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국회의원에 의해 ‘비리 유치원 명단’이 공개되면서 한국유치원총연합회와 교육부, 지역 교육청 사이에 갈등이 고조되었다. 그 여파로 한유총 소속 일부 유치원들이 개학을 연기하겠다고 선언했을 때 우리는 신도시로 이사한 직후였다. 어린이집조차 대기 상태로 입학하지 못했기에 유치원은 반드시 보내야 했다.
게다가 나는 허리디스크로 아이를 오래 돌볼 수 있는 체력이 점점 바닥나고 있었다. 아이를 첫 사회로 내보내는 입장에서 그저 막막하고 두려웠다. 사립과 공립 유치원에 원서를 넣고 답을 기다리던 어느 날, 사립유치원 한 곳에서 전화가 왔다. 반가운 마음도 잠시, 선생님은 입학 대기 등록을 위해 ‘계약금’으로 오만 원을 선입금해야 한다고 하셨다. 순간, 유치원 입학에도 계약금이 필요한 현실에 허탈했지만, 오만 원으로 불안을 줄일 수 있다면 아깝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입학하지 않으면 환급된다는 말에 마음이 조금 놓였다.
그럼에도 내심 공립 유치원에 합격하길 바랐다. 저녁, 평소처럼 식사를 마치고 설거지를 하려던 찰나, 남편의 목소리가 들렸다.
“자기야, 합격이야. 공립 유치원에 당첨됐어.”
그 말을 듣는 순간, 고무장갑을 벗어던지고 컴퓨터 앞으로 달려갔다. 화면에 선명히 떠 있는 ‘당첨’이라는 두 글자에, 그동안 마음속을 짓누르던 걱정과 불안이 도미노처럼 무너져 내렸다.
안도의 한숨을 내쉰 것도 잠시, 나는 다시 ‘기저귀 떼기’라는 현실에 몰입했다. 유치원은 대소변을 스스로 해결할 수 있어야 한다는 주위 엄마들의 조언이 귓가에 맴돌았다.
“빈아, 소변 하고 싶으면 기저귀에 하지 말고 엄마한테 먼저 말해줘야 해. 유치원에 가면 화장실에서 해야 하거든. 그래서 지금부터 우리 연습하는 거야. 알겠지?”
“응”
아이는 대답과 달리 행동의 변화가 없었다. 소변을 기저귀에 누고 나서야 통보하듯 이야기하는 아이와 나의 전쟁은 한동안 계속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줄다리기 끝에 아이는 드디어 유아 변기에 소변을 보았다. 놀라움과 뿌듯함이 섞인 얼굴로 소변을 들여다보던 아이를 와락 안아주며 칭찬을 퍼부었다. 첫 관문을 넘긴 순간이었다. 하지만 대변은 소변보다 훨씬 더 힘들었다. 결국 입학 전까지 떼지 못한 채 유치원에 입학했다.
입학식 날, 나와 여동생 부부, 엄마까지 총출동했다. 품 안에 품고 살아온 삼 년의 시간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한편으로는 자유시간이 생긴다는 기쁨에 미소가 지어졌다. 강당에 앉아 원장 선생님의 말씀을 듣는 동안, 어느새 이렇게 커버린 아이를 보며 울컥하는 감정이 밀려왔다. 입학식이 끝나고, 아이는 혼자 계단을 내려가 반으로 향했다. 뒷모습을 보며 마음 한편이 아려왔다. 아이를 품에 안고 있을 때 조금만 더 다정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밀려들었다.
하루하루가 고되고 정신없던 시간이 이제는 추억이 되었다. 하루가 빨리 지나가길 기도했던 순간들이 이제야 아쉽기만 하다. 입학식을 마친 아이는 아빠가 준비한 인형 꽃다발을 들고 할머니, 이모, 이모부와 함께 맛있는 점심을 먹고 카페에서 신나게 뛰어놀았다.
그토록 기다렸던 유치원 입학, 막상 그날이 오자 믿기지 않았다. 하루 종일 껌딱지처럼 붙어있던 아이가 내일은 곁에 없다는 사실이 낯설었다. ‘있을 때 잘하라 ‘라는 말이 이제야 조금은 가슴에 와닿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