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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다리딩 Apr 14. 2021

엄마, 나 너무 놀아서 불안해.

너에게 마음껏 놀 자유를 선물해줄게

학교 들어가기 전, 아이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오늘도 여러 단체 카톡방에서 자신의 아이가 영재원에 입학했다는 글, 레벨 테스트를 통과했다는 글, 대기 중이던 유명 학원에 들어갔다는 글, 국제학교에 들어가는 시험에 합격했다는 글.... 이 넘친다.


시골에 내려와서 그런 이야기들이 너무 이질적으로 느껴져 부러움 없이 '정말 축하해요'라고 답글을 적었다.


어느 엄마가 이렇게 글을 남겼다.


'아이의 타고난 머리도 중요하지만 부모의 태도도 중요하다고봐요. 우리 집은 눈 뜨면 책부터 봐요.'


우리 집도 눈 뜨면 책부터 보는데...


바로 내 글 밑에 달린 답글을 보며 내게 가르치듯 말하는 것 같아 괜히 뜨끔했다. 아닌 게 아니라 엊그제 부모님으로부터 첫째가 7살인데 너무 안 가르치는 것 아니냐는 질책을 받았다. 강남에 사는 친구 손자들은 벌써부터 사교육 어떤 걸 받는지부터 시작해 알고 싶지 않은 이야기들을 실컷 들었다. 아빠에게 나는 강남에서 사교육 시킬 경제력이 안 되서 못하고, 내 가치관이랑도 맞지 않다고 말씀드렸다.

는 아들이 무언가를  강제로 하면 싫어하고 지적하는 것을 무척이나 싫어해서 매번 싸우면서 공부가 끝나는 게 싫다고, 가장 기본적인 것을 해주며 좀 기다려보겠다고 답했다.

 엄마는 '공부 안 하는 아이는 없고, 공부를 안 시키는 엄마만 있다'며 내가 처음부터 애를 안 잡아서 그렇다고 하셨다. 그 말이 다 내가 공부에 신경 안 써서 그렇다는 힐난인 것 같아 불편했다.






내가 7살 땐 무엇을 했더라.

엄마는 무던히도 내게 많은 것을 시켰다.


고작 부부 교사의 쥐꼬리만 한 월급으로 피아노, 첼로, 비올라, 웅변, 미술.... 많은 기회를 주고자 하셨다. 나는 그 어떤 것 하나 재미가 없었다. 특히 피아노 학원은 진도 나가기 바빴는데, 아이들은 체르니 100번을 누가 더 빨리 마치냐를 두고 은근 신경전을 벌이고 있었다.


나는 너무나 학원이 싫어 학원 가는 길목에 작은 개울에 운동장에서 논다고 달아오른 발을 담그고 열을 식히다 레슨 시간을 놓치기 일쑤였다. 엄마가 주는 피아노 레슨비를 전달해주지 않고 문방구에서 친구들에게 과자를 다 사준 일이 들켜서 파리채로 쫙쫙 줄이 생기도록  종아리를 맞았다. 그럴수록 피아노는 더 더 싫어졌다. 재미없이, 동기도 없이, 흥미도 없이 꼭 매일매일 해야 하는 레슨. 결국 6년의 피아노 레슨은 피아노를 혐오하는 것으로 끝이 났다. 종내 그 어떤 재미도 느끼지 못하고 부모님의 등골 빠지게 일한 돈을 허울 좋은 '나도 피아노 배워요'라는 동류의식에 갖다 받쳤다는 죄의식만 남았다. 나는 그 후 피아노, 웅변, 미술, 첼로.... 그 어떤 것도 미로 갖지 않았고 그리워하지도 않았다. 나의 취미는 오로지 '자발적 선택'으로 이루어진  것들만 남았다.



나의 강제성을 싫어하는 모습은 첫째가 고스란히 닮았다. 그래서 그 느낌을 너무나 잘 안다.




"신기한 한글 나라가 왜 신기한 줄 알아? 진짜 신기하게 통 글자 바로 외운다니까. 4살부터 다 시작해."라는 친한 언니의 말에 홀려 우리 아이도 당연히 신기하게 통 글자를 바로 욀 거란 희망에 차 덜컥 1년을 계약했다. 신기한 수학 나라도.


돈을 들이면 아이가 알아서 다 할 줄 알았다.


매일매일 책을 수십 권 읽어주고 나름 엄마표 놀이도 해주고 엄마표 이유식, 집밥으로 정성 들였으니 아이가 또 잘 따라와 줄 거라 생각했다.


처음에는 잘 따라 하다 한 달째 되자 만 3살의 아이는 선생님이 지시하는 손을 양손으로 잡았다.


"선생님, 너 나한테 강제로 하지 마! 나는 싫단 말이야."


선생님도, 나도 너무나 당황했다. 그런 모습이 제대로 가정교육 못 시킨 모습의 일면일 것 같아 아이를 잡아 혼냈다. 그 후 남은 11개월은 선생님도, 아이도 그냥 시간 때우기였다. 아이는 선생님에게 등을 돌리고 앉았고 나는 곤욕스러워하는 선생님께 '그냥 놀아만 주고 가주세요. 죄송해요.'라고 죄지은 사람처럼 굽신거렸다. 


아이는 그 후 공부는 재미없고 강제로 하는 것이란 인식이 생긴 듯 내가 뭔가 가르치려고 하면 등을 돌리고 앉아서 못 들은 척했다. 당장 그만두고 더 때를 기다려 시작하려고 했지만 약정상 그게 안 된다고 했다. 책을 한 질 받았으니 휴지기간이 없다고 했다. 그놈의 공짜 책에 눈이 멀었던 내가 원망스러웠다. 돈이 아까워 꾸역꾸역 시키면서 너무 스트레스를 받았다.

