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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다리딩 Apr 21. 2021

숲에서 밤을 기다려,

우리는 저녁이 오길 기다려 밤을 보러 가기로 했다.


4시.

하원 하는 아들 둘을 차에 태우고 시장으로 나가 온누리 상품권으로 텃밭에 심을 모종을 샀다. 첫째는 옥수수를 심어 따먹고 싶다고 했고, 둘째는 수박을 키워서 먹고 싶다고 했다. 모종 하나에 1500원에서 2000원가량 하는 것들도 많았다. 봄에 심어 물도 주고, 좋은 흙도 공급해주고, 벌레도 잡아주고 그렇게 농약도 화학 비료도 없이 키우면서 이 모종들을 먹을 만한 크기로 자라게 하려면 얼마큼의 '애씀'이 필요할까 가늠해보았다.


아마 혼자라면 마트에서 한 두어 개 먹으면서 여름을 보냈을 것이다. 그게 훨씬 노력과 돈이 적게 드는 일이 리라. 지만 노력과 돈이 적게 드는 일만 선택하며 살 수는 없는데 대표적인 것이 아이를 키우는 일이었다. 특별히 더 애쓰고 애써, 내가 가진 능력 이상으로 성장하게 되기도 하며, 내 마음 깊은 곳까지 뒤집어보게 되고, 어렸을 때의 모습을 자꾸만 마주하게 되는 육아.


둘째는 모종 구경을 하다 말고 값을 치르기 전에 보채기 시작했다. 시장 구경 그만하고 집으로 돌아가자고 떼를 쓰기 시작했고 서둘러 값을 치르고 차에 오르자마자 곯아떨어졌다.



오후 5시.


첫째와, 나, 친정 엄마는 둘째를 더 재우기 위해 드라이브를 가기로 했다. 차 안에서 엄마가 둘째를 보듬는 사이, 한적한 냇가에 차를 세우고 첫째와 나는 잠시 내렸다.

내가 첫째 만할 즈음, 태어나서 7살이 될 때까지 수없이 놀러 와서 돌을 던지고 시원한 물에 발을 담그고 시간을 보냈던 곳이다. 첫째는 그때의 나처럼 냇가에 돌을 던지고, 몰래 노상방뇨도 하고 시간을 보냈다.


오후 5시 30분.


인근 고깃집으로 가서 저녁 끼니를 때웠다. 갈비가 너무 먹고 싶었던 나와 냉면이 너무 먹고 싶었던 첫째, 시골 된장찌개가 당긴다는 둘째, 아무거나 먹어도 된다는 엄마의 합으로 우리는 돼지갈비를 열심히 굽고, 냉면을 먹고 공깃밥 3개를 깨끗이 비웠다. 잠투정이 심해 안겨 먹던 둘째는 식사가 끝날 무렵에야 잠에서 완전히 깼다.


오후 6시 30분.


역시나 어린 시절의 나와 젊고 고단했을 엄마가 자주 왔던 추억의 장소로 향했다. 그곳에서 리는 산속의 밤을 기다리기로 했다.


내가 아이를 낳으면 꼭 해보고 싶었던 일이었다.

가로등조차 없는 산사의 밤이 서늘한 기운으로 우리 발 밑까지 오는 시간의 흐름을 맛본 사람은 안다. 오감이 열리는 비밀스런 순간이 존재한다는 것. 그 순간을 아이들과 함께 하고 싶었다. 우리 엄마, 아빠가 나에게 해준 것처럼.


나무에 가려진 손바닥만 한 하늘의 색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저것이 무슨 색이었던가.



배운 색, 배운 단어로 조합하기 힘든 그 빛깔을 눈으로 담았다. 배운 대로 세상은 흘러가지 않고 책 속에서 누군가 알려준 대로도 내 뜻대로도  잘 안 되는 인생이기 일쑤지만 틀 밖의 삶도 괜찮다고 하늘빛이 알려주는 듯 했다.

멀리서 뻐꾸기 소리가 들려왔다. 이어 화답하듯 이제껏 들어보지 못한 청명하고 영롱한 새소리가 들렸다.


그 사이로 저녁의 산바람이 한 줄기 지나갔다. 서늘하고 차갑다. 매섭지는 않으나 한기가 돋는 바람이었다. 밤이 다가오는 순간은 순식간이었다. 눈 깜짝할 사이까지는 아니지만 한 눈 판 사이 하늘로부터 어둠이 낮게 낮게 눌러내려  머리 위까지, 발아래까지 내려앉았다.



아들 둘은 고요하기에 더 잘 들리는

산의 심장소리, 살아 있는 것들의 소리에 귀 기울였다.

그리고 이내 아들 둘은 저녁을 많이 먹었다며 화장실로 차례로 볼일을 보러 들어갔다. 그리고 그 안에서 불빛을 보고 달려드는 벌레들을 조우했다! 그 생명들을 관찰한다고 시간을 보내고 화장실에서 나왔을 땐 이미 어둠이 샅샅이 내려앉아 있었다.  완벽한 어둠이었다.


무거운 어둠 속을 헤치고 시속 30킬로미터로 산을 내려와, 시속 50킬로로 시내를 달려, 우리 시골집으로 돌아왔다.



"우리 집에도 밤이 와버렸네."

"너무 춥지도 않고, 너무 덥지도 않고, 오늘도 너무나 좋은 날이야."


우리는 마당 의자에 앉아 밤하늘의 별을 보며 째의 말에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들의 발을 따뜻한 물을 받아 조물조물 만져주면서 오늘 하루는 어땠냐고 물었다. 아들들의 단답형으로 '좋았어'라고 답한다. 이런 밤의 산책이, 엄마가 되기 전 아이가 생기면 꼭 해보고 싶었던 일이었다고 말하자 아들은 매일매일 해도 괜찮다고 답했다.

선심 쓰듯, 엄마가 됐으니까 해보고 싶었던 거 다 해보라고 말했다.

그 말에 피식 웃음이 났다. 엄마가 되서 해보고 싶은 수많은 것들을 접어야 했음을 어찌 말로 설명할 수 있을까. 엄마가 되서 또 얼마나 해보고 싶었던 사소한 것들을 해볼 수 있었음을 어떻게 보여줄 수 있을까.


그래, 엄마가 되어도, 내가 해보고 싶었던 것 다 해볼 거야. 너희랑 함께 할 수 있는 것들부터 먼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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