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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다리딩 Mar 09. 2021

잃어버린 행복의 한 조각

매일 글 쓰는 삶을 살기로 했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하는 사람.

 내 눈에 그런 사람은 나와는 애초에 삶의 뿌리가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가령, 스무 가지 직업을 전전하면서도 수천 편의 글을 쓴 찰스 부고스키, 버스 운전을 하고서 퇴근 후 글을 쓴 레이먼드 카버처럼


세상은 어떤 상황에서든 포기하지 않는 사람, 끊임없이 한 사람들의 이야기로 가득하다. 그런 사람들 중에서 성공하기도 했고 그렇지 못한 사람들도 있겠지만 알려진 이야기는 당연히 어떤 불우한 환경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지속했던 사람들의 성공 이야기다.





 불행히도 '평범'이란 단어를 향해 부단히 애쓰며 살았던 나는 그런 '비범'한 사람들의 의지는 감히 꿈꾸지 못했다. 생활 곳곳에 산재한 일상성은 무척이나 진을 뺐다.


 '남들처럼' '일상'을 꾸려가는 것은 녹록지 않아서, 직업을 가지고 결혼을 하고 제대로 된 하루 일과를 보내다 보니 마흔의 어른이 되었는데 어딘가 늘 피로감이 쌓였다. 제법 그럴듯한 어른이 되었는데도 불구하고 행복의 한 조각이 빠진 것 같은 허무함이 가슴에 머물다 가곤 했다. 그런 허무함이 깊어지면 짜증이 났고 때론 가족들에게 화를 내기도 했다. 노력해서 겨우 평범에 가까운 삶을 살게 되었는데 나보다 더 열심히 사는 '타인의 삶'을 기웃거리는 자신을 발견할 때 행복하지 않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애초에 내 삶은 성적 통지표에 선생님의 평가처럼 '열정적이지 않고', '애성이 부족하며', 다만 성실하고 모범적이라는 틀 안의 삶을 사는데 적합했다. 그냥 그랬다. 조금만 애쓰면 일이 어그러졌고, 잘하고자 마음먹으면 긴장감에 몸이 더 아팠다. 낯선 사람들 앞에 서는 것도 두려웠고, 엇을 향해 부단히 애쓰며 노력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나에겐 부담으로 다가왔고 나는 그렇지 못하므로 불편하기도 했다.



나와 삶의 결이 다르다는 이유로 어쩌면 나는 '편안한 삶에 머무르는 행복'을 택했는데 문제는 이러한 편안함에 머물다가 문득, 일상을 살아내는 삶 말고, 내 마음이 원하는 삶을 살아야겠다는 결심이 들었다는 것이다. 내가 하는 일과, 나의 가치대로 꾸려가는 가정, 원만한 대인관계 외에 빠진 행복의 한 조각. 그것은 바로 쓰는 삶이었다.


 글이 좋아 전공도 국어로 하고 직업도 교사를 선택했으면서 작가가 되는 것은 늘 자신 없었다. 허울 좋은 변명 속에 숨겨진 나의 욕망, '위로가 되는 글을 쓰는 작가, 제법 유명해지면 더 바랄 나위 없는' 그 욕망을 숨긴 채, 시간이 없고, 육아를 해야 하고, 일을 해야 하니 쓸 수가 없다 같은 일상성 뒤에 숨어서 '언젠가는'이라는 미래형으로 버려둔 나의 욕망이 마흔을 넘어서자 더 이상 숨을 곳을 찾지 못하고 불쑥 튀어나와 매일 나를 힘들게 한 것이다.


 그래서 소심한 핑계쟁이는 핑계대기를 그만두고 실행을 해보기로 했다. 작년 가을 신춘문예 마감을 한 달 앞두고 미친 듯이 글을 썼다. 일이 끝나고 아이들을 재우고, 매일 새벽 어질러진 거실에서 장난감을 치우는 일 따위 버려두고 글을 썼다. 글을 쓰는 내내 어렸을 때 가졌던 의문, '과연 내 글을 읽는 사람이 있을까?' 이런 생각이 자꾸만 떠올랐다. '어쩌면 나는 정말 재능이 없는지도 몰라.'라는 생각이 글 쓰는 내내 자주 들었고, 인기 순위에 오른 글들을 보면 질투 한 조각이 올라와 얼굴이 빨개졌다. 결국 한 편도 입선하지 못했다. 혹시나 했던 마음은 역시나로 바뀌었지만, 나는 그 후로 삶의 태도가 바뀌었다. 막상 해보니 매일 쓰는 삶은 그리 어려운 것이 아니라는 생각. 어떤 열정과 능력, 의지가 불타올라 매일 해내는 삶은 타고난 사람만 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자주 들었다.



 마음의 공허함 한 조각은, 일이 힘들어서도 육아가 힘들어서도 삶이 힘들어서도 아니었다. 하고 싶었던 말로만 꿈꿨던 '작가'로서의 삶을 실천하지 않는 삶에 대한 불만족 때문이었다. 쓰고 싶은 욕망을 한편에 숨겨두고 바쁘다는 핑계로, 나는 재능이 없을지도 모른다는 핑계로, 아무도 내 글을 읽어주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으로 시도조차 하지 않은 삶이 후회됐다.


매일 쓰자. 한 줄이라도 매일 쓰자.


이렇게 다짐할 때 펼쳐 든 책의 한 줄이 내게 큰 용기를 준다.


'시로 납치하다'의 한 구절


"쓰고 쓰고, 또 쓰라는 것밖에 없다."


그래. 쓰고 쓰고 또 쓰자.


애초에 내가 원했던 행복의 한 조각은, 스쳐 지나가는 생각들을 언어로 표현하는 것에서 희열을 느끼는 것이고 누군가 내 글을 읽고 "정말? 나도 그런 적이 있었는데."라고  공감해주는 데 있었다


 그렇다. 나는 쓸 때 행복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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