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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다리딩 Mar 05. 2021

우리 아들 유치원 입학식, 친구를 떠올렸다.

7살에 유치원을 옮긴다는 것, 새로운 친구를 사귄다는 것에 대한 단상

시골로 이사 오기 전, 아들은 들떠 있었다.


"엄마! 노는 것도 공부라고 했지? 우리가 가는 곳은 마음껏 노는 곳이지?"


"그럼! 너희들 실컷 놀라고 시골 가는 거지! 엄마 쉴 때 많이 놀자. 하루 종일 아침부터 밤까지 놀자! 그런데 여기서 친구들이 너 유치원 옮긴다고 서운해하지 않았어?"


"응, 친구들이 다 나 따라간다고 했어. 눈물까지 글썽이면서 다 나 따라가고 싶다고 했어!"


"우와~! 우리 아들 인기쟁이였네!"


"아니~ 그게 아니라, 내가 가는 곳은 실컷 노는 곳이라고 하니까 친구들도 다 나 따라 실컷 놀러 가고 싶다고 했어."


 아들은 '피리 부는 사나이'가 되어 같은 반 친구들에게 7세 만의 파라다이스를 이야기한 듯하다. 자기가 다니게 될 학교는 초등학교 병설유치원인데 그곳은 마음껏 놀 수 있는 운동장이 있고 아이들이 스스로 만든 놀이터가 있고 텃밭에는 농사도 짓고, 토끼집과 염소 집에서 먹이도 주고, 숲 체험도 가고, 무엇보다 한글이나 영어공부나 앉아서 오전 내 했던 공부들을 안 해도 된다고.


아이들은 울 아들 말에 홀린 듯, 너무 좋은 곳으로 간다고 부러워했다고 한다. 과연 그 아이들은 이런 시골에 오면 정말 좋을까?이들은 어디서든 자신의 꽃을 피울 것이다. 다만 조금더 성품에 맞게 조금이라도 더 많이 웃으며 유년을 보내길 엄마로서 바랄 뿐이다.

 로나로 마스크 쓴 채, 모든 외부활동, 체험활동은 중단된 7세 누리과정 어린이집은 일하며 혼자 아들 둘을 케어해야 하는 워킹맘인 나에게 너무 고마운 존재였다. 프로그램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잘 모르고, 아이들 준비물도 잊어버리기 일였던 나에게 믿고 아이들을 맡길 수 있는 비빌 언덕이었다. 갑작스러운 출장 같은 업무가 생겨도 비록 우리 아이가 마지막까지 원에 남아 있을지언정 마음 편하게 맡길 수 있는 안정성이 있었다.


아이를 일 년간 혹은 그 이상이 될지 모르지만 시골에서 마음껏 놀게 하고 싶다고 했을 때 어린이집 원장님은 걱정 어린 말씀을 하셨다.



"어머니, 어떻게 하시려고 그러세요. 7세면 어느 정도 학교 들어가기 전에 학습도 해야 하고, 무엇보다 친구들이랑 친해져 있을 텐데 적응하기도 쉽지 않아요. 만약 1년간 갔다가 다시 올라왔을 때 친했던 친구들이랑 서먹해져 있을 수도 있으면 또 적응하기 힘든 문제도 있고요. 이 아이는 낯가림이 심해서 거기 적응하기도 무척 힘들 거예요."


객관적으로 교사로서 할 수 있는 말이지만 전문가의 조언은 내 결심을 무모하단 생각을 하게 했고 앞으로의 시간에 두려움을 가지도록 만들었다. 집으로 돌아와 '내가 과연 잘한 짓인가? 만약 잘못된 선택이라서 아이도 나도 힘들면?' 걱정하고 있을 때 동생이 말했다.