"후야. 공부는 당연히 해야 하는 거야. 처음에는 다 모르니까 재미가 없고 어렵지. 어떤 건 오랜 시간 외어야 하고 어떤 건 이해하려면 많은 시간을 생각해야 해. 엄마도 참 공부가 재미없다고 생각했었어."


"그런데 지금은 재미있어?"


"응. 삶에 대해 배우는 게 다 공부니까. 운전을 배우는 것도, 그림을 그리는 것도, 요리를 배우고, 너희들을 키우고, 재밌는 책을 읽고, 실컷 놀고, 여행 다니고 이런 게 다 공부니까 어떻게 안 재밌을 수가 있겠어?"


"노는 것도 공부야?"


"그럼, 네가 폭탄 놀이같이 흙을 물에 적셔서 둥글게 만든 폭탄을  높은 곳에서 떨어뜨리는 놀이를 만들어 하잖아. 그것도 네가 다 생각하고 배우고 그렇게 실험해보고 하니까 공부지."


아이는 그제야 조금씩 공부에 대한 경계를 풀기 시작했다. 무엇이든 배우고 싶은 게 생기면 언제든지 엄마에게 말하라고, 엄마는 네가 하고 싶은 것은 얼마든지 지원해줄 수 있다고 말했다. 아이는 든든한 후원자를 얻었다는 듯 빙그레 웃었다.


종일 온 힘을 다해 노는 아이를 보다못해 가르쳐보겠다고 평생 교직에 계셨던 엄마가 나섰다. 평생 국어교사였던 아빠도 나섰다. 두 분 다 결국 아이에게 한글을 가르쳐주지 못하고 마지막은 혼내고 비난으로 끝났다. 너는 그냥 놀라며.






코로나로 인해 누구를 만나는 게 조심스럽고 불안해서 한창 밖에서 뛰어 놀 나이, 관계에 대해 배울 나이의 아이들을 데리고 시골로 내려왔다. 무엇보다 활동량 많은 아이들이 하루 종일 운동장에서 뛰어놀고 자연 친화적 생활, 놀이 중심 생활을 할 수 있는 유치원을 보고 내려왔다. 우리 아들에게 딱 맞는 곳이란 확신이 들어서였다. 아이는 유치원에서 너무 놀아서, 있는 힘껏 놀아서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그리고 집에 와서 마당놀이도 하고, 밤이 되어서야 동화책을 읽는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어려서부터 언어에 예민하고 책을 좋아해 책을 펴면 몇 시간이고 몰입한다.


학교 들어가기 전 아이들에게 무엇이 가장 중요할까?


건강한 몸과 마음,

 충분한 휴식과 다정한 집.


이 것은 내 소신이다. 그래서 시골로 내려온 이상 아이들의 의사와 무관하게 교육을 시키면서 인풋이 있으니 아웃풋이 있어야한다고 강요하지 않으려 한다. 단지 가장 기본적인 공부습관 하루 30분 그림일기(그림 그리기)와 자기 전, 눈떴을 때 책 읽기만 하는 것으로 만족한다. 그것만으로도 하루가 꽉 찬다.


어느 날 아이는 스스로 한글 공부를 하고 싶다고 했다. 시골에 내려와 한 번도 꺼낸 적 없는 학습지를 꺼내서 스스로 하기 시작한다.


"엄마, 나 너무 놀기만 한 것 같아.

공부를 안 해서 불안해."


"불안해하지 않아도 돼. 너 잘하고 있어."


"아니야. 내가 알아서 공부해야 할 것 같아."


7살이 되자 아이는 비로소 한글에 관심이 생겼다. 강요하지 않았더니 조금씩 마음을 열어 하루에 딱 15분만 한글 공부를 하겠다고 선언했다. 마음먹은 날은 한 시간을 넘기고 집중했고 어느 날은 학습지가 자기 마음에 안 든다고 스스로 학습지를 만들어서 아는 글자를 쓰기도 했다. 5살 동생은 형이 공부할 동안 옆에서 형이 한 번 했었던 한글 공부책을 보며 공부를 한다.



미리 두려움을 가지지 않으려 한다.

 늘 늦되게 살아 공부에도 시간이 걸렸던 나도 내 삶의 자리를 찾아 어른이 되었다. 나보다 덜 징징거리고, 나보다 강단 있고, 나보다 더 주관이 뚜렷하고 나보다 더 튼튼한 아들들 역시 자신의 삶의 자리를 잘 찾아가리라 믿는다.


 삶이 한가지 옳은 길만이 있는 것이 아니니, 내가 미리 나서 보호막을 치거나 가르침을 주는 것에 조심하려고 한다. 우리 아들이 고생없이 성공가도를 달리면 너무나 좋겠지만 그런 삶을 굳이 바라지 않기에 또 부러워하지도 않는다.


 이상하게도 시골로 내려오니 여유가 생긴다. 아이들이 매일매일 웃고 씩씩하게 자기 앞가림해나가고 친구들을 사귀는 것만으로도 너무 감사할 지경이기에.  오늘도 알아서 밥 챙겨 먹고 양치질하고 스스로 옷도 입고 유치원으로 달려 나가는 두 어린 아들을 보며, 나만 내 인생 잘 살면 되겠다란 생각이 든다. 그래, 매순간을 즐기면서 타고난 결대로 사는 생도 살아보니 괜찮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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