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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다리딩 Apr 30. 2021

남편이 죽어서 행복하다는 엄마 친구

엄마가 고등학교 때 절친을 만나고 돌아왔다.

한 보따리의 이야깃거리와 함께.


2년 전, 엄마의 친구 ㄱ이모는 미망인이 되었다. 엄마는 ㄱ이모가 남편과 금슬이 너무 좋았는데 어떻게 하냐며 걱정했다. 장례식장에서 ㄱ이모가 너무 담담해서 의외였다고 말했고, 그 후 홀로 남은 ㄱ이모가 너무 걱정된다며 위로차 몇 번 대전으로 그녈 만나러 갔었다. 그러던 어느날, 엄마는 그녀와 만나고 돌아와 어떻게 이럴 수 있냐며 이젠 위로하러  안 가도 되겠다고 말했다.

아들이 그린 우리 가족


"세상에, 남편 죽고 100일도 안 지났는데, 얼굴에 슬픔이 깊이 담겨  늙어 보인다고 싹 성형수술받고 왔더라. 쌍꺼풀 하고 피부 땅기고.... 총 이천 만원 정도 들었대. 강남에서 제일 잘하는 의사한테 했다는데, 전 아가씨가 되었더라고. 자식들이 그동안 병간호한다고 고생했으니 하라고 그랬다나 뭐라나."


나는 피식 웃음이 났다. 어느새 ㄱ이모의 남편분 이야기는 묻히고 성형과 젊음, 나이 듦의 무게와 아픔에 대해 토로하는 엄마를 보며 엄마의 속마음엔 '젊음에 대한 욕구'와 '질투'가 있지 않을까 생각해보았다.


이번에도 엄마는 자신보다 젊어 보이고 평화로워 보이는 친구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냈다. 그 말끝에 묻어나는 부러움의 어조가 좀 안쓰러워 엄마에게 성형을 권했더니 엄마는 손사래 쳤다.


"이 나이에, 누구한테 잘 보일 일도 없고."

"왜? 아빠 있잖아."


엄마는 대꾸할 가치도 없다는 듯 못 들은 척하셨다.


"ㄱ이모, 그렇게 사이가 좋으셨는데 슬프지 않으시대?"

"너~무 행복하대."


나는 웃음이 빵 터져버렸다. 매일 울고만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행복한 이모의 얼굴이 떠올라서!


"자기는 10여 년 동안 남편 병간호 충분히 했고, 그 시간 동안 남편이 1순위여서 최선을 다했기에 후회가 없대.  남편이 자기 죽으면 좋은 차, 좋은 집에서 살라고 세종에 새 아파트에 그랜저 해주더란다. 심심할까봐 인근에 주말농장 땅도 사주고, 비싸고 영리한 강아지도 데리고 살라고 사주고 어느 것 하나 배려 안 한 게 없더래. 재산분할도 미리 다 해놓고 대부분의 재산은 아내에게 돌려놔서 연금 나오지 월세 나오지 딸이 성형수술도 다 알아봐 주지. 복도 많은 년."


또 엄마의 말 끝엔 성형수술 이야기가 나온다. 결국 엄마의 부러움이 대폭발한 것 같다. 식구들 간에 나눌 재산도 없고, 엄마에게 줄 재산도, 월세 나올 구석도 없는 우리 집.


엄마는 그 집 자식들이 다 결혼을 잘해서 강남에 방 몇 개씩 딸린 집에 가정부도 몇 명씩 두고 매일 맛집 찾아다니면서 살고 있다는 이야기로 이어나갔다. 시집 잘 가는 것도 대물림 된다는 뉘앙스가 펼쳐졌다.


'엄마, 나는 그래도 그 애들 안 부러워. 나는 엄마가 가진 거에 조금 더 감사했으면 좋겠어. 지금 누리고 있는 작은 행복들에, 건강히 옆에 있는 아빠, 알아서 제 밥벌이를 하는 우리들에....'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엄마의 대답은 정해져 있다.


'누가 뭐라나? 그냥 그렇다는 이야기지.

그래. 나도 충분히 좋아.'



안 들어도 뻔하다.



엄마의 여고 동창생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국민학교 시절 만났던 ㄱ이모의 남편을 떠올랐다. 둥글둥글한 얼굴과 친절과 배려가 묻어나는 말투와 태도. 유일한 흠이라면 키가 작다는 것인데, 그것조차 보이지 않을 정도로 넉넉한 인품이 빛났던 아저씨. 자식들을 지지하고 사랑하는 모습이 잠깐잠깐마다 숨김없이 드러났던 아저씨.


그 집을 부러워했던 이 있는데 바로 그런 거였었다. 비난과 놀림 없이  아이들을 인정해주고 안아주던 분위기. 그 집에 가면 맡을 수 있었던 집안의 냄새는 바로 '건강함'과 '따뜻함'이었다. 그리고 내가 어른이 되면 그런 집안의 냄새를 꼭 곳곳에 뿌려놓아야지 다짐했었다.



"그래도, 어떻게 남편이 죽고 나서 너무  좋다고 말할 수 있어?"


"너무 고통 없이 평온하게 죽었단다. 세상에 암 말기 환자가 그렇게 웃으면서 편하게 치료받는 거 처음이라고 의사가 혀를 내두르더래. 죽을 때 이제 하나님의 곁으로 가게 되었다고, 웃으면서 죽더란다."

"아...."

"아무리 자유로워졌어도,  그래도 가끔 운대.

너무 남편이 보고 싶을 때가 있어서 그땐 엉엉 운대."



넓고 큰 새 아파트에서 가끔 아저씨가 보고 싶을 ㄱ이모를 떠올려본다. 이모라면 남은 생  맘껏 제대로 살아내고 또 생의 마지막날 남편 만나러가는 길이니 평온하게 잠들 수 있으리라.


이제 나의 남은 소원은 다시 정해졌다. 나와 남편이 너무 급작스럽게 이별하지 않게. 서로 고통스러워하는 모습 볼 일 없이 평온하게, 짐이 되지 않게 마지막을 함께 할 수 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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