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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다리딩 Nov 02. 2020

아이 앞에서 비겁하게 울어버렸다.

출근길 매일 동동거리는 엄마

아침에 한 시간, 육아 시간을 쓰고도 나는 늘 허덕였다.


수업이 당장 10시 10분에 시작하니,

적어도 9시 45분에는 주차장에 도착해야지 호흡도 가다듬고,

컴퓨터 켜서 급한 메시지를 확인하고, 수업 도구를 챙겨서 수업을 들어갈수 있다.

10시 5분에는 교무실 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야, 10시 10분에는 교실에 늦지 않고 들어갈 수있다.

수업을 시작할 심리적 안정이 적어도, 최소한 10분이 필요하다.


9시 17분.

최소한 9시에는 집에서 나가야 어린이집에 아들 둘을 들여보내고9시 15분에는 내 차에 시동을 걸어야 한다.

그래야 9시 45분에 주차장에 도착할 수 있다. 행여 차가 막히거나 변수가 생기면 안 된다. 그러니 불안하지 않으려면 8시 45분에 집에서 나와, 어린이집으로 직진하여 9시에 선생님께 아이들 맡기고 뛰어야 했다.


월요일 아침.

아이들은 오늘도 빠릿빠릿하게 움직이지 않았다.


지난 밤에 끓인 닭죽을 앞에두고 햄야채 볶음밥이 아니라고 엄마가 해준 죽이 맛이 없다고 어깃장을 놓더니, 한그릇을 먹으면서도 별 딴짓을 다했다. 첫째 양치질을 시키는 사이에 둘째는 옷을 벗어던지고 발가둥이가 되어 온 방을 히죽거리며 뛰어다녔고, 그걸 보던 첫째도 양치거품을 물고 뛰어나가 같이 장난치기 시작했다. 입혀둔 옷도 벗어던지며 천지 벌거숭이가 된 두 아들이 온 방안을 뛰어 다니는 모습을 멍하니 쳐다보다가, 시계를 보니 9시 10분. 


아, 씨X.

낮은 욕이 나왔다.

혼자 덩그러니 화장실에 아이의 물컵을 들고 앉아 욕을 했다.

혼잣말처럼 하는 욕이 위안이 될까.

아이들이 들리지 않게

나즈막히 중얼거리는 욕이 제발

엉킨 내 마음을 풀어주길 바랐다. 아이들에게 화를 내지 않도록.


정신을 차리고 화장실에서 나와 아이들에게 단호한 목소리로 엄마가 출근해야하는데 지금이렇게 장난치니 난감하다고, 이제 서둘러 준비하자고, 나름 근엄하게 타이르는데 둘은 메롱메롱하면서 또 이방저방 구르고 신나서 난리가 났다


나는 멍하게 있다가 애가 타서 엉엉 울었다.

결국 지각할 것이다.

다른 사람에게 폐가 되는 건 정말이지 싫은데 자꾸만 그런 일이 생겨서 속상하다.


아침의 난, 잘 기억이 안나는데, 이렇게 말했던 듯하다.


"또 지각이라서, 엄마는 매일 직장에 미안하다는 말을 해야하는데, 너희는 매일 엄마를 안 도와주고.

아빠는 일하러 나가서 엄마혼자 매일 너희를 돌봐야하는데, 너희는 엄마 마음도 모르고.

나는 또 늦었어.

너무 힘들어.

매일매일 반복이야.

아무도 나 안 도와줘.

나이잘까. 아니아니.

매일 나만 마음이 급하지.

매일 나만 힘들지."


스스로에게 하는 말이었다.

그럴 생각은 아니었는데, 남편 출항 때도 안 울었는데..

엉엉 울었다.

울다보니 더 서러워서 엉엉엉 울었다.


힘들거나 그런건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자꾸만 울고 싶은 마음이 들어서

이때다 싶어서 엉엉 울었다.


아이들은 내가 우는 모습에 약하다.

내가 너무 혼자 힘들다는 말이 쥐약처럼 잘 통한다.



나의 비겁한 방법이 통했나보다.

첫째는 혼자 헐레벌떡 옷을 챙겨입고 운동화를 신었고,

둘째는 이 상황을 귀여움으로 모면해 보려고 씨익씨익 웃었다.


아이들은 기죽은 얼굴로 5분만에 준비를 했고,

어린이집으로 직진했다.


나는출근하는 차 안에서

참을 수 있었는데, 

아이들 앞에서 안 울 수 있었는데,

일부러 엉엉 울어버린 비겁한 내 모습이 싫어서 또 울었다.


울보였던 소녀는 엄마가 되어도 울보다.


육아시간 한 시간.

나는 그 한 시간 덕분에 아이들의 아침을 먹일 수 있고, 

그나마 9시 정도에 아이들을 맡길 수 있는데

그 시간을 쓸 여건이 안 되는 직장의 엄마들은 어떻게 아침을 보낼까.

그녀들도 나처럼 울까?


엄마가 우는 걸 싫어하는 아이의 마음을 나처럼 비겁하게 이용할까?


나는 비겁했다.

그래도 속은 시원하다.

그래서 더 비겁한가.


퇴근 후, 아이들을 찾으러 어린이집으로 갔다.

차가 막혀서 내내 마음이 달았다.

오늘 유난히 일이 많아 늦었는데, 아이들이 얼마나 엄마를 기다렸을까 싶어서 마음이 바빴다.


아이들은 어둑해진 보도블럭을 걸으며

"오늘 엄마 왜이렇게 늦게왔어요? 우리가 말 안들어서?"

그건 아니라고 답하지, 아이들은 씨익 웃으면서

"엄마가 아침에 엉엉 운 거, 선생님한테 말 안했어요. 엄마 창피해할까봐."


아이의 얼굴에 뿌듯함이 빛난다.

어른스럽다.

비겁한 엄마 앞에서 아이의 배려가 더 빛을 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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