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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다리딩 Sep 01. 2020

오늘 수업하지 말아요.

등교개학 첫 날

9월 1일 우리학교 3학년은 등교 수업을 실시합니다.


내 그럴 줄 알았다. 올해 고3은 정말 목숨 걸고 공부를 한다. 그리고 나도 목숨 걸고 일을 한다. 어디서 들었는지 마스크가 답답하다고 안쓰는 아이들은 '젊은 애들은 잘 안 걸린대요. 뭐 감기처럼 지나간다던데' 하며 턱에 마스크를 걸친다. 매 시간 실랑이를 하고 '학생부 가야겠냐, 경찰에 신고한다'하며 반 협박을 해야 마지못해 마스크를 올리는 녀석들이 한 두명 꼭 있다.


 1학기 내내 실랑이 하다, 더운 날씨에 숨이 코 밑까지 차서 나도 수업하다가 숨막혀 죽겠다 싶어 코밑에 마스크를 걸치고 수업을 했었다. 축축한 마스크에 기분 나쁜 침 냄새와 끈적한 땀으로 상의는 항상 젖어 있었다. 그런데 이제는 정말 무섭다. 의료파업까지 가세한 이 마당에 누가 무증상으로 여기 앉아 있을지도 모른다는 의심과 두려움이 매 순간 함께 한다. 그 피로도와 긴장감이 너무 싫다.


오늘도 무사히, 제발 모두 무사히.

'무사히'가 이렇게 간절한 말이었던가.


같이 수업을 하는 선생님이 오늘은 뭘 할거냐고 묻는다.

"수업해야죠, 애들 목숨 걸고 학교 나왔는데."


뜨악하는 표정의 동교과 선생님은,

"애들이 수업 안 하려고 할 텐데. 굳이 진도를 나가야 하나요? 애들이 싫어하는데, 저는 그냥 오늘 인사만 하고 자습할래요. 애들도 자습 좋아해요." 한다.


 나도 자습이 좋다.

내 시간이 정말 없어, 아이들 재우고야 꼴랑 나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고,  출퇴근 차 안에 혼자 있는 시간이 너무 좋아 실실 웃으며 운전하는 나도!!!! 자습하면 내 시간이 생기니까 너무너무 좋다. 그렇지만 자습은 정말 찔린다. 내 의무를 다 하지 않는 것만 같고, 앉아 있는 아이들 중, 목소리가 작은 아이는 수업을 원하는 것만 같다. 무엇보다 내가 내 일을 안 하는 것 같은 뜨끔함이 있다. (특히나 우리학교는교육 여건이 그리 좋지 않고, 사교육을 받는 학생이 별로 없어 학교에서 듣는 수업에 충실하다)


결국 그 선생님은 '시험 문제만 낼 정도로만 진도 나가요.' 라고 말하고 수업을 들어간다.

'고 3이면 자습을 좋아한다, 2학기는 자습시간이 필요하니까 수업이 제대로 안 된다.'

 곧잘 그런 말들을 한다. 교사들도 학생들도, 학부모들도.

그렇다면 왜 뉴스에서 조차 "지금 우리들에게 마지막 희망은 마스크와 거리두기 입니다"라는 멘트를 듣고도

굳이 학교에 와서 자습을 하는 걸까. 상황이 이럴수록 이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학교에 나온 아이들에게 수업을 하고 싶다.


역시나 오늘 뭐하냐는 말에,

나는 "수업할거니까 책 꺼내자, 오늘은 특별히 10분 일찍 끝내줄게"라고 말한다.

당연하다는듯 책을 꺼내고 열심히인 반도 있고,

공부하기 싫어하는 아이들이 많은 반, 특히 그런 아이들이 목소리가 큰 반은 책이 없다는 둥, 개학 첫날 수업은 너무 한다는 둥 말이 많다. 기껏 자습을 줘도 공부 안 할 거면서 꼭 자습 달란다.


"너무해요~! 자습해요!!!"

"오예~ 자습하면 나는 좋지! 대박~ 일 안하고 돈 버는 건데? 땡큐지."

"그래요! 샘도 좋고 우리도 노니까 좋고!"

"그런데,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업할거야. 이 반에서 목소리가 작은 누군가는 가슴에 학교 수업만으로도 수능 잘보고 싶다, 열심히 끝까지 공부하고 싶다, 라는 마음으로 앉아 있을 수 있거든."

"그런 애 없어요!"

"아냐, 있어. 나도 그런 애였는걸? 매일 목소리 큰 애가 그렇게 말하면 그 애 말대로 되더라구. 그런데 난 좀 손해보는 느낌에 억울했거든. 소심해서 말 못했을 뿐. 이건 알아야해. 너희가 매 시간 수업 싫다고 말하면 어떤 선생님들은 아이들이 다 공부하기 싫어한다, 자습하고 싶어한다고 생각해. 그렇다면 결국 너희가 그런 태도를 가져서 수업을 안 하는 꼴이 되는데 억울하지 않아?"


"저...... 저는 수업하고 싶어요."

공부 열심히 하나 성적은 잘 나오지 않고, 늘 불안감 한 조각 달고 있는 예쁘고 안쓰러운 아이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맞아. 오늘 학교 왔는데 수업을 하나도 안했어. 이제 잠도 안 와."

작은 목소리 하나에 아이들은 책 안 가지고 왔다더니 사물함에서 책을 슬며시 꺼내 온다.


마스크는 답답하고 목은 아프고 숨은 찬다.

특별할 것 없는 문제풀이식 수업인데....

그래도 아이들의 반짝이는 눈빛이,

이 상황에서 얼굴보며 수업할 수 있음이,

온라인에서 느낄 수 없는 이 분위기가

가슴 저미게 고맙다.


애들아, 부디 무사히 우리 올해를 보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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