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학기 동안 고생했습니다.

by 다다리딩

국어 부장이 나의 수업꾸러미를 같이 들어주며 넌지시 말했다.


'샘 이번에 저 성적이 많이 떨어졌어요. 실망하셨죠?'


아이는 입술을 잘근잘끈 깨물었다. 아마도 아니라는 말을 듣고 싶었을 것이다.


'평가해야 하니까 시험 보는거고, 등급을 가려야 하니까 문제를 좀 어렵게 내야하는건데 그 결과가 어떻다고 해서 내가 실망하진 않아. 아마 너는 스스로에게 실망한 것이겠지. 하지만 네가 수업시간 내내 보여준 모습은 나에게 정말 큰 힘이 되었다고 말하면 네가 믿어줄까? 진심이야. 문학이 졸리기도 할 법한데 재밌다고 말하고, 윤동주 시에 감동 받았다고 말하고, 청산 별곡의 상징성에 대해 알면 알수록 놀랍다고 말하는 학생을 만난 다는 게 국어 교사에게 얼마나 큰 복인데.'


아이는 조금 위로를 받았는지 슬쩍 멋적은 웃음을 보냈다. 우리는 둘 다 말 없이 소란스런 복도를 지나 교실로 들어섰다. 종소리가 울린 후로도 한참 아이들은 소란스러웠다. 그리고 나는 시험 후 지치고 스스로에게 실망했을 아이들에게 위로가 되기 위해 작은 선물을 준비했다. 윤동주 시인의 자필 원고가 프린트 된 엽서와, 시구가 쓰인 연필, 시 구절 스티커. 그리고 나의 진심이 담긴 쪽지. 누군가는 그냥 버리고, 누군가는 쇼하네하고 넘기겠지만 누군가에게는 정말 위로가 되길 바라며 적었다.





두 번의 시험이 끝나고, 네 번의 수행 평가도 끝났습니다. 이 시험을 치르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공부했을 텐데 기대만큼 점수가 나오지 않은 학생들이 많을 것입니다.


알고 있어요, 이번 시험이 많이 어려웠죠? 하지만 시험과 점수는 매겨야하는 거니까 치르는 것이고, 그런 제도권에 살고 있으니 우리는 그렇게 한 것입니다. 그 결과에 따라 선생님이 여러분에게 실망하거나 그러진 않습니다. 왜냐하면 한 학기 동안 문학을 배우며 여러분이 보여준 태도는 나에게 그 어떤 평가의 결과보다 감동이었기 때문입니다. 무더운 여름날, 졸린 오후 수업에도 졸음을 참아가며 수업을 들었던 여러분의 모습도, 수행평가에 해당하지 않지만 말하기도 중요하니 3분 말하기를 하자고 했을 때도 재밌겠다고 응해준 모습도, 열심히 준비한 공개수업에 아무도 오지 않았을 때도, 여러분은 오히려 제가 샘이 열심히 준비한 것이니 우리끼리 재밌게 수업하면 되죠, 라고 말해주었죠. 좋은 문장을 한 번 필사해보자고 했더니 이런 거 너무 좋아요, 라고 웃으며 응해주어서, 열심히 토론해주어서, 그 많은 필기도 짜증내지 않고 열심히 해주어서 너무 고마웠어요.


아, 긍정적인 태도로 열심히 하는 모습이 이렇게 귀하고 아름답구나라는 것을 여러분이 나에게 알려주었어요. 고맙게 생각합니다.


가끔 여러분이 문학이나 문법을 왜 배우는 건지 모르겠다고 할 때도 있었죠. 살아보니 말하고 쓰는 행위가 학교를 졸업한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많이 쓰이고 중요하더라구요. 말을 잘 전달하는 것과 나의 생각을 효과적이고 감동적으로 표현할 줄 아는 법은 정말 중요합니다. 평생.


2학기 때는 문법에 대해 배울 것이고, 3학년이 되면 화법과 작문을 배울 거에요. 그렇게 1년 남짓을 배우고 수능을 치르면 여러분은 이제 누군가 강제로 가르치는 수업은 더이상 듣지 않아도 됩니다. 하지만 살아갈수록 알게 될 거에요. 학교에서 배웠던 것들이 여러분의 자양분이 되었다는 것을.


평생을 공부하며 산 나도, 한번도 공부가 즐겁지 않았어요. 오히려 결과가 안 좋았을 때가 훨씬 많았지요. 배움이 즐겁지 않아도 배움은 꼭 필요한 것입니다. 남은 시간 우리 지금처럼 긍정적인 태도로 공부해봅시다. 더운 여름 방학 뜻깊게 보내고 추억도 많이 쌓고, 몸도 마음도 더 건강해져서 2학기 때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