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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다리딩 Apr 16. 2021

엄마, 나 잘못 태어났어?

첫째가 졸리다 하여 동화책을 한 권 읽어주고 재우는 중이었다. 낮잠을 좀 자서 아직은 잠이 덜 오는 둘째가 방문을 빼꼼 열더니 웅얼거리며 말했다.


"엄마, 나 잘못 왔어?"


그 웅얼거림이 낮고 여려서 잘 못 알아들었다.


"뭐라고?"

"엄마, 나 잘못 왔어?"

"응? 입을 제대로 벌려서 또박또박 이야기해봐.  무슨 말 하는지 모르겠어."

"나, 잘못 왔어?"


그제야 아이의 말 뜻을 알아들었다. 아이는 반복되는 대답에도 화내거나 더 소리를 키우지 않고 여전히 낮게 웅얼거리며 말했지만 말 뜻을 이해하고 나서야, 그 말투에서 '불만'과 '원망'이 묻어 있음을 알아챈다. 그 궁극에는 '나도 사랑해줘'의 의미가 있음을 그제야 생생히 알아챈다.  앞의 작고 여린 존재가 자신의 존재의미를 확인 받고 싶어하고 있다. 잘못 들어왔나는 말이냐고 되묻자 아이는 고개를 가로 흔든다.


"네가 잘못 태어났냐는 말이야?"

"으응."


'응'의 대답이 길다. 으으으응. 고개를 아주 천천히 힘차게 한 번 끄덕인다.


오, 안쓰러운 내 새끼.

나는 어둠 속에서 일어나 양 팔을 벌린다.


살짝 연 문틈에 끼인 듯 서있던 둘째 뒤로 밝은 형광등 빛이 어둠을 비집고 들어온다. 둘째도 몸을 던지듯 빛과 함께 안긴다. 품에 안긴 아이의 정수리에서 아가의 향이 난다. 나는 둘째의 흙냄새같기도 하고 살결의 잔향인 것 같기도 한... 무척이나 인간적인 정수리 냄새를 좋아한다.


"우리 진우가 와줘서 행복하지. 엄마는 우리 진우가 와줘서 새롭게 태어났지. 진우 엄마로서. 진우 엄마가 돼서 너무 행복해. 진짜 인생이 뭔지 알게 해 줬는 걸. 진우가 태어나던 날 이야기해줄까?"



아이는 어느새 다섯 살의 묵직함으로 자랐다. 그 묵직한 몸뚱이의 무게가 사랑스러워 꼭 안았다. 가끔 그렇게 꼬옥 안고 있으면 생명이란 무엇인가를 생생히 알것만도 같다. 아이는 나지막하게 끄응 소리를 내고는 이내 품에 얼굴을 묻었다. 새끼 짐승처럼.


 둘째는 나를 살게 해 준 생명이었다.


유난히 잠 없고, 예민하고 시샘이 많아 아이 눈치를 많이 보게 했던 첫째와는 달리, 고된 육아에서 나에게 숨 쉴 구멍을 준 아이었다.


첫째 분만이 3시간 만에 이루어진 만큼 둘째는 병원 오다가 낳을 가능성도 있으니 유도분만을 하자는 의사 말에 내키지 않아 몇 번을 고사했었다. 첫째도 진통제 없이 쌩으로 낳았는데 둘째쯤이야, 자신 있었다. 육아가 힘들지, 출산이 힘드랴.


항상 웃던 의사는 미소를 거두고, 진지하고 엄하게 말했다.


"병원이 가까운 거리도 아닌데, 오다가 차 안에서 낳으면 감염의 위험이 있어 산모와 아이에게 안전하지 못해요. 지금 그럴 가능성이 많아 권하는 거에요

  오늘 당장 출산합시다."


남편과 나는 스타벅스에서 한 시간 동안 고민하며 앉아 있다가 결국 의사의 권유대로 바로 유도분만을 하기로 했다. 출산 가방은 나중에 가져오면 된다며 의사는 먼저 침대에 누워 있던 산모를 옮기고 나는 한 시간이면 아이를 낳을 거라며 장담했다. 유도분만 주사를 맞고 무통 주사도 맞고 거짓말처럼 땀 한 방울 흘리지 않고 둘째를 낳았다.



