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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다리딩 Apr 13. 2021

엄마, 여기 너무 아름답지 않아?

때 되면 그 순리에 따라 살아내고 살아가는 삶을 감상하러 갑니다

비 오거나 하늘이 무겁게 내려앉은 날, 시간이 많은 우리가 선택한 놀이는 '시골길 드라이브'다. 간식을 든든히, 따뜻한 물과 시원한 생수도 반드시, 비상용 컵라면도 두 개, 과일을 썰어 담은 도시락 하나를 챙겨서 얼른 차에 올라탄다. 오늘의 드라이브 운전대를 잡은 주인공은 이곳 상주에서 태어나 공부를 위해 타지로 잠깐 나갔었지만 다시 돌아와 평생 지낸 토박이 울 아빠.


목적지는 비 오는 날 드라이브하기 좋은 곳, 아빠가 끌리는 곳, 아빠의 심미안이 고대로 드러나는 곳, 아빠 마음대로다. 당연히 내비게이션의 목적지는 없다.


아빠는 문경 쪽 휴게소에서 밥을 한 그릇 사 먹고 벚꽃길이 예쁜 능암길을 지나 이안리를 지나는 길로 한 바퀴 돌자고 하셨다. 우리는 무조건 '오케이'


약한 빗줄기 사이로 봄은 엊그제 보다 더 싱그러워지고 있었다. 연두 초록의 빛이 더더 짙어져 있었고 말라서 개울 바닥의 돌멩이들만 자리하던 곳에 개울물이 넘쳤다.


'어떻게 밤사이 그 거센 빗줄기를 종일 온몸으로 받아내고는 더 봄빛이 강해질 수 있었을까. 심지어 막 피어나기 시작하는 꽃들도, 작고 어린 가지만 가진 나무도, 그 어느 것 하나 비를 피하지 않고 오롯이 온몸으로 받아내어 마침내 생명줄을 다지고 있는 봄의 풍경이구나.'



지나가던 카페에 들러 운전하느라 고생이신 칠순의 아빠에게 달달한 커피 한 잔을 사드린다. 조금 더 가다가 아이들은 뜬금없이 나타난 한적한 마트에서 과자를 사겠다고 했다. 간판도 없는 슈퍼마켓에는 새우깡과 소주, 라면 몇 개만 있었다. 아이들은 어두컴컴하고 다소 기괴하기까지 한 굴 같은 마트에서 새우깡을 집어 들었다. 뽀얀 먼지를 훑고 혹시나 해서 유통기한을 확인해 본다. 유통기한이 임박해있었다. 지나지 않아 다행이라 생각하며 한 봉지씩 사고 주인 할머니의 갸녀리고 낡고 슬프고 애잔한 손바닥 위에 돈을 올려드렸다. 아이들은 더 씩씩하게 인사하고 주인 할머니는 고 녀석들 이쁘다며 잔잔한 미소를 거두지 못하신다.

차에 올라타 새우깡을 먹으며 아이들의 창밖 비 오는 날 감상은 계속되었다.



평일 낮의 한적한 휴게소에서 점심을 사 먹고, 밖에 나오면 먹는 것에 후해진 우리 엄마는 아이들에게 또 군것질거리를 쥐어주신다. 아이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하나씩 먹을 것을 골랐는데 둘째는 핫도그를 그렇게 맛있게 먹기 시작했고 케첩을 얼굴에 묻혀서 우리를 또 한 번 웃게 만들었다.


이상하다.

산이라도 모양이 다르다.


심긴 나무가 무엇인지 봄철이면 한눈에 알 수 있다. 아무리 먼 산이라도.


유독 봄빛이 이쁜 나무들과 산벚나무가 핀 산은 시선을 사로잡을 만큼 은은하게 빛나고 다채롭다.



"잠깐! 할아버지. 여기 차 세워보세요."


급작스런 다섯 살 둘째의 부탁에 아빠는 황급히 차를 갓길에 세웠다.


"엄마, 여기 너무 아름답지 않아? 사진 좀 어보세요."


둘째 아이가 차를 세우고 창문을 열어 사진 찍으라고 한 곳의 위치가 어딘지 모르겠다. 진남 휴게소에서 농암으로 가는 어느 길목인 것 같았다.


우리는 둘째가 오늘 드라이브의 픽으로 찍은 포인트에서 머언 산빛과 봄의 들판을 적시는 봄비의 풍경을 바라보았다.



차 안에는 음악도 틀지 않았다.


그래서 창밖에서 넘어오는 시골의 거름 내, 봄바람의 시원함, 싱그런 물기 등을 오감으로 오롯이 느낄 수 있었다.



울컥했다.

그동안 삶에서 가지고 살아왔던 고단함, 외로움, 수치심의 기억이 떠올라서. 자존감 무너져 내린 적도 많았지만 잘 견뎌냈었다.


무수한 봄비를 이겨내고 생명줄을 더 튼실히 이고 여름을, 가을을, 종내 겨울을 해가는 봄의 풍경을 보고 있자니 자꾸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사람들이 찾지 않는 이 한적한 시골에서 무수히 많은 생명들이 타인의 시선따위 바라지 않고 심지어 그런 게 있는지도 모른 채 자신의 몫을 살아내고 있었다. 이 생명들의 소임은 오로지 '자신의 삶에 충실'이다. 공평하지 않은 일이 생기더라도, 스포트라이트 한 번 받지 못하더라도 '때 되면 그 순리에 따라 살아내고 살아가는 삶'을 소리 없이 무수히 행하고 있었다.


쉬고 싶어 시골로 내려왔는데, 시골에서 자연은 그런 마음을 아는지 수시로 나에게 적잖은 위로와 위안을 준다. 아무 말하지 않아도 그냥 보여준다.




"됐어. 이제 가요. 비가 자꾸 들어오네."


둘째의 말에 이끌려 아빠의 차는 다시 출발했다. 우리가 그 긴 시골길을 나올 때까지 마주한 차는 한 대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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