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에 승선한 남편은 아마도 11월 말이 되어야 집으로 돌아올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아들들은 아빠가 우리 보고 싶지도 않은가, 정말 집에 안오네, 라고 투덜거린다. 친구들은 남편 없이 힘들겠네, 한다. 동료들은 매번 조퇴와 지참을 달고 한달에 한 번 아이들 데리고 남편 얼굴 보러 갔다 아이들 어린이집 보내고 정신없이 출근하는 나에게 고생이네요, 한다. 그리고 또 많은 사람들이 남편에 대한 그리움을 어떻게 참고 지내냐고 묻는다.
-아이고, 아들 둘 끼고 살고 있으니 남편 보고 싶은 생각도 안들어요. 오히려 재울 때 전화오면 귀찮다니까요. 남편 있으면 편해지지만 뭐 남편도 일하느라 고생이니까....
라고 애둘러 말하곤 한다. 그러다보니 정말 나는 몇 달이 지나도록 남편 보고 싶은지 모르고 살고 있다. 정말 나에게 절실한 것은 좀 쉬고 싶고 자고 싶다는 생각 뿐. 아이들에게 화 내지 않고 사랑으로 키우고 싶다는 생각 뿐. 그냥 하루하루 무던히 보내기 벅차다. 내 한몸 살아가기도 벅찬데 아이들이 매달려있으니, 또 좀 따뜻하고 바르게 키우고 싶어 애쓰다보니 힘이 달린다. 남편의 빈자리까지 채우려다보니 내 체력의 한계보다 무리하기 일수이다. 그런 나에게 남편이 보고싶냐니. 보고 싶은가? 그리운가?
남편의 헌신이 조금 그립기도하고 지친 감정 노동의 끝에 툴툴대며 스트레스 풀 상대도 필요한데...남편이 옆에 있을 때도 좀 허전하긴 했다.
그러다 가만 생각해보니, 나의 진심은 이렇더라.
남편이 안 보고 싶은 것이 아니라 안 보고 싶다고 생각하며 체면을 걸고 있다. 남편이 너무 보고 싶고 그리워지면 나는 이 지척의 떨어져 있는 시간을 견디지 못하리라. 내가 너무 남편을 그리워하면 아이들은 똑같이 아빠를 그리워하고 많이 기다리기만 할까봐 일부러 담대한 척하고 있는 것이더라. 아빠는 아빠의 일에 최선을 다하고, 엄마는 엄마의 일에 최선을 다하고, 너희는 너희의 일에 최선을 다하고. 그렇게 매 순간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다가 아빠 만나면 사랑을 많이, 아주 많이, 참았던 만큼 표현해주자고 말한다.
우리가 만나러 간 날,탱크가 터져서 기름이 흘렀던 적이 있었다. 남편 일과 중에 잠깐 만나는 그 얼마의 시간을 남편은 동료들과 기름을 닦느라 새벽녘에 잠깐 들어왔다 나갔다. 아이들은 배에 와서도 아빠를 기다리다 지쳐 잠들었고, 그래도 아침에 잠깐 아빠 얼굴 봤다고 좋아했다. 남편의 작업복에 묻은 기름 때. 머리카락에 배인 기름 내에 더이상 참을 수 없이 인내의 끈이 툭, 끊겼었다.
참았던 눈물이 왈칵 쏟아졌지만 먹고 살기 위해 이럴 수밖에 없다고는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그러면 너무 우리의 이별이 슬프니까, 우리의 꿈이 있으니까 감당해내야 하는 무게라고 생각하기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