"언니, 나는 언니가 잘 선택한 것 같은데? 아이들이 하루 종일 조그만 교실에서 안전하게 공부하는 게 재미없대잖아. 마구 뛰어놀고 싶대잖아. 저렇게 공부하는 거 싫어하고 에너지가 많아서 그렇게 놀아줘도 밤에 더 놀고 싶어서 못 자는 아들 둘이 학교 들어가기 전에 실컷 놀고 싶대잖아. 아이들이 원하는데. 그리고 언니가 그렇게 선택할 수 있는 여건이 되잖아. 휴직도 좀 남았고, 친정집도 있고.... 아들 둘이 합반이라서 친구 사귀기도 수월할 거고. 뭐가 걱정이야? 사서 걱정 좀 하지 마."


 직장 어린이집에서 제일 먼저 등원해서 제일 나중에 하원 하는 조카를 데리고 출퇴근하는 동생이 파리한 얼굴로 덤덤하게 말했다. 자기라면, 휴직이 남았으면 어떻게든 아이와 시간을 많이 보내면서 체력을 키울 거라고.


나는 씩씩해지기로 했다. 맞아. 걱정으로 해결된 것은 이제껏 없었으니 미리 두려워하지 않고 아들들을 진심으로 믿어보기로 했다.

등원 첫째 날


패션에 관심 1도 없는 아들 둘은 자기가 가진 옷 중 가장 멋지다고 생각하는 옷을 챙겨 입고, 한 눈 팔지도 않고 곧장 유치원으로 갔다. 5살 때부터 같은 반이었다는 시골의 작은 병설 유치원 7살들은 그곳의 대장들이었다. 첫째는 다소곳이 그들 옆에 앉아 입학식을 했고 둘째는 잔뜩 긴장해 형 뒤에 앉아 있었다. 자기들끼리 노는 친구들 곁을 맴돌며 첫째는 틈이 생기면 지치지 않고 같은 말을 했다.


"나는 너희들이랑 친해질 거야!"


"안녕? 나는 반드시 너희랑 친구가 될 거야. 친해지기로 결심했어. "


아이들은 어색해하며  대꾸해주지 않았고 그 모습이 조금 속상하기도 했으나 돌이켜보면 나도 타지에서 금방 온 친구에게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았던 어린 시절의 한 조각을 가지고 있었으니 너무나 잘 이해되기도 했다.


유치원의 아이들이 다 나갈 때까지 우리 아들은 현관에 서서 내일부터 친하게 지내자는 말을 반복하고 있었다. 정말 낯가림 많은 내 아들이 맞는지, 5살에 원을 옮길 때 아침마다 한 시간씩 울었던 아들이 맞는지 의아할 정도로 새로운 모습이었다.


고맙게도 그중 한 명이 가면서 "안녕"이라고 인사해주었다.


집으로 손잡고 돌아오는 길에 짐짓 모른 체 첫째에게 물었다.


" 친구가 생길 것 같아?"

"응.

"잠깐만 같이 있었는데도?

"엄만~ 안녕, 이렇게 인사할 때도 다 마음이 담겨 있는 거야."



그렇다.


내가 우리 첫째 아들만을 바라봤을 때 아들은 언어에도 예민했고 감정을 유난히 잘 읽어내 쉽지 않은 아들이었다. 예민하면서도 체력도 좋아 뛰어놀는 것에 한계가 없었다. 자연을 가만히 바라보고 그것을 언어로 표현하는 것에 재주가 있었다. 그래서 늘 고민했었다. 자연 속에서 아들의 감수성을 기를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주고 싶은 마음과 내가 편하게 일하면서 돈을 벌어 아들이 이것저것 공부할 수 있는 터를 마련해주고 싶은 마음 사이에서 계속 갈등했었다.



그 갈등의 끝에 아들을 보면, 어느 환경에서 아들이 더 많이 웃을지가 해답이 되었다.


언젠가 아들의 친한 친구가 유치원을 옮기게 되어 아들이 속상해했을 때, 다른 친구들 많잖아라고 말한 적이 있었다. 아들은 엄마는 뭘 모른다는 눈초리를 하며 이렇게 말했다.


"엄마! 같은 반이라고 다 친구는 아니야. 나랑 마음이 통해야지만 친구란 말이야. 그것도 몰라?"


아이의 유치원 입학 날.

아들의 입학식을 보며 나와 마음이 통했던 친구들이 참으로 보고 싶어 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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