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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하 Oct 09. 2021

방황하는 길치를 보신다면 면접 장소로 데려다주세요

가감 없이 솔직한 초보 선생님의 좌충우돌 수업 적응기 #02

사실을 하나 고백하건대, 나는 심각한 길치다. 중학생 때는 충무로역 안에서 집에 돌아오는 3호선 라인을 찾지 못할 정도였으니 말 다했다. 나는 길치가 된 원인을 어릴 때 많이 못 돌아다니게 해서라고 꾸준히 주장하고 있으나 지금까지도 씨알도 안 먹히고 있다.


어찌 됐든, 나의 길치 성질은 면접 때에 특히 그 빛을 발하는데 초행길은 절대 내 발로 찾아가지를 못한다. 회사 중 [00역 몇 번 출구로 나와서 어디를 지나와 주세요^^]라고 친절히 안내해 주는 경우는 그나마 다행이다. 보통의 회사들은 지번을 남겨놓거나 친절을 베푼다고 지도 하나를 첨부해주는데 다른 사람이라면 이 정도의 친절에 만족하겠지만 나는 사정이 다르다. 지도를 볼 줄 모르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기 때문이다.


 그 이유로 내 면접 때마다 덩달아 바빠지는 사람이 하나 있었으니, 바로 남자 친구다. 길치의 남자 친구가 된 것이 죄요, 하는 마음으로 전화를 붙들고 인간 내비게이션이 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이 공간을 빌어 그에게 심심한 감사를 전한다.


그런데 이번에 면접을 보게 된 모 유명 브랜드의 독서논술 학원은 인간 내비게이션의 도움조차도 소용이 없을 만큼 길이 복잡했다. 지금에야 눈 감고도 찾아갈 익숙한 길이지만 초행길로는 영 고난도였던 것이다.


전화통을 꽤 오래 붙들고 있어야 했던 인간 내비게이션은 답답해하고, 그 지시대로 움직이던 나는 이해를 하지 못해 뚝딱거리고, 하여튼 환장의 하모니가 펼쳐지고 있었다. 면접의 당락 걱정은 이미 머릿속에서 잊힌 지 오래다. 어떻게 하면 제시간에 갈 수 있을까 하는 생각만이 온 머리를 지배하는 순간인 것이다.


이럴 때면 그만 아찔해지고 만다. 면접은 시간 약속을 지키는 일도 무척 중요하기 때문이다. 늑장을 부리다 늦게 나온 것도 아니고, 심지어 면접 시간보다 훨씬 이르게 나왔는데 지각이라면 억울해 돌아가실 일이었다.


학원은 아파트 단지 내의 상가에 있었는데 아, 이놈의 고급 아파트는 넓기는 또 얼마나 넓은지. 이 길이 저 길 같고 저 길이 이 길 같아 통 헷갈리기만 했다.


답답함에 열이 오른 인간 내비게이션은 슬슬 고장 날 기미를 보였다. 아, 더 이상 이 내비게이션을 이용하다가는 나의 연애전선에도 큰 문제가 생기겠구나.


어찌할 바를 몰라 낙심하던 그때, 로드뷰로 미리 본 익숙한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그 순간 눈앞이 환해지며 십 년은 묵은 마냥 답답했던 속이 훅 내려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다시 보니 고급 아파트도 괜히 고급 아파트가 아니었다. 디자인은 어찌나 고급스럽고 경치와 잘 어울리는지. 이제야 주변 환경이 눈에 들어오는 여유가 생긴 것이다.


길치는 달리 길치가 아니라서 벌써부터 집으로 돌아갈 걱정이 솟기도 했지만 그때만큼은 에라 모르겠다, 마인드였다. 실제로 면접 후 길을 크게 헤매 역 하나를 더 걸어갔다는 건 비밀.


면접을 보러 가는 길 자체가 내겐 면접이다. 첫 번째 면접을, 나는 간신히 통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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