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스무 살을 정의하자면 극단의 자기혐오였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올라오는 틱 증상에 행복이 뭔지 알 겨를도 없었다. 놀라운 건 내가 미워하는 게 나뿐만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스스로를 사랑할 수 없는 이는 다른 사람도 사랑할 수 없다고 했던가. 나는 어느새 그 누구도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남자 친구도 남들이 있으니까. 으레 그래야 할 것 같으니 만들었다. 그 당시는 사랑이라 생각했으나 그건 결코 사랑이 아니었다.
나는 거의 매일을 울고, 술을 마시고, 술 마시면 더 울며 하루하루를 무겁게 살아냈다. 그 당시 남자 친구는 그런 나를 치유해주겠노라 상담센터에도 데려갔지만 그때의 난 무엇도 온전히 받아들일 그릇이 없었다. 지금 생각하면 우습지만 억지로 밝은 척, 멀쩡한 척하며 상담을 끊어버렸다.
아까운 내 이십 대 초반은 대부분 그렇게 흘러갔다. 그 시간에 전공 공부나 더 열심히 할 걸 그랬다. 그럼 지금쯤 베스트셀러 작가는 아니어도 교보 문고 한편에 내 책 한 권쯤은 꽂혀 있지 않았을까. 쩝. 두고두고 참으로 아까울 일이다.
정신과에 처음 가게 된 건 스물둘셋쯤 되었던 것 같다. 누군가의 손에 이끌려 가게 되었는데 처음엔 겁이 좀 났다. 내가 나의 증상을 병이라고 인정해야 하는 순간이 두려웠다. 그저 습관일 거라고 억지로 믿었는데, 현실을 자각해야 하는 순간을 맞닥뜨리고 싶지 않았다.
나는 그날, 우울증과 강박증, 틱 장애를 진단받았다.
하나도 버거운데 둘셋씩이나! 속으로 외쳤지만 사실 전혀 예상 못한 일은 아니었다. 우울증이 어떤 것인지, 끊임없이 원치 않는 생각이 맴을 도는 강박사고는 또 뭔지 나는 이미 잘 알고 있었으니까.
내가 이끌려 온 이 정신과가 어린아이에게 물려준 사탕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울고 있는 어린아이는 사탕을 물면 잠시 그 울음을 그칠 것이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사탕에만 의지할 수는 없다. 그건 어느 순간 아이의 이를 아프게 하는 충치로 둔갑해 돌아올 테니까. 나는 사탕만 찾다 이가 죄 썩은 어린아이와 다를 바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