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은 멈췄지만, 나는 자라나고 있었다

by 고니비니SN

육아에 전념하며 스킨, 로션조차 멀리했던 내가 다시 화장대 앞에 앉았다. 주말 오전 9시부터 2시까지, 동네 커피숍 아르바이트를 위해 오랜만에 기초화장에 이어 색조 화장을 했다. 낯선 거울 속 얼굴이, 조금은 예뻐 보였다. 미소를 머금은 채 남편과 딸의 배움을 받으며 현관문을 나섰다.



걸어서 15분 거리, 작은 커피숍은 이미 동네 사람들에게 가성비 좋은 맛집으로 소문난 곳이었다. 사장님은 프랜차이즈가 아닌 커피숍을 두 곳 운영 중이었고, 나는 그중 2호점으로 출근했다. 언제나 근무 시간보다 일찍 도착해 커피 향과 온몸으로 인사했다. 사장님의 밝은 인사는 매번 나를 웃게 했다. 앞치마를 두르고 노트와 펜을 든 내게 사장님은 놀라며 웃으셨다.

“세나 씨, 노트까지 가져왔어요? 열정이 대단한데요.”

주말만 일하다 보니 익숙해지기까지 시간이 걸릴 거라며, 더구나 여름 주말엔 손님이 많을 거라고 덧붙이셨다.


커피 기계 사용법부터 레시피, 포스기 사용, 손님 응대까지 하나하나 배워나갔다. 학원에서 배운 내용이 실전에 녹아들기 시작하니 재미도 붙었다. 내가 스스로 만든 커피를 들고 행복해하는 손님들의 얼굴이 내 마음마저 따뜻하게 데웠다.



하지만 오픈과 동시에 줄이 길게 늘어서는 주말엔 여전히 정신이 없었다. 초보인 나는 실수를 연발했고, 사장님과의 호흡도 잘 맞지 않았다. 멘붕 상태에 빠진 나에게 사장님은 단 한 번도 소리치지 않고 말했다.

“천천히 해요. 처음은 다 그래요. 잘 해낼 거예요.”

그 말에 힘을 얻어, 더 잘하고 싶었다. 사장님의 손을 덜어주고 싶었다.


그렇게 매 주말, 남편은 독박 육아에 들어갔다. 아이와 둘만의 시간을 사진으로 남겼다. 남편이 보내온 사진을 보며 눈물 나게 고마웠다. 커피숍에서의 5시간은 나에게도 작은 쉼이었다. 아이와 전쟁 같던 평일 속에서, 어른들과 함께 일하며, 내가 돈을 벌 수 있다는 사실에 마음이 뿌듯했다.


일을 시작한 지 6개월이 지났다. 일이 손에 익어갈 무렵, 사장님은 내년에 아이가 유치원에 가면 1호점 매니저를 맡아 달라 제안하셨다. 주말 알바에서 더 배우려 노력하는 내 모습을 예쁘게 봐주신 것이었다. 커피숍을 열고 싶다는 꿈이 있었기에, 그 제안은 가슴 벅찼다.



그러던 어느 날, 양말 인형 공예 수업을 듣던 중 걸려 온 전화.

평일 아르바이트생이 다쳐, 목금 이틀만 대신해 줄 수 있냐는 부탁이었다. 친정엄마의 도움이 필요했다. 전화를 끊자마자 엄마에게 연락했다. 외벌이에 아파트 대출까지 안고 있는 나에게 엄마는 아이 걱정은 하지 말고, 한 푼이라도 더 벌라고 하셨다. 그렇게 목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커피숍에 나가서 일했다. 고되긴 했지만 괜찮았다. 그런데 토요일 저녁, 다리가 저리기 시작했다. 남편은 말없이 내 다리를 주무르며 “무리하지 마!”라고 말했다. 그의 손길 덕에 일요일까지 무사히 버텼다.



그러나 월요일 아침, 통증은 더 심해졌다. 아이 손을 잡고 버스를 타고 병원으로 향했다. 결국 친정엄마가 병원으로 와 아이를 데려갔다. 여러 검사를 거친 끝에 들은 진단은 ‘허리 디스크’였다. 나는 믿을 수 없었다. 아직 서른 중반, 아이 하나 키우는 평범한 내게 허리디스크라는 병명은 생소했다.

그날, 허리에 신경 주사를 맞고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눈물이 났다. 이제야 자신감이 생겼는데, 다시 건강이 나를 막아섰다. 다리의 저림은 허리로 퍼졌고, 며칠 동안은 제대로 움직일 수도 없었다. 네 살 아이에게 엄마의 통증을 설명하기란 어려웠다. 결국 다니던 주말 알바를 그만두어야 했다.


또다시 친정엄마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육아 독립을 외치며 이사까지 했던 내 다짐은 그렇게 무너졌다. 예전보다 이사한 집이 1시간 더 먼 곳이었기에, 엄마는 지하철과 버스를 갈아타며 아이와 나를 돌보러 오셨다. 매번 손에 반찬과 생필품이 담긴 가방을 들고, 손녀를 반기는 엄마의 얼굴에는 피곤함보다 따뜻함이 먼저 보였다. 엄마는 내가 무너지지 않도록,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그 먼 길을 마다하지 않으셨다.



6개월의 커피숍 아르바이트와 허리디스크를 통해 나는 나를 돌보는 법을 배웠고, 커피 한 잔이 사람을 얼마나 행복하게 할 수 있는지도 배웠다. 주말의 작은 일자리로 삶에 대한 열정과 용기를 가질 수 있었다. 그리고 허리 통증은 삶의 속도를 다시 생각하게 했다.



세상을 향한 나의 작은 용기가 불러온 날갯짓은 지금은 멈춰 있지만,

나는 다시 일어날 것이다. 나의 속도로 천천히 그리고 단단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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