무통주사도 없이 자연분만으로 혼자 첫째를 낳느라 눈물 콧물 빼고 실핏줄도 다 터졌던 첫 출산과 달리 둘째의 출산과정은 축제였다. 내가 소리도 지르지 않고 쑤욱 둘째를 낳자 남편은 경이로워했다. 첫째 때 옆에 있어주지 못했다는 죄책감을 덜고 둘째를 안고 아기의 우렁차고 신경질적인 울음소리를 귀여워 어쩔 줄 몰라하며 웃어댔다.



모유수유가 안 돼서 죽고 싶을 정도로 고통스러웠던 첫째 때와는 달리 둘째는 단 한 번에 쭉쭉 모유를 잘 먹었고 집으로 와서 바로 통잠도 잤다. 형이 짜증을 내고 심술을 부리며 괴롭혀도 울지 않았고 보채지 않았다. 이유없이 울지 않는 순하디 순한 아이였다.


 동생이 태어나 더 신경질적인 첫째를 상대하느라 심신이 지쳐있어 둘째 이쁜 줄 모르고 시간이 지났다. 늘 수면부족이었고 누구의 손길만 닿아도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한 겨울에도 몸에는 늘 끈적한 노동의 땀이 배어 있는 나날이었다.


아이는 자랐다.

첫째의 시샘과 예민도 길이 들었다.


둘째는 순한 아이가 아니었다.

고집도 있고 강단도 있는 아이었다.

그래도 '엄마 힘들어' 한 마디면 아이는 수그리고 품에 안겨서 "엄마 힘들지 마. 내가 미안해."라고 먼저 말하는 아이었다.


둘째는 나의 '위로'였다.

그 어떤 심란함이 마음에 일어도 어두운 밤 둘째의 둥근 등을 쓸어내리거나 안으면 마음속에는 고요가 일었다.

'그까짓 일쯤 아무것도 아니지. 이렇게 고마운 일들이 많은데.'


둘째는 언제나 그 존재만으로 나에게 감사함을 일깨우는 아이었다.


둘째는 형에게 치여 자신이 엄마에게 1순위가 되지 못한다고 느꼈던 듯하다.  사실 그런 순간이 많았다. 울거나 보채거나 떼쓰는 아이를 먼저 안는다는 말은 나에게도 적용되는 오랜 속담이었다.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다는 오랜 속담도 나에게 적용되는 말이었다. 다들 내가 첫째만 더 챙긴다고 했지만 내 마음이 다하지 못한 만큼,  둘째가 안쓰럽고 더 사랑스럽게 여겨졌다.


둘째는 말을 배우면서 종종 자신의 서운함을 직설적으로 토로했는데, 평소 형아 아기 앨범이 더 많고, 형아 먼저 달래는 적이 많았는데 오늘은 형부터 재우니 참다 참다 자신의 존재를 부정해 보는 것으로 서운함을 토로했다.


둘째는 한참 안겨 자신의 탄생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엄마가 얼마나 행복해했는지, 아빠가 얼마나 웃으며 기특해했는지를 확인하고는 이내 둥글게 모은 입술로 뽀뽀를 날리고는 할머니 방으로 갔다.



'내가 잘못 태어났나? 엄마는 나 안 사랑하나?'

 나의 행동으로 그리 생각하게 만들었다니, 나는 참으로 나쁜 엄마다. 나쁜 엄마라는 생각이 한 번 들자 줄줄이 과거에 아이들에게 날 선 감정을 터뜨렸던 미숙했던 지난날이 떠올랐다. 꾹꾹 구겨 넣었던 암흑의 감정을.


엄마가 더 나은 사람이 될게.


너의 존재가 '아름다움 그  자체'라는 것을 느끼도록 엄마가 잘할게. 형아만 말고 너도 잘 보듬을 수 있도록 체력도 마음도 키울게. 엄마가 너에게 사랑을 잘 표현할 수 있도록 실천할게.


너의 순순한 마음과 인내를 타고난 기질이라고 여기지 않고   너무 많이 참으라고 훈육하지도 않을게.

인정하고 자랑스러워 할게.


둘째는 긴 밤 모든 서운함을 잊고 아침이면 또 반짝이는 웃음으로 내게 달려와 안길 것이다.

굿나잇.

내 소중한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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