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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다리딩 Oct 25. 2020

너는 나의 꽃이다

나답게 그대를 사랑하는 일

남편이 지난 휴가 때 선물로 준 꽃이

이렇게 바짝 마르고서야,

남편의 승선이 끝나고 또다시 휴가를 맞아 집으로 돌아왔다.


코로나로 인해 한 달에 한 번의 만남도 없이

장장 6개월의 승선이 끝나고 집에 왔을 때,

아이들은 마스크를 한 아빠가 자신들의 아빠인지

무척 낯설어 했다.




"아빠 맞아요? 아닌 것 같은데.

아빠 아닌 것 같은데."


어린이집 앞에서 아빠를 보고 쭈뼛대는 아이들에게

일부러 내가 선수친다.


"아빠 맞잖아, 마스크 때문에 아빠 얼굴이 잘 안 보이는구나?"


나는 남편이 제일 못 견뎌하고, 두려워하는 상황이 어떤 것인 줄 잘 안다.


아이들이 아빠를 잊을까봐,

돈 벌어오는사람으로만 기억할까봐,

그렇게 자신의 존재가 우리 가정에서 미미한 소수점으로 남을까봐.


남편은 승선 중 전전긍긍할 때가 있다.




아이들은 사실,

남편이 승선한 지, 3개월이 지나자

아빠 얼굴이 잘 기억이 안 난다고

 자꾸만 사진을 보여달라고 했고

아빠 잊을까봐 겁이 난다고

자다가도 일어 났다.


"엄마, 밤에 꿈 꾸면 아빠 얼굴 잊어버릴까 겁이 나. 꿈 안 꿨으면 좋겠어."


3돌이 지난 둘째가 혀 짧은 소리로 이런 말을 했을 때,

나는 갑자기 커다란 무게의 그리움이 덜컥 찾아와

아이를 안았다. 아이의 둥그란 무게감이 두려움을 상쇄해 줄 것임을 알기에.


남편은 감당할 수 없는 그리움이 찾아오면 그는 어떻게 할까,

문득 궁금해지는 밤이 있었다.




6-7개월 승선하면 2달 휴가.

항해사의 루틴이다.


6개월의 기다림은 참으로 길었고,

2달의 휴가는 너무나 짦았다.


그리고 내일이면, 그는 다시 승선할 것이고

그가 다시 휴가를 맞아 집으로 돌아오면 내년 봄이 되어있을 것이다.

아이들은 한 살씩 더 나이를 먹고 키가 클 것이고,


봄이 오기 전 기나긴 겨울을

아빠를 잊지 않기 위해 잠들기 전,

사진을 꺼내보며

아빠와의 추억담을 꺼낼 것이다.


스리플렛에서 잊을 수 없는 추억 만들기



그가 출항하러 가기 전,

경기도민 행복프로젝트인

꽃다발과 코르사주 만들기를 신청했다


"스토리 없는 커플은 없다"
  그래, 그건 우리 이야기였다.


꽃다발을 만들고, 추억의 순간을 되새기며 간단한 인터뷰를 진행했다.


우리가 어떻게 만났는지,

어떤 데이트가 제일 기억에 남았는지,

상대방에게 가장 고마울 때가 언제였는지,


질문에 답하며 가만히 상대의 마음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맞아, 우린 이렇게 만났지.

그리고 당신이 내가 하고 싶다고 한 것들 다 지지한다고 이야기해서 고마웠어.


남편이,

아내가 너무 열심히 사니까, 아이들을 잘 키우고

헌신적으로 내조하니까 그녀의 꿈을 지지할 수밖에 없다고 말하는 순간

그가 결혼후 느낀다는 안정감이 어떤 것인지 알 수 있었다.


먼 곳을 항해하면서

집 걱정을 덜 하는 건, 그곳에 내가 있기 때문에.

내가 흔들리지 않고, 맡은 역할에 최선을 다할 것임을 알기에 느낀다는 안정감일 것이다.


나 역시 그런 안정감을 그로부터 느낀다.

그는 그의 일터에서 허튼 생각 안 하고, 건강하게 그의 생활을 일굴 것이다.



인터뷰의 마지막에, 진행자가 이렇게 물었다.

"마지막으로 상대방에게 바라는 것이 무엇인가요?"


"부디, 건강하게 돌아오라는 거요."


나는 이 한마디를 하려는 순간, 참았던 눈물이 터졌다.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목소리가 떨렸다.


나는 아직도 나의 마음을 잘 숨기지 못하는 마흔의 어른이다.




사람들은 가끔, 어떻게 남편이 항해하는 동안 아이들을 돌보며 일까지 하냐고 의아해했다.

버겨운 상황에 동동거리는 날이 있으면 (가령, 아이의 어린이집이 코로나로 휴원을 한다던가, 아이가 아픈데 업무상 연가를 못 쓴다거나 하면) 정말 힘들겠다고 위로의 눈빛을 보낸다.


그런데,

나는 어쩔 수 없이 이 사람을 선택했다.

다른 건 생각할 겨를 없이 그와 함께하고 싶었다.


이 사람을 선택하는 순간, 이 모든 기다림의 값도 선택했다.


나는 정말 잘 기다릴 자신이 있고,

우리 가족을 나름의 방법으로 사랑할 자신이 있다.


나는 특별나게 잘 하는 건 없지만

이렇게 묵묵하게 내값을 해내는 건 자신있다.


1등할 자신은 없지만,

꾸준히 해낼 자신은 있다.


나 나름대로의 이런 삶이

그를 사랑하는 방법이다.


내 나름대로의 사랑이 든든한 것은

내가 가장 잘하는 방법으로 마음을 전하기 때문일 것이다.


부디, 이번 항차도 그가 무사히 돌아오면 그것보다 다행스러운 일도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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