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편하게, 엄마도 아이도 편하게,-마흔의 대충대충 육아
선생님이 친절하게 가르쳐주셔서 더 잘 이해할 수 있었어요.
교원평가 서술형을 읽다가 생각이 잠깐 여행을 떠났다.
'다 네 덕분이야.'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분명 아이가 실수를 했을 것이다. 쌀통의 쌀을 퍼 거실에 뿌렸거나, 장난감을 다 꺼냈거나 아무튼 하지 말라는 짓을 했을 것이다. 쓰다 보니 아이라서 할 수 있을 법한 일인데, 별일 아니라고 생각하고 주의를 주고 치우면 됐을 일일 텐데, 그때의 나는 무척 화를 내며 소리 질렀다. 그때의 나는 무척 예민했고 피곤했고 조금 우울했으므로 아이의 반복되는 장난과 모험을 받아줄 여유가 없었다.
잠시 정신줄을 잃은 나는 소리를 지르며 너 때문에 내가 힘들어 죽겠다며, 나한테 왜 이러냐며 아이 엉덩이를 때렸다. 지르는 소리에 내가 취해 더 감정은 격앙되어 화를 주체하지 못했다. 가슴속 소리를 다 지르고서야 눈 앞에 벌벌 떠는 아이가 보였다. 미친년..
아이는 잔뜩 주눅 든 표정과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엄마, 지금 나 가르쳐주는 거예요? 혼내는 거예요? 엄마가 너무 소리 지르면 무서워서 나는 배우지 못해요."
벌벌 떨리는 목소리로 아이는 용기를 쥐어짜내 말했다. 기어들어가는 목소리였지만 그 말은 내 마음에 들어와 쪼그라든 심장을 둥둥 울렸다. 아이를 안았다.
"엄마가 너무 힘들어서 작은 실수에 소리를 질렀네, 앞으로 힘들다고 소리 지르지 않을게, 화내지 않고 잘 알려줄게."
아이는 담대하게 나를 금방 용서하고 다시 즐거워졌다.
그 후 나는 부족하거나 못 알아들어 자주 실수하는 학생들에게 쉽게 화내지 않는다. 무서우면 배우지 못하는 아이가 있기 때문이다. 잘 모르는 걸 가르쳐 주는 일이 내 업인데 아이를 키우면서 비로소 제대로 된 교사가 된 기분이 든다. 예전에 뿌리 깊게 나를 지배하고 있었던 예민함과 까칠함이 아이의 한 마디로 조금씩 사라졌다. 치유된 느낌이 든다.
아이를 키우면서 마음이 편해야 더 잘 배울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자
나는 조금 느슨해졌다.
이 시기가 적기니까 그 연령에 맞는 배움을 가르치려는 강박에서 벗어난 것은
어떤 의도가 있다기 보다,
내 체력의 문제가 가장 컸다.
체력이 떨어지면 내가 굉장히 못된 엄마가 된다는 걸
너무나 잘 알기 때문이다.
알면서도 제어 안 되는 감정의 밑바닥은 체력이 되어야 웃으면서 숨길 수 있다.
남편이 항해 중이고, 내가 출근해야 할 시즌이면
하루 종일 어린이집에 있던 아이에게
어떻게든 뭔가를 가르치려고 하는 대신 (뭔가 가르치려고 해봤다, 하지만 강제성을 워낙 싫어하는 아이와 나는 싸우기일 쑤기에 평화를 선택했다. 이 것이 내 변명이라 할지라도 난 저녁에는 좀 아이도 나도 편하게 쉬고 싶다.)
서로 편하게 널부러져서
내 에너지가 허락하는 선에서 노닥거리는 대충의 육아법을 터득해냈다.
그 육아법에는 엄마의 죄책감도, 애씀도 없었다.
에너지가 허락하는 선에서
아이를 관찰하고 있다가 같이 그 행동에 동참하며 박수쳐주면 될 일이었다.
초반에 천 기저기 쓰고, 엄마표를 열불나게 해대던 나는
내 나름의 육아법을 찾아나가고 있는 중이다.
그러다 아하, 하는 깨달음을 얻을 즈음엔 아들이 다 커서
내게 손자를 안겨다주지 않을까.
그 때 잔소리나 하는 할머니는 되지 말아야겠단 다짐을 하는 해본다.
나답게 육아는 대충대충이지만 기본 습관은 확실하게!
아이에게 배우면서 진행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