들이 많은 공간에서 처음 공황발작을 경험한 광장공포증 환자들은 집에서 처음 공황발작이 발생했던 환자들보다 현저히 더 많이 공황장애를 수반하는 광장공포증을 앓는다고 한다. 나는 집에서 공황발작이 처음 왔고, 다행히 ‘숨이 안쉬어져!!’하고 쪼르르 달려갈 수 있는 부모님이 함께 계셨기 때문에 그나마 다행이었는데, 만약 첫 공황발작이 상황을 통제하기 힘든 사람들이 많은 도심속 한 공간이었다면 나의 불안은 광장공포증으로까지 발전했을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든다.
13. 셋째, 대부분이 공황장애 이전에 범불안장애를 경험하였고, 감정의 상태가 신체의 상태에 영향을 끼칠 만큼 감정기복이 많은 사람들의 경우가 많다고는 한다만, 공황장애를 가지고 있다고 우울증이 있는건 아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원인이 순전히 신체적인 이유일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그렇다해도 조기에 진료하지 않고 만성화된 환자의 경우 약 50퍼센트가 우울증을 동반한다고 알려져있다. 나도 처음 죽는 병이 아니라 공황장애라는 사실을 믿게 되면서 감사하는 마음이 들었다가도, 한 6-7개월 째쯤에는 배가 불렸는지 그 마음도 어디로 사라지고 우울함이 치고 올라오기도 했다. 역시 내가 나약해서 공황장애가 발생한건가, 하는 의구심과 함께.
14. 넷째로, 1회성이 아니라 반복적인 공황장애는 그 수가 적어지지만, 1, 2회의 단발성 공황발작을 겪는 사람들이 아주 많다는 것이다. 10명 중에 3명은 겪는다고 함! 페이스북을 통해서 상황을 오픈했을 때 지인들이 비슷한 경험을 나눠주고 격려해준 것이 참 많은 힘이 되었다. 다시 한번 감사드린다 :)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공황장애가 궁금하신 분들, 저같이 처음 경험하고 당혹하신 분들께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공황장애 1주년을 기념하면서 이 글을 쓴 지금 저는 공황장애에서 거의 완치되었습니다. 조기에 병세를 치료하게 되어서 잃은 것보다 얻은 게 많았다고 생각합니다.
그 중에는 일단 공황장애를 겪은, 겪고 있는 다른 ‘동료환자’(?)들에 대한 공감능력이 상승한 것이 있겠지요. 특히 별 의미를 두지 않고 지나갔던 몇몇 연예인들의 공황장애 기사는 이제 남다르게 다가옵니다. '당신도 참 고생이 많다- '그렇게 혼잣말로 위로의 말이라도 내뱉어보고요. 아마 직접 겪지 않으면 공감하기가 힘들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저도 그러했구요.
그 외에도 공황장애를 통해 무엇을 얻게 되었는지, 공황장애 1년동안 제가 어떻게 반응/대응해왔는지, 공황장애를 통해 제가 어떻게 달라지고, 또는 그럼에도 달라지지 않았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보려고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