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다다리딩 Mar 29. 2016

TV 없이 하루 보내기

습관인 게야

아들이 잠들었다. 오예~ 쾌지를 부르며 안방으로 살금살금 들어가 텔레비전을 키고 침대에 누웠다.


 때마침 내가 아주 환장하는 CSI시리즈가 방영되고 있었다. 사과를 한 입 베어 물고 화면을 응시했다. 수 십 년 전 살인을 저지른 세 친구가 19년이 지나 무죄 석방을 받는 것으로 이야기는 시작되었다. 19년 전 숲 속에서 한 소년이 집으로 다시 못 돌아 간다는 것을 아는 눈빛으로 먼 곳을 응시한 채 처참하게 살해되었다. 당시 세 청년을 현장에서 목격했던 사람이 증언을 바꿈에 따라 이들은 노년의 나이에 무죄가 되었고 삶을 즐겼다. 그런데 그 친구 중 한 명이 석방된지 얼마 안돼 살해되고 알까기 하듯 증거를 좆아 살인범이 누구인가 밝히는 것이 주 스토리였다. 결론은 두 명의 친구가 마약하는 것을 한 소년이 보게 되고 대학 입학이 취소 되는 것을 두려워한 이 두 명이 소년을 죽였던 것. 그리고 당시 친구들과 있다 먼저 자리를 뜬 진짜 무고한 한 명의 친구는 아무것도 모르고 억울한 감옥 생활을 하다 우연히 그 사실을 19년이 지난 다음 알게 된다.  다 같이 무죄인줄 알았는데 자신만 아니었던 상황. 억울함에 자신의 인생을 빼앗아간 친구들을 살해한다는 내용이다. 범죄수사 시리즈물다운 내용이고 이쯤 되면 범인이 누구인지도 뻔히 보이는 내용이다.



그런데 말이다. 나는 사실 끝까지 다 보지 못했다. 너무 너무 끔찍했기 때문에 하도 가슴이 벌렁거려서 말이다. 죽은 소년의 눈빛도, 죄없는 그의 처참한 죽음도, 아들에게 사랑한다고 말 못하고 평생 가슴으로 아들과 살아가는 부모도, 죄를 짓고도 아무렇지도 않게 사는 사람의 모습도  모두 무서웠다.


 자꾸만 내 아들의 얼굴이 아른거렸기 때문이고 내가 사는 세상이 두려워져 고개를 세차게 흔들어 봤지만 허사였다. 머리를 비워버리고 싶을 정도로 안 좋은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뉴스를 잠깐 봤더니 범죄 시리즈물 저리 가라다. 상반신만 있는 시체가 발견되었다, 시끄러운 정치판에 희망은 있는가, 또 다른 어린이집에서 학대 의심 신고가 들어왔다. 대만에서는 길 가는 아이를 묻지마 살인했다...긍정적인 내용을 찾아 채널을 돌렸더니 드라마에 불륜이 차고 넘친다. 몇 달 티비를 안 보다가 봤더니 자극은 더 강하게 다가 온다.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이 진짜 이렇게 험했던가?  이런 곳에서 아이를 잘 키울 수 있을까. 어린이집은 어떻게 보내지?'

 엄마가 되고 나서 가뜩이나 걱정이 많아졌는데 텔레비전을 볼 때마다 더 불안해지고 부정적인 생각이 늘어났다. 그 전에는 대수롭지 않게 봤던 것도 저렇게 끔칙한 내용이었나 새삼  놀랍다. 재미는 있지만 보고 나면 깨름직한 티비 월드.



 


세상은 사건 사고로 차고 넘치는 것도 사실이고 외면하며 살아가는 것도 옳지 않음을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티비를 껐다. 좋지 않은 생각들의 연쇄 반응을 차단하고 싶어서였다.


내 주위를 둘러보면 매스컴에서 말하는 것만큼 아이들이 되바라지지도 않았고, 꼭 공교육이 부정적이지만은 않았다. 삶의 디테일은 일반화보다 더 강하다.  그런데 안 좋은 보도를 보면 꼭 범죄 방법을 알려주는 듯한 생각이 더 강하게 든다. 그리고 세상이 무섭다는 생각으로 자꾸 조심한다는 명목으로 방어적인 태도를 취하게 된다.


그래서 티비를 껐다. 걷잡을 수 없는 불안함과 부정적 생각을 떨치려고.




심심하긴 했다. 그런데 습관처럼 티비를 켜놓아 소리로 가득 찼던 내 공간에 정적이 가득 찼다. 조용해지니  뭔가 정돈된 기분이 들어 좋다. 필요한 뉴스는 인터넷으로 추려 본다.


그렇게 영상 대신 문자가 더 많은 시간 나를 이끈다. 크게 변한 것은 없지만 적어도 두려움에 현재가 먹히진 않는다. 주위 사람들을 더 열린 마음으로 대하게 되는 것, 단지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매거진의 이전글 그런다고 인생이 나아